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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체험> 설날맞이

2월 8일 구정이다. 미국에 머물지만 떡국은 먹어야겠다고 마음 속으로 벼르고 있었다. 전날에 근처에 사는 젊은 엄마가 집에서 장만하였다고 빈대떡, 고기야채전, 만두, 수정과를 나누어주었다.

나이가 먹은 사람이 주어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저녁에 아이들 세배돈을 종이에 싸서 새해 인사를 넣어 보냈다. 급한 마음이라 글씨도 비뚤고 종이도 이쁘게 접어지지 않은 채 보내 성의 없어 보일까봐 걱정이 조금 되었다.

저녁에는 성당에서 설날 위령미사가 있다고 지난 주일 미사에서 안내를 하였기 때문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참여하겠다고 하였지만 아이녀석은 운동을 가겠다고 하여 "그래라"고 쉽게 응낙을 하다가 다시 생각하니 단순한 미사 참례가 아니라 제사라는 생각이 들어 아들을 참례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사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하니 반발한다. 아침에는 운동하라고 하였다가 저녁에는 미사를 가라고 한다고 야단한다.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함과 동시에 반드시 참례해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다. 잠시 생각하더니 운동을 함께 하려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이행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순순이 따라 나섰다.

성당에 도착하니 제사상 차리기가 분주하였다. 홍동백서니 좌포우혜니 등의 격식을 차리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상이 마련되었다. 미사를 시작하기 전에 '선조를 기억하는 차례 예식'을 나누어 주었다. 예전에 한국의 한 성당에서 신부님이 추석에 서양식의 둥근 금속 향통에 향을 피우는 것을 본적이 있으나 한국식 제사를 도입한 것은 몰랐다.

신부님 말씀이 제2차 바티칸 공회에서 각국의 문화를 존중할 것을 선포하였다고 한다. 종교의 역할이 내세의 안녕과 평화에만 중점을 두기보다 현세의 생활에도 관심을 보여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변화가 대단히 반가웠다.

미사를 드리고 나서 신부님이 제사상 앞에 두 번 절을 하셨다. 다음으로 신자들이 돌아가며 절을 하는데 어린 아이들은 까불며 노는 듯 엎어졌다 일어나고, 좀 큰 아이들은 진중하게 절을 하였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에게 제사 의식은 낯설은 것일지도 모른다.

신부님은 미국에서 미국 시민으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의식과 언어, 문화를 이어가는 것이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모여 한 국가를 이루고 사는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키워주는 역할도 함과 동시에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리두기 위해서도 동질한 언어와 문화를 키워가는 것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며, 모국에도 기여하는 길이라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전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특별 주문하셨다.

나는 본래 어린시절부터 제사를 보아왔으므로 제사의식에 별다른 감회가 없으나 미국에서 20년, 30년 사는 동안 잊고 살았던 기억의 저편을 떠올리며 조상님께 이국 땅에서 사는 후손들의 안녕과 번영을 부탁하고 그 간의 힘들었을 여정을 되돌아 보는 분도 계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즈음은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모이는 경우가 적으나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 두해 동안 우리집 딸들은 제사에 모두 모였다. 아들들은 어리고 아버님은 혼자 계셔서 제사상을 차려야하기 때문에 딸들이 모두 왔었다.

아들 뿐 아니라 딸들도 제사에 참여하였고, 제사 끝난 후에 돌아가신 분이 아닌 좀 떨어진 곳에 계신분께 전화하듯 '엄마, 잘 지내고 있어? 이번에 oo가 학교 졸업을 하는데 많이 컸지? 뚱뚱해지니까 밤에 너무 많이 먹지 마. 그리고 oo가 딸만 있다고 시어른이 걱정 하시쟎아 그러니까 아들낳도록 함께 기도해줘.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그 곳에서는 재미나게 잘 지내' 등 버릇없이 일상의 말로 안부를 묻고 당부도 하였다.

그리고는 잿밥을 먹으며 꿈에 엄마가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왔었다, 예전에 엄마는 이 소파에서 이렇게 누워있는 것을 좋아했다, 밖에 계단 맨 위에 앉아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리셨다는 등등 옛날을 떠올렸다. 내 조상이신데 후손이 궁금하실 것이고, 진정으로 걱정을 해주실 것이다. 미국이라서 특별해 보였던 설날맞이 행사였으며 간소하면서도 내용이 있는 설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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