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 칼럼] 교육 미장센

2025.11.05 11: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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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학습에 최적화된 기계가 아니다. 자신도 다루기 어려운 마음을 가진 인간이 또 다른 불완전한 학생을 성장시켜야 하기에 교사는 늘 다양한 난관에 직면한다. 인간 정신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이해는 동기부여와 수업 혁신의 출발점이 된다.


한 학급 학생이 모두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게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단순한 목표 설정이나 이성적 설득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수업목표에도 가슴을 뛰게 하는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영화 연출과 같은 세심한 수업 연출, 바람직한 규칙과 수칙 제정 등의 행동 루틴 설정과 이를 위한 지속적인 훈련, 작은 성취 기회 누적적 제공 등의 정서적 강화 프로그램이 더해져야 학생들은 목표점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기노시타 하루히로(2004)는 <강요하는 초보 감동시키는 프로>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수업은 처음 1분으로 결정된다네. 그 1분 동안 자네는 학생의 마음을 잡지 못했던 거야. 영혼을 흔들지 못했다는 말이지. 그래서 지루한 시간이 된 거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지만, 이를 행동으로 연결하는 것은 힘들다. 이 둘을 연결하는 힘이 바로 동기다. AI가 학습 조교 역할을 하는 시대의 교사에게 동기 부여 역량은 더욱 중요해졌다.


인간 뇌는 컴퓨터처럼 효율적으로 저장·검색되지도 않는다. 컴퓨터의 기억은 한 번의 입력만으로 영구적으로 남지만, 인간의 기억은 이해와 반복, 그리고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며 시간 흐름에 따라 점차 희미해진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아주 오랫동안 즉각적 결정이 필요한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신속한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최근의 경험·빈도·맥락에 근거한 빠른 기억이 중요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조상들과 달리 구체적인 정보를 기억해 내야 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뇌는 거기에 적합하게 진화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교사는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감안해 학습 장면을 연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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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학생들은 뛰어난 강사의 온라인 강의와 비현실적인 과다 자극을 제공하는 오락 콘텐츠에 익숙하다. 재미없는 교실에서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학습이라는 활동을 하는 것은 이들에게 큰 고통이다. 공부의 필요성과 유용성 설명만으로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들이 학습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방법의 하나는 교실을 학생 참여형 공연장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학습 동기 유발만이 아니라 학습 자체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연극이나 영화 같은 시각 예술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 중에 ‘미장센(Mise-en-scène)’이 있다. 무대 위나 화면 속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인물·소품·조명·배경, 카메라 구도 등)를 어떻게 배치하고 구성하느냐를 가리키는 말이다. 교육 미장센은 교실 환경, 교사의 움직임, 학습자료, 분위기까지 모두 포함한 총체적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가 총감독이 되어 교실의 ‘장면’을 학생에 적합하게 연출하면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학생도 공연장에서와 유사한 감동을 느끼며 교실 수업에 몰입하게 된다.


교실 공간 배치는 무대 배경에 해당한다. 토론 시 원형, U자형 배치는 상호작용뿐 아니라 심리적 개방성을 높인다. 영화에서 색채가 인물의 감정을 반영하듯, 교실 색감과 조명은 학생들의 심리상태에 큰 영향을 준다. 수업 목적과 분위기에 적합한 조명을 조감독에 해당하는 학생들과 협의하여 연출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안전하고 마음이 따스해지는 공간, 상호 존중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심리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배우의 연기이다. 교사의 발화·표정·동선도 영화의 배우처럼 의미 있다. 학생과 눈을 맞추고 가까이 다가가 대화하는 것, 의도적으로 말을 멈추어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면 등은 모두 효과적인 수업 연출로 이어진다. 교사 혼자서 하기보다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배역을 주어 함께 진행한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수업자료 역시 단순 보조도구가 아니라 영화 소품처럼 교사가 의도한 메시지를 강화하는 미장센이 된다. 다양한 모형, 디지털 화면, 심지어 교사의 의도적인 의상도 학생들의 주의를 끌고 몰입도를 높이는 훌륭한 장치가 될 수 있다. 수업에 사용할 자료 점검, 수준 적합성 확인, 집중 방해 요소 배제 등도 중요하다. 영화의 소품 담당 연출팀처럼 학생들로 수업 소품 담당팀을 구성하여 함께 준비하면 학생들의 참여도와 몰입도가 높아질 것이다. 


수업의 도입-전개-정리 장면을 나누어 연출하고, 배경음악이나 학생 발표의 연출적 배치, 도입의 강렬함, 활동의 자연스러운 흐름, 마무리의 연속극적 연결 등도 고려할 만하다. 영화감독처럼 매 순간의 평가를 바탕으로 학생들과 함께 개선책을 마련하여 다음 수업(촬영)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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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모든 역할을 혼자 해내기보다 학생을 다양한 조감독 및 조연출자, 동료 배우로 참여시키면 수업의 몰입도와 성장 효과 모두 더해진다. 무대와 객석이 구분된 서양 연극에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의 전통마당극을 접맥한 현대식 마당극을 만든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교육 미장센 연출자의 관점에서 수업을 연출해 보면 교사의 수업 총감독으로서의 역량이 커질 것이다. 아니면 제반 수업에 대해 교육 미장센의 어느 하나에만 초점을 맞춰 감독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교실은 살아있는 공연장의 몰입감을 선물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 불완전성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동기부여와 학습에 적합한 교육 미장센을 실천할 때, 교사는 ‘인간 사용 설명서’를 손에 든 성공적인 총감독으로 서게 될 것이다. 인간을 바꾸기보다 인간의 특성을 활용하는 것, 그것이 교실에서 가능한 최선의 교육공학이자 수업 연출이다.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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