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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풍경] 세비야에서 그라나다까지

 

한겨울인 1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서 마주한 공기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햇살 아래 거리를 걷는 일이 즐거웠고, 겨울 여행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밝은 햇빛을 머금은 건물과 오렌지나무, 낯선 문양과 색채로 채워진 거리는 화사하면서도 이국적이었다. 그 아름다웠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정취를 함께 느껴보자.


세비야 _ 오렌지 향으로 가득 찬 안달루시아의 다채로움
세비야에 도착해 처음 마주한 것은 눈부신 햇살이 아니라 세찬 겨울비였다. 그런데 흐린 풍경 속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는 것이 있었다. 거리 곳곳에 줄지어 선 오렌지나무였다. 짙은 초록색 잎 사이로 주렁주렁 매달린 주황빛 열매는 흐린 하늘 아래에서 오히려 더욱 선명해 보였다. 이 낯설고도 화사한 풍경을 마주한 순간, 이것만으로도 세비야 여행은 이미 다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찬 비바람에 떨어진 오렌지 몇 알은 돌바닥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껍질이 터진 열매에서는 상큼하면서도 쌉싸래한 향이 퍼졌다. 


비가 내리는 세비야의 좁은 골목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일도 즐거웠다. 화려한 관광지를 찾아다닌다기보다 비를 피해 처마 아래로 몸을 옮기고, 작은 상점과 집 사이를 오가다 보니 잠시나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렇게 골목을 몇 번이나 꺾어 다녔을까. 건물 사이로 갑자기 시야가 활짝 열리더니 거대한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탑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좁은 골목과 대비되는 웅장한 경관에 절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15세기 초 옛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지기 시작한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 성당으로 꼽힌다. 그 옆에 우뚝 선 히랄다 탑은 원래 12세기 이슬람 사원의 미나레트(예배시간을 알리던 탑)였다고 한다. 이후 세비야가 가톨릭의 도시가 되면서 상부에 르네상스 양식의 종탑이 더해졌다. 


대성당과 히랄다 탑을 함께 바라보면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가 한 공간에 겹겹이 쌓여 온 세비야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두 건축물의 내부를 관람하려면 사전에 입장권을 예약해 두는 것이 좋다. 현장에서도 표를 살 수 있지만 방문객이 많아 원하는 시간에 입장하려면 예약은 사실상 필수에 가깝다. 히랄다 탑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직접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다행히 가파른 계단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말을 타고도 탑 꼭대기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든 완만한 경사로가 이어진다. 조금 힘이 든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한다. 탑 위에서는 주황색 지붕이 이어진 구시가지와 세비야 대성당, 멀리 흐르는 과달키비르강까지 세비야의 경관을 사방으로 내려다볼 수 있다.  


과달키비르강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흰색과 황톳빛 외벽이 인상적인 왕립 마에스트란사 투우장을 만날 수 있다. 스페인의 투우 전통을 대표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로 1761년 착공되어 1881년에야 완성되었다. 지금도 부활절 일요일을 시작으로 투우 시즌이 열리며, 특히 세비야의 봄 축제인 페리아 데 아브릴 기간에는 중요한 경기가 집중된다. 투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이곳은 오랜 전통이 현재의 도시 경관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임은 분명하다. 


세비야에서 가장 고풍스럽게 느껴졌던 장소는 단연 스페인 광장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은 반원형 건물과 높은 탑, 운하와 다리, 화려한 타일 장식이 어우러진 모습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왕궁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이 광장은 그리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다.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의 설계로 1928년 완공되었으며, 1929년 세비야에서 열린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의 중심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광장을 둘러싼 벤치에는 스페인의 48개 지역을 상징하는 역사적 장면과 지도가 다채로운 세라믹 타일로 표현되어 있다. 건설된 지 100년 남짓한 공간이 이토록 깊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세비야의 다채로움은 눈에 보이는 풍경에서 끝나지 않았다. 밤이 되면 골목 안쪽에서 기타 선율과 구두 굽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로 플라멩코 공연이다. 플라멩코는 단순히 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노래와 춤, 기타 연주와 함께 손뼉과 강렬한 발동작이 더해져 하나의 무대를 완성한다. 안달루시아를 중심으로 성장한 플라멩코는 세비야의 열정적인 분위기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화이기도 하다. 나무판을 깐 무대라는 뜻의 타블라오는 세비야의 골목 곳곳에 있는 플라멩코 전문 공연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플라멩코 공연장에서는 음료만 제공하는 곳부터 저녁 식사나 타파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까지 형태도 다양하다. 식사보다 공연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다면 플라멩코 박물관을 추천한다. 플라멩코의 역사와 의상, 춤의 변화를 전시로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가까워 무용수의 표정과 발끝의 움직임, 바닥을 울리는 진동까지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세비야의 다채로운 여정을 마무리해 준 음식은 따끈한 츄러스였다. 세비야에서는 츄러스를 ‘칼렌티토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길고 별 모양의 츄러스와 달리 반죽을 커다란 원이나 나선 모양으로 이어서 튀긴 뒤 가위로 잘라 판매한다. 표면의 홈이 거의 없고 비교적 굵으며,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가볍고 부드럽다. 진한 핫초콜릿이나 커피와 곁들이면 세비야식 아침이나 간식이 완성된다. 우리나라의 꽈배기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론다의 절벽, 프리힐리아나의 하얀 골목, 네르하의 푸른 지중해
세비야를 떠나 첫 번째로 들른 곳은 론다였다. 론다를 대표하는 장소는 각종 방송에도 등장했던 누에보 다리다.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이름과 달리 1759년부터 1793년까지 무려 34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과달레빈강이 깎아 만든 엘 타호 협곡을 가로질러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며, 협곡 바닥에서부터 약 98m 높이로 솟아 있다. 협곡 아래에서 채취한 돌로 거대한 기둥과 아치를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고 하니, 이 깊은 골짜기에 어떻게 이런 다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누에보 다리는 윈도우 바탕화면에도 등장했던 풍경이다. 컴퓨터 화면에서 보았던 익숙한 장면을 실제 눈앞에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했지만, 사진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웠던 협곡의 아찔한 깊이와 다리의 거대한 규모도 놀라웠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면 절벽 사이로 강이 가느다랗게 흐르고, 다리는 마치 협곡에서 그대로 솟아난 거대한 석조 건축물처럼 보였다. 방문한 날에는 고원과 협곡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도 무척 거셌다. 몸이 휘청할 만큼 강한 바람을 맞으며 다리를 건너자 론다의 험준한 지형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론다에는 누에보 다리 외에도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소가 많다. 1785년 문을 연 론다의 투우장은 흔히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 하나로 소개된다. 현재는 투우가 상시 진행되지는 않지만, 론다가 근대 투우 문화의 중요한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도시 중심부의 소코로 광장에서는 또 다른 모습의 론다를 만날 수 있다. 광장에는 두 개의 기둥 앞에서 두 마리의 사자와 함께하고 있는 헤라클레스 조형물이 서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신화 속 장면이 아니라 안달루시아의 문장을 입체적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론다에서는 1918년 지역 회의가 열려 오늘날 안달루시아를 상징하는 초록색과 흰색 깃발과 헤라클레스 문장이 채택되었다. 누에보 다리로 유명한 작은 도시가 현대 안달루시아의 정체성을 형성한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던 셈이다.


론다의 거친 협곡과 산길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내려가자,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프리힐리아나였다. 네르하의 해안에서 떨어진 산비탈에 자리한 프리힐리아나는 안달루시아를 대표하는 ‘푸에블로 블랑코’, 즉 하얀 마을 가운데 하나다. 이슬람 시대의 골목 구조가 잘 남아 있는 구시가지는 새하얀 집 사이로 차량도 들어갈 수 없는 좁고 가파른 돌길과 계단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프리힐리아나는 ‘세 문화의 마을’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마을 입구에는 기독교의 십자가와 유대교의 다윗의 별, 이슬람교의 초승달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 조형물이 있다. 이는 중세 때부터 안달루시아에 남겨진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의 문화적 흔적과 오늘날 지향하는 공존의 가치를 상징한다.  


프리힐리아나에서는 특별한 목적지를 정해 두기보다 언덕의 골목을 천천히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여행이었다. 새하얀 벽과 돌계단 사이로 화분과 작은 장식이 놓여 있었고, 골목을 한 굽이 돌 때마다 서로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고개를 들면 따사로운 겨울 햇빛이 하얀 집의 벽면을 환하게 비추고, 높은 곳에 다다르면 붉은 지붕 너머로 푸른 지중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겨울에도 온화한 햇살 아래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스페인의 남쪽 끝자락까지 내려왔다는 사실이 여실히 느껴졌다.

 

 

프리힐리아나의 언덕을 내려와 조금 더 달리자, 지중해와 맞닿은 네르하에 도착했다. 네르하는 말라가의 해안 지역인 코스타 델 솔의 대표적인 해안 휴양지로, 바다와 맞닿아 있는 ‘유럽의 발코니’가 가장 유명하다. 해변 사이의 절벽 위로 길게 돌출된 전망대에 서면, 끝없이 펼쳐진 푸른 지중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날씨가 매우 맑은 날에는 바다 건너 아프리카의 해안까지 보인다고 한다.

 

수평선 너머를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내가 찾은 날에는 그 윤곽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전망대의 끝에 서자 지금까지 지나온 안달루시아의 내륙 풍경과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짙푸른 바다와 절벽 아래의 해변, 야자수가 늘어선 산책로가 어우러지며 휴양지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1월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햇살은 따뜻했고,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그라나다 _ 알람브라 궁전과 시장에 겹쳐진 시간
그라나다는 안달루시아 여행의 정수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도시 곳곳에 가톨릭 왕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스페인의 역사와 나스르 왕국의 이슬람 문화가 복합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라나다는 13세기부터 나스르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으며, 이베리아반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이슬람 왕국의 중심지였다. 이후 1492년 이슬람 지배는 막을 내리고 도시에는 성당과 수도원,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이 들어섰지만, 이슬람 시대에 형성된 골목과 시장, 주거지와 궁전도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다. 


그라나다 도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곳은 이사벨 광장이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왕좌에 앉은 이사벨 여왕과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콜럼버스의 모습을 담은 대형 동상이 서 있다. 동상은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의 항해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산타페(그라나다 인근 도시) 협약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그라나다를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가톨릭 군주가 도시를 차지하기 이전에 형성된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다.

 

광장에서 멀지 않은 알카이세리아 시장에 들어서자, 그라나다가 유럽의 도시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되었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직물과 도자기, 가죽 제품, 화려한 장식품을 파는 작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이어졌고, 아치와 등불, 이국적인 문양이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북아프리카나 중동의 시장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였다.

 

알카이세리아는 나스르 왕국 시대에 비단과 귀중품을 거래하던 시장에서 시작되었다. 기존 시장이 1843년 화재로 소실된 뒤 이슬람 건축을 연상시키는 양식으로 재건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지금은 기념품 상점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같은 자리에서 옛 시장의 이름과 기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라나다에 남은 이슬람 문화의 기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라나다를 대표하는 장소는 역시 알람브라 궁전이다. 그라나다라는 도시 이름은 낯설어도 알람브라 궁전은 한 번쯤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문학·음악·영화·드라마의 소재로 끊임없이 재창작되면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궁전의 이미지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관람할 수 있는 공간도 넓고 세계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기 때문에 사전 예약은 사실상 필수에 가깝다. 특히 나스르 궁전은 입장 시간이 별도로 정해져 있어 티켓에 적힌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나는 알카사바에서 시작해 카를로스 5세 궁전과 나스르 궁전을 지나 헤네랄리페까지 꼬박 반나절을 걸었다.


가장 먼저 둘러본 알카사바는 알람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왕궁을 방어하던 군사 요새다. 화려한 궁전보다는 견고한 성벽과 탑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뒤이어 만나는 공간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높은 성벽 위에 올라서자, 그라나다 도심과 맞은편 언덕의 알바이신 지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알바이신은 이슬람 시대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구조가 잘 남아 있는 오래된 주거 지역이다. 언덕을 빼곡하게 채운 새하얀 집과 붉은 지붕의 경관은 이국적인 정취로 다가왔다.  


알람브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나스르 궁전이었다. 정해진 입장 시간에 맞춰 안으로 들어서자 메수아르 궁전과 코마레스 궁전, 아라야네스 중정, 사자의 중정이 차례로 이어졌다. 건물 외부에서는 쉽게 짐작하기 어려웠던 화려하고 섬세한 공간들이 문 하나를 지날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 벽면은 기하학적 문양과 식물무늬를 새긴 장식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고, 가느다란 기둥과 우아한 아치가 공간을 규칙적으로 나누고 있었다.

 

특히 아라야네스 중정의 길고 잔잔한 연못이 기억에 남았다. 연못 양쪽의 건축물이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수면 위로 코마레스 탑과 아치가 선명하게 비쳤다. 실제 건축물과 물에 비친 모습이 맞닿으면서 공간이 두 배로 확장되는 듯했다. 화려한 장식을 과시하기보다 빛과 그림자, 물과 반사를 이용해 완성한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사자의 중정에서는 수많은 기둥과 아치 사이로 물길이 이어지고, 열두 마리 사자가 받치고 있는 분수가 있었다. 알람브라에서 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건축과 정원을 하나로 연결하고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요소였다. 


마지막으로 향한 헤네랄리페는 나스르 왕조의 군주들이 휴식을 취하던 별궁과 정원이다. 언덕의 지형을 따라 정원과 건물이 여러 층으로 이어졌고, 수로와 분수 사이로 물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궁전 안을 걸은 뒤 만난 푸른 정원은 한결 여유롭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헤네랄리페에서 나무와 정원 너머로 바라본 알람브라의 모습도 장관이었다.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수많은 궁전과 방, 안뜰로 나뉘어 있던 공간을 멀리서 바라보니 한 언덕을 차지한 거대한 성채이자 도시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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