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업은 기술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좋은 수업을 위해 교사는 많은 것을 배운다. 수업목표를 세우고 학습내용을 조직하는 방법, 학생의 생각을 끌어내는 발문과 피드백, 다양한 교수·학습모형과 전략을 익힌다. 이러한 지식과 기술은 수업전문성의 중요한 바탕이다. 그렇다면 좋은 수업방법을 알고 능숙하게 적용하는 것만으로 교사의 수업전문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실제 수업은 배운 방법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적용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같은 수업안으로 수업해도 교사마다 수업의 모습은 다르다. 학생이 예상하지 못한 답을 했을 때 그대로 지나갈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한 까닭을 다시 물으며 새로운 탐구로 이어 갈 수도 있다. 준비한 활동을 학생들이 어려워하면 질문을 바꾸거나 설명의 순서를 조정하기도 한다. 수업은 계획에서 시작하지만 학생을 만나는 순간부터 계획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진다. 교사는 학생의 표정과 자세, 말과 침묵을 살피며 교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한다. 질문을 바꾸고, 한 학생에게 다시 말할 기회를 주고, 예상하지 못했던 생각을 다른 학생의 생각과 연결한다.
아이즈너(Elliot Eisner, 1983)는 이러한 교사의 모습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했다. 지휘자가 악보를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연주되는 소리를 들으며 전체의 흐름을 만들어 가듯, 교사도 계획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가지만 학생의 반응을 살피며 수업을 만들어 간다. 국내에서도 수업의 예술성은 상황에 대한 민감성, 직관과 즉흥성, 창의적 실천(이혁규 외, 2012), 교육적 의미와 가치의 창조(옥영희, 2016), 지각적 감수성과 자기성찰(김외순, 2018) 등으로 설명되어왔다. 이들 논의는 서로 강조하는 점은 다르지만, 구체적인 수업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교사의 판단과 선택에 주목한다.
수업의 예술성은 특별한 교수법이나 화려한 수업기법을 가리키지 않는다. 교사가 학생과 상황에서 무엇을 알아차리고 어떻게 판단하는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는지,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어떻게 연결하는지와 관련된다.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돌아보는 일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글에서는 수업의 예술적 성격이 교사의 구체적인 수업 실천에서 구현되는 방식을 ‘수업예술(teaching artistry)’이라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기존 논의를 교사의 수업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고, 수업예술의 특징을 ‘감응과 판단’, ‘가능성의 탐색’, ‘관계와 연결을 통한 의미생성’, ‘성찰과 재구성’이라는 네 가지 속성으로 정리하였다. 이 네 가지는 순서대로 밟아야 할 단계나 새로운 수업모형이 아니다. 교사가 자신의 수업에서 무엇을 보고 판단하며, 어떻게 배움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관점이다.
수업을 다시 바라보는 네 가지 관점
● 감응과 판단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수업은 교사가 무엇을 보고 듣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학생이 말한 답뿐 아니라 표정과 침묵, 머뭇거림과 예상 밖의 표현도 학생의 배움을 파악하는 단서가 된다. 질문을 받은 학생이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한다고 해 보자. ‘모르는구나’라고 판단하고 다른 학생에게 기회를 넘길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판단한다면 조금 더 기다리거나 질문을 바꾸어 다시 말할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같은 모습도 교사가 무엇을 알아차리고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다음 행동은 달라진다. 감응은 학생의 반응이 지금의 배움에서 무엇을 말해 주는지 읽어내는 일이다. 판단은 그 상황에서 무엇을 교육적으로 중요하게 볼 것인지 가늠하는 일이다. 첫 번째 질문은 “지금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이다.
● 가능성의 탐색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생이 예상하지 못한 답을 했을 때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가 아니다. 바로 수정할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한 까닭을 물을 수도 있다. 다른 학생의 생각과 비교하거나 새로운 탐구로 이어 갈 수도 있다.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수업하자는 뜻은 아니다. 교과에 대한 이해와 수업 경험, 사전에 세운 계획은 그 순간 어떤 선택이 교육적으로 가치 있는지를 판단하는 바탕이 된다. 실제 수업에서는 수업안에 없던 학생의 질문 하나가 중요한 배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 속에서 새로운 배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따라 수업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여기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 관계와 연결을 통한 의미 생성
무엇과 무엇을 연결할 것인가? 수업에서는 여러 가지가 만난다. 학생의 경험과 교과 지식이 만나고, 한 학생의 생각이 다른 학생의 생각과 만난다. 지난 시간의 배움이 오늘의 문제와 연결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없었던 이해가 만들어진다. 한 학생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을 때 그 이야기에서 끝낼 수도 있다. 그 경험을 교과개념과 연결하거나 다른 학생의 경험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이 관계를 맺으면서 학생이 알고 있던 것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옥영희(2016)는 이러한 가르침의 예술성을 교육적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조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교사가 모든 의미를 미리 만들어 전달할 필요는 없다. 학생의 경험과 생각, 교과지식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교사의 역할이다. 세 번째 질문은 “무엇과 무엇을 연결할 것인가?”이다.
● 성찰과 재구성
이 경험을 이후의 수업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수업이 끝났다고 교사의 수업까지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수업 중에도 학생의 반응을 보며 질문과 활동을 조정하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다시 살펴본다. ‘오늘 수업을 잘했는가, 못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 그 학생의 생각을 지나쳤는지, 어떤 질문에서 학생들의 사고가 달라졌는지, 내가 예상한 것과 학생의 실제 이해가 어디에서 어긋났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다음 수업의 질문과 활동이 달라지고, 때로는 학생과 배움을 바라보는 교사의 관점도 달라진다. 교사는 가르치면서 자신의 수업을 다시 배운다. 마지막 질문은 “이 경험을 이후의 수업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이다.
네 가지 속성은 따로 작동하지 않는다. 학생의 반응을 알아차리는 순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연결하면서 처음의 판단을 바꾸기도 한다. 수업 중의 성찰이 곧바로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네 가지 질문은 순서대로 확인하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실제 수업에서 서로 오가는 질문이다. 이렇게 보면 수업의 아름다움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아름다운 수업은 계획대로 막힘없이 진행되는 수업만을 뜻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학생의 생각이 다른 생각과 만나 새로운 이해로 이어지는 순간에도 수업의 아름다움은 드러날 수 있다. 수업의 아름다움은 완성된 모습보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배움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 교사는 왜 수업예술가인가?
수업예술의 네 가지 속성은 결국 교사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학생의 예상 밖 반응을 새로운 배움의 단서로 볼 것인지 판단하고, 어느 생각을 더 살펴볼 것인지 선택하며, 서로 다른 생각 사이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찾는 일은 바로 이 순간 이루어진다. 교사 자신의 판단이 학생의 배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돌아보는 과정에서 교과지식과 수업기술, 교사의 경험이 함께 작용한다. 바로 이런 순간에 교사의 참된 전문성이 드러난다.
‘수업예술가’라는 말은 수업기술과 대립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 아니다. 탄탄한 교과지식과 교수·학습에 관한 전문적 지식, 다양한 수업기술은 좋은 수업에 필요하다. 다만 교실에서 교사가 하는 일을 이것만으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교사는 이미 완성된 수업을 학생에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현재의 학생과 상황을 읽고 배움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경험·생각·지식을 연결하고 자신의 판단과 실천을 성찰하면서 수업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예술적교사(artistic teacher)에 관한 논의(양은주, 2007)를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이러한 교사를 ‘수업예술가’, 곧 수업의 예술적 성격을 자신의 수업실천에서 구현해 가는 교사라고 부르고자 한다. 수업예술가는 특별한 몇몇 교사에게 붙이는 이름이 아니다. 학생의 말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예상하지 못한 생각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생각을 새로운 배움으로 이어 가며, 자신이 내린 판단을 돌아보는 일은 교실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순간을 교사의 전문적 실천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이제 오늘의 수업을 떠올려 보자. 학생의 어떤 말과 표정을 알아차렸는가? 예상하지 못한 생각에서 어떤 배움의 가능성을 발견했는가? 학생의 경험과 생각, 교과지식을 어떻게 연결했는가? 오늘의 판단과 선택을 다음 수업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좋은 수업을 판정하기 위한 또 하나의 평가기준이 아니다. 자신의 수업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 보고, 그 순간의 판단과 선택을 돌아보기 위한 질문이다. 수업을 예술로 본다는 것은 수업의 기술적 측면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교수 원리와 전문적인 수업기술은 좋은 수업의 중요한 토대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교사의 판단과 선택, 학생과 함께 배움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 역시 수업전문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교사는 이미 정해진 수업을 재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과 상황을 만나며 수업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업은 예술적 실천이 될 수 있으며, 교사는 수업예술가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