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1] “‌선생님, 괜찮으세요?” 우리는 또 한명의 동료를 잃었다

2025.07.07 10:00:00

 

“다산콜센터로 연결됩니다.” 공공기관에 업무와 관련된 문의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분명히 공공기관 담당부서로 번호를 눌렀건만, 서울 다산콜센터로 연결되었다. 

 

‘아, 공공기관은 이렇게 직접 민원전화를 받지 않는구나,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개인 핸드폰으로 민원전화를 응대하고 있을까?’ 

 

순간, 교사는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교사 개인에게 직접 연락하는 민원방식에 대한 문제는 여러 차례 제기되었지만, 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학 부모들은 자녀의 출결·체험학습·급식·교복·학교방침에 대한 의견까지 모두 담임교사 개인에게 전화하거나, 문자로 전달한다. 이미 학생에게 자세히 안내한 내용도, 다시 개별적으로 문의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담임교사는 학부모들의 반복적인 개별 문의부터, 학교방침에 불편한 사항까지, 모든 민원의 창구가 되어 있다.


특히 출결과 관련해서는 아침부터 전쟁을 겪는 일도 많다. 누군가는 아프다고, 누군가는 늦잠을 잤다고, 누군가는 오늘 생리결석을 쓰겠다고 연락이 온다. 출석을 제대로 안 하는 학생이 학급에 1~2명만 있어도 교사의 평화로운 아침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담임교사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출근길에, 혹은 교무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개인 핸드폰으로 걸려 오는 전화를 받다가 조회를 들어가고, 수업을 시작한다. 출근시간 전부터 퇴근시간까지, 또는 퇴근 후까지 교사는 자신을 돌볼 틈 없이 하루를 살아간다. 


학생 등교하지 않은 원인 … 모두 학교와 교사 탓
‘오늘 ○○이가 아파서 등교가 어렵습니다.’ 몇 년 전 일이다. 상습적으로 결석하거나, 조퇴하던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문자가 왔다. 전날 조퇴하며 “내일부터는 열심히 다니겠다”라고 약속했던 학생이었다. 혹시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아보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학생에게 연락해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이 많이 아픈가요? 통화 가능하실 때, 연락해 주세요’라고 문자를 남기고, 하루를 허겁지겁 보냈다. 

 

“학교 가면, 선생님들이 혼내서 가기 싫대요.”

 

오후가 돼서야 통화가 되었을 때, 기운이 빠지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학부모는 선생님들이 ○○이를 생활지도 한 것을 항의하였다. 그리고 학생이 등교하지 않은 원인을 교사에게 돌리고 있었다. 담임교사의 마음과 지도한 교사들의 마음을 전해도, 여전히 학교 탓을 하며 화를 내기만 하였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력감’ 그 자체였다.


○○이는 등교하면 ‘잘 하겠다’라고 약속했지만, 번번이 약속을 어겼다. 계속 상담하고, 간식도 챙겨주며 격려도 했지만, 출결문제는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학부모의 비슷한 항의도 계속 들어야 했다. 학생을 끝까지 지도하고, 책임지려고 노력했던 것은 결국 소진으로 돌아왔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내가 감당하고, 버텨야 하는 일이었다.


또 한 명의 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2025년 5월, 제주에서 또 한 명의 교사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기 전 겪었던 고통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학생지도 중 겪은 어려움, 학부모의 반복된 학교와 교사 탓, 카톡으로 주고받은 대화들. 그 어떤 것도 특별하지 않았다. 교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고, 지금도 누군가는 겪고 있을 일상이었다. 나는 너무 두려웠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일상이 만든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말 한마디가 있었다면, 한 교사를 지킬 수 있었을까? 떠나간 이들이 홀로 감당했던 아픔들을 남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함께 하지 못했다. 그저, ‘우리는 언제까지 동료를 잃어야 합니까?’라는 자조적인 질문을 반복할 뿐이다. 교사들은 또 한 명의 동료를 지켜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또 반복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있다. 하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기관은 제삼자처럼 머물러 있다. 민원대응체계를 점검하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 공식적인 사과도, 책임 있는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 동료의 죽음 앞에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교사뿐이다. 결국 동료교사를 떠나보낸 슬픔도 개별 교사가 감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학교는 좁지만, 교사는 외롭다
교사 개인이 모든 것을 떠안는 시스템은 교사들의 단절을 가져왔다. 학교에 가면 교사들은 서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른다. 학교는 좁지만, 교사는 외롭다. 수많은 업무와 학생생활지도가 교사 개인에게 부과되어 있고, 그것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교사들은 서로의 짐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나 역시, 내가 짊어지고 있어야 할 무게를 감당하느라, 옆 교실에서, 교무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혹시라도 내 짐을 나누면, 다른 선생님에게 폐가 될까 봐 점점 더 철저히 개인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동료교사로서 용기를 내 먼저 다가가더라도, 동료교사가 힘들어하는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없는 무력한 상황과 짐을 덜어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할 뿐이다. 결국 교사들은 침묵과 단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평소 이렇게 살아가다 보니 힘든 일이 생긴다고 한들, 누구에게 손을 내밀 수가 있을까. 교사에게 생긴 어려움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학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학교의 민원대응체계를 점검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학교는 민원을 처리하는 기관이 아니라 교육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교사들은 민원을 나눠서 처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교육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을. 제주 선생님이 부장교사로서 감당했던 무게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교사의 업무는 이미 과포화 상태이지만, 새로운 정책이 생겨날 때마다 교사들의 업무는 늘어날 뿐이다. 교무실은 이제 조용한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각자에게 맡겨진 업무를 하느라, 서로의 얼굴을 볼 시간도 없이, 안부인사 하나 전할 시간도 없이 모니터만 보고 있다. 그래서 단위학교 자체가 책임을 지는 시스템 점검은 결국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말로만 들린다. 

 

교사들은 또 한 명의 동료를 잃었다. 그리고 동료를 잃게 한 고통은 여전히 누군가가 살아내고 있는 오늘이기도 하다. 이런 오늘이 달라지지 않기에 나는 기도라도 간절히 해본다. 

 

“선생님 괜찮으세요?”라는 안부라도 전할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제주에서 떠난 선생님의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내가 무너지지 않기를.
또 어떤 교사도 무너지지 않기를.

호민애 서울대사범대부설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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