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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과 꾸중의 마음 사용법

‘말’은 위대한 힘을 지녔다. 진정성이 담긴 꾸중 한마디로 엇나갔던 학생이 마음을 잡기도 하고, 영혼 없는 칭찬 때문에 신뢰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비슷한 내용의 꾸중이었지만 어떤 이가 하면 잔소리가 되고, 어떤 이가 하면 충고가 된다. 칭찬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바로 진정성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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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에서 ‘산문문학론’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 내러티브를 짤막한 소설로 써 보도록 한다. 나의 학생들은 장차 교사가 될 사람들이다.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 세 가지 즉, ‘내 인생의 삼대 고통’에 대해서 기억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전소설의 한 대목을 써 보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거론하는 고통 중에는 ‘학교 다닐 때 선생님에게서 부당하게 꾸중 들었던 기억’이 의외로 많았다. 주로 그 꾸중이 타당하지 않은 경우, 그러니까 좀 억울하게 꾸중을 들었던 경우가 고통으로 각인되는가 보다. 또한 꾸중의 양과 질이 지나치게 가혹한 경우, 평가의 원리로 말한다면 ‘꾸중의 신뢰도’가 무너지면 고통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 꾸중을 구사하는 선생님의 심리적 맥락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선생님이 공연히 나만 미워한다’는 느낌이 강박적 불안 심리가 되어 고통으로 옮아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들이 학교 다닐 때 견디기 어려웠던 고통 중에는 꾸중 못지않게 ‘칭찬’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자신에게 주는 칭찬이 고통스러울 사람은 없다. 선생님이 다른 아이를 부당하게 칭찬하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 역시 칭찬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칭찬의 타당도와 그 칭찬의 신뢰도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칭찬은 곧 그 칭찬을 받지 못하는 자신에게는 차별과 소외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런 칭찬 역시 칭찬을 구사하는 선생님의 심리적 맥락을 눈치 채는 데서 마음의 고통이 생긴다. 즉, 선생님 속마음을 알아차리면서 마음의 상처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대체로 편애의 상황과 연결되고, 편애 밖에 놓였던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고통으로 기억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쓴 소설 가운데는 부모나 교사의 칭찬에 대해서 예민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그중에는 부정적인 기억도 많다. 이를테면 ‘영혼 없는 칭찬’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본능적 후각을 발동하여 알아차린다. 일상의 일과를 늘 같이하는 부모나 교사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 칭찬에 진정성이 없음을 알아차리면 즉, 칭찬이 상투화된다면 칭찬의 효력은 없어진다. 더구나 그것을 엄마나 교사는 모르고 아이들은 알고 있다면, 그런 칭찬은 칭찬하지 아니함만 같지 못하다. 칭찬의 인플레는 화폐의 인플레 못지않게 무섭다. 멀쩡한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응석을 부리거나 떼를 쓰는 데에는 진정성 없는 칭찬에 대해서 그것을 저항적으로 이용하려는 무의식이 작동하는지도 모른다.

꾸중도 마찬가지이다. 영혼이 없는 꾸중은 독(毒)처럼 유해하다. 꾸중한답시고 인격 살인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계없는 사람의 꾸중이야 독한들 무슨 상관이랴. 독이 되는 꾸중은 가까운 사람에게서 생긴다. 부모의 상습적인 꾸중은 꾸중으로서의 효력은 거의 없다. 잔소리와 꾸중의 경계선에는 ‘누구를 위한 꾸중인지를 분별하는 마음’이 있다.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는 상위인지(meta cognition)가 작동하면 진정한 꾸중이고, 그저 내 감정을 해소하고 내 불안을 처리하는 데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잔소리이다. 꾸중이야말로 진정 가득한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칭찬과는 달리, 꾸중을 하다 보면 점점 더 늘어나고 점점 더 강해져서,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상태가 되기 쉽다. 꾸중은 도를 넘어서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 꾸중이 도를 넘어선다는 것은 꾸중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도가 심하면 일종의 감정장애 특히 분노조절장애가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자녀를 야단치다 상해를 입히는 부모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은 ‘꾸중의 교육학’을 배우지 못한 부모들이 많다는 증거이리라.


[자세한 내용은 월간 새교육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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