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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코’와 ‘개턱’

미인선발 대회에서 나비넥타이를 맨 진행자가 무대에 올라 온 미녀들에게 묻는다. “정말 예쁩니다.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요. 미인 소리를 많이 듣지요?”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미인의 대답이 궁금하다. 그녀가 현대적 센스를 재치 있게 발휘하면서 잘 준비된 대답을 한다. 겸손함도 살리고 자기자랑도 살짝 집어넣는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남들이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가 다시 묻는다. 아름다움을 더 칭찬해주기 위해서다. “언제부터 그렇게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녔었나요? 이 질문이 참으로 묘한 질문이다.

1.
어떤 언어문화 연구결과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남이 나를 칭찬해 줄 때 이 칭찬에 대해서 반응하는 한국인들의 태도는 주로 ‘무응답’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때의 무응답은 말로써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표정까지 무표정은 아닐 것이다. 고마운 표정, 쑥스러운 표정, 겸손의 표정 등이 따라 붙을 것이다. 칭찬에 대해서 말 없음으로 반응하는 한국인들의 태도에는 대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려는 것이 묻어 있다. 한국인의 문화적 유전자 속에 그런 것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한국인들은 남의 칭찬에도 조심스럽게 반응하지만 자기 스스로의 칭찬, 즉 자기 자랑에 대해서는 더더욱 좋지 않게 생각한다. 한국 속담에 ‘자식 자랑하는 사람은 팔푼이, 마누라 자랑하는 사람은 칠푼이’라고들 했다. 팔푼이란 무엇인가. 온전한 사람이 100%의 인간이라면 80%밖에 안 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자기 가족 자랑 하고 다니는 사람은 자그마치 20% 내지는 30% 모자란 사람이란 뜻이다. 그만큼 잘난 척 나서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다.

그런데 세태는 바뀌었다. 내 잘난 것을 내가 안 알리면 누가 알아줄 것인가. 이런 인식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겸손의 미덕’ 가지고서는 경쟁으로 뒤얽힌 정글의 세상에 명함조차도 들이밀지 못한다. ‘자기 PR의 시대’라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PR은 ‘여러 사람과의 관계(public relation)’ 또는 그것을 증진하는 것이다. 상품 판매의 전략으로 PR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나를 남들과 차별화해 그것을 나만의 비교 우위로 자랑하고 다니는 것을 당당하고도 진취적인 개성 정도로 받드는 세태가 되었다.
 
2.
미인선발 대회에서 나비넥타이를 맨 진행자가 무대에 올라 온 미녀들에게 묻는다.

“정말 예쁩니다.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요. 미인 소리를 많이 듣지요?”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미인의 대답이 궁금하다. 그녀가 현대적 센스를 재치 있게 발휘하면서 잘 준비된 대답을 한다. 겸손함도 살리고 자기자랑도 살짝 집어넣는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남들이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가 다시 묻는다. 아름다움을 더 칭찬해주기 위해서다.

“언제부터 그렇게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녔었나요?

이 질문이 참으로 묘한 질문이다. 사회자의 원래 의도는 미인의 아름다움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데에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 미인의 성장 과정에서 예뻐지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기 위해서 준비해 둔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예쁘다는 평판이 자자했었다는 데로 끌고 가서 그녀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의도도 있었을지 모른다. 옛날 미인 대회에서는 그랬었다.

그런데 이 질문이 요즘에는 사라졌다.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느냐 하고 묻기가 좀 민망스럽게 되었다. 그런 걸 물어보면 센스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결례가 된다. 이유는 성형수술 때문이다. 원래는 미인이 아니었는데 성형수술을 받고 미인이 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모태미인(母胎美人)’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다. 물론 성형수술은 순기능을 행하는 것이 많다. 기형의 모습들을 바르게 교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용모로 인한 심한 열등감을 자신감으로 바꾸어 준다. 미인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성형을 하는 것은 성형의 순기능일까 역기능일까?
 
3.
굳이 미인대회 출전이 아니더라도 미인이 되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에게 다 있다. 그걸 나무랄 권한은 그 누구에도 없다. 문제는 성형 지향의 미인들이 많아지면서 똑같은 얼굴 유형의 미인들이 범람한다는 것이다. 대중문화 속의 우상들이 성형으로 보여주는 미인 얼굴 유형은 대중들에게는 복제에 가까운 모방으로 치닫게 한다. 그래서 같은 유형의 미인 얼굴들은 날이 갈수록 넘쳐나는 것이다.

얼굴 미인을 만드는 성형의 요체는 눈과 코와 턱이라고 한다. 모든 얼굴 성형의 시작은 눈 쌍꺼풀 수술이지 않은가. 요즘은 코가 관심사란다. 코는 가늘면서 길고 뾰족하고 살짝 높아야 한다. 얼굴 전체 윤곽을 밝고 날렵한 형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들의 얼굴에서는 그런 코가 표준화 되어 있다. 누군가 그런 코의 모습이 화살과 닮았다고 해서 ‘화살코’라고 이름을 붙였다. 참으로 적절한 묘사가 담긴 이름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미인 성형을 하려는 사람들은 턱을 공략한다. 그게 그렇게나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데도 얼굴 미인이 된다는 기대 앞에서는 쪽도 펴지 못한다. 턱은 튀어나오지 않아야 하고, 짧게 뭉툭 끝나서도 안 된다. 턱은 적절히 길게, 약간은 밋밋하게 빠지는 듯한 유선형의 부드러움을 연출하도록 하는 것이 대세라고 한다. 그런 턱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로 어떤 것이 있을까. 누군가 그런 턱을 ‘개턱’이라고 명명하였다. 개의 턱이 그런 특징을 흡사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개턱’이란 말이 조금 속되게 들리기는 하지만 아주 생뚱맞지는 아니한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화살코와 개턱의 얼굴 유형들을 자주 본다. 그 얼굴이 그 얼굴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연예인들은 또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인들도 이런 얼굴을 복제하듯 모방하니 화살코와 개턱은 시대적 아이콘이 되었다. 유행임에 틀림없고 문화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주체의 인식과 주관의 인식론이 중시되는 시대의 문화라는 측면이 있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연예인들이 상품의 수준에서 성형을 기획하고 상품으로 자기들을 대중에게 파는 상업자본주의 풍토에 대중이 각성 없이 휘말린다는 비판론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 개개인도 상품으로 치부되고 상품으로 조정되는 그런 세태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죽기 살기로 ‘나’라는 존재의 상품 가치를 내가 주장하고 다녀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미인 얼굴 성형에 대해서 취업 면접시험용으로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상품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그대로 나타나는 대목이다.

4.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원론의 물음을 던지면, 오늘날 우리들이 열중하여 소구하는 얼굴 미인의 모습은 애처롭고 안쓰럽다. 사람의 아름다움은 그 사람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얼굴의 아름다움도 예외일 수 없다. 성형이든 화장이든 패션이든 행동이든 그것이 감동적으로 아름다우려면 나의 나다움과 더불어 개성의 멋을 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모두가 비슷한 얼굴의 모습으로, 그야말로 공장에서 나오는 완제품 상품처럼, 미인형 얼굴이 같아져 있다는 것, 이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 아주 대비적인 이야기가 있다. 서로 같아지려는 노력이 성형 미인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감동으로 다가오는 뉴스가 있다.

캘리포니아주 칼스배드시에 있는 ‘엘카미노 크리크’ 초등학교 4학년 학생 15명은 뇌종양을 앓고 있는 반 친구 트래비스 셀린카를 응원하기 위해 삭발한 채 등교했다. 친구들은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가 빠져 놀림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트래비스를 위해 단체 삭발을 결정한 것이다. 트래비스의 어머니는 “15명이나 삭발을 하고 이발소를 나왔어요. 그 친구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나요” 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달라지려 했는데도 결국에는 같아지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서로 다른데도 같아지려고 노력한 이야기, 두 이야기 사이에서 인간 마음의 두 지향을 본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로 하는 순간 천사의 손에 이끌려 높이 고양되는 인간의 마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마음도 있다. 홀로 욕망의 첨탑 위에 오르려고 하면 할수록 어느새 범속한 지상으로 내려지게 되는 것, 나는 그 두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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