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가 말하지 못하는 교육 현실
2025년, 한국 교육의 화두는 단연 학령인구 감소다. 초·중·고 학생 수는 10년 사이 100만 명 이상 줄었다. 단순히 계산하면 교원 정원도, 초·중등교육 예산도 줄이는 것이 맞아 보인다. 그러나 교실의 현실은 정반대다. 여전히 과밀학급은 줄지 않고, 소규모학교는 급증하며, 다문화학생, 기초학력 보장, 고교학점제 운영 등 질적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해도 ‘학생 수 감소’에 따른 교육재정 축소와 그에 따른 교원정원 감축이라는 단순 논리를 이기지 못한다. OECD 교육지표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 대비 교원 수’만으로는 한국 교육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기 어렵다. 교원 정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교육의 질·형평성·미래 대응을 결정하는 전략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교원 정원을 둘러싼 다층적 모순
● 경기도 교실, 여전한 과밀과 불안정한 정원
경기도는 교원 수급 불균형의 전형을 보여준다. 2025년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는 21.7명, 중학교는 25명으로 전국 평균보다 각각 2.3명, 2.1명 많다. 전체 학급의 23.7%가 과밀학급(27명 이상), 그중 10.9%는 초과밀학급(34명 이상)에 해당한다. 정원이 부족해 매년 수천 명의 기간제교사가 충원된다. 2025학년도 기준 경기도는 전국 대비 58% 수준의 기간제교사를 배정받았다. 교육현장은 “교사 숫자는 맞추지만, 정규 교원이 아닌 임시방편”이라며 불안감을 호소한다.
“과밀학급 문제는 단순히 아이들이 좁은 교실에 모여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개별 학생 지도가 어렵고, 안전사고 위험까지 커집니다. 그런데도 기간제교사로 버티라는 건 현장을 외면한 처사입니다.” (경기도 A 초등학교 교사)
● 소규모학교 증가와 교과 운영의 위기
반대로 농산어촌 지역에서는 소규모학교가 급증하고 있다. 경기도 초등학교의 17%, 중학교의 5%가 학생 수 100명 이하다. 교사가 최소 인원만 배치돼 전 과목 개설이 어렵고, 전보 갈등도 심화된다.
“신도시 개발로 학생 수가 급격히 줄면서 교사들이 과원으로 전보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교사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고, 교육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B 중학교 교사)
● 고교학점제와 다문화, 새로운 수요의 폭발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고교학점제는 교사 부족 문제를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일반계 고교의 평균 개설 과목 수는 60.5개에 이르지만, 교사 수가 한정돼 있어 학생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순회교사 확대 요구도 정원 부족으로 제약을 받는다. 교육부가 올해 중등교원 1,600명을 더 뽑겠다고 했지만, 현장은 ‘학교당 0.28명’ 늘어난 수준이라며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문화학생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경기도 다문화학생은 2025년 기준 5만 7,000명으로 전국의 28%에 달한다. 언어·문화 지원을 위해 더 많은 교사가 필요하지만, 정원 배정에는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언어 장벽 때문에 맞춤형 지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원은 학급 수만 기준으로 산정되니, 지원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다문화교육 담당 C 초등학교 교사)
● OECD 지표가 놓치고 있는 맹점
그러나 OECD 교육지표는 학생 수 대비 교원 수, 학급당 학생 수 등을 단순 비교한다. 그러나 한국은 과밀학급과 소규모학교가 공존하고, 다문화·기초학력·AI교육 같은 질적 요인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OECD 평균을 단순히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 사회의 특수한 교육 수요, 즉 과밀·소규모·다문화를 고려하지 않은 지표는 현실을 왜곡합니다.” -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9월 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지방교육재정전략포럼 발표 내용 중)
“인구가 줄었다고 교육비나 교사를 줄여야 한다는 건 일차원적입니다. 학생이 줄었다고 바로 교사를 줄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늘릴 땐 쉽게 늘릴 수 있어도 줄이기는 어렵습니다. 경기도는 중학교 과밀학급이 60%가 넘습니다. 35명 들어찬 교실에서 맞춤형교육이 가능하겠습니까? 농촌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도 지역공동체를 위해 반드시 유지해야 합니다. 학교를 없애면 지역이 사라집니다. OECD와 단순 비교도 문제입니다. 우리는 휴직교사·비교과교사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실제와 맞지도 않습니다.” - 임태희 경기도교육감(9월 23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에서 열린 제4회 교육정책네트워크 토론회 발표 내용 중)
임태희 교육감의 지적대로 정책의 자기모순도 겹친다. 정부는 지역소멸 위험을 이유로 인구가 줄어드는 지방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 그러나 학교의 학생 수 감소는 곧바로 교원 감축과 교육재정 축소의 논리로 연결된다. 같은 인구 감소를 두고 상반된 잣대를 들이대는 셈이다.
특히 OECD 교육지표 교사 수는 휴직교사와 기간제교사를 모두 포함하고 있어 국가별 교사의 고용 형태(정규직·계약직)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우리나라 교사는 정규직이라서 휴직 시 대체 기간제교사를 고용하므로, 전체 교사 수에 휴직교사와 기간제교사 수가 중복 산출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셈할 수는 없으며, 셈할 수 있는 것이 전부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한국 교육정책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비춘다. 단순한 숫자의 감소에 매달리기보다, 그 속에서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가 핵심 과제라는 것이다.

숫자 아닌 교육권 _ 교원 정원 개편의 골든타임
교원 정원의 역설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육의 질과 미래를 좌우하는 구조적 과제다. 단기적으로는 과밀학급 해소와 정규 교원 확충이 시급하며, 중기적으로는 교원 정원 산정 방식을 학생 수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특성과 교육과정 다양성, 학생 배경을 반영하는 질적 기준으로 전환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안정적 교육재정 보장과 고등교육 공공지출 확대가 필수적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교육부는 정원 기준 개혁과 미래 교육 대비 교사 재교육을 주도하고, 시도교육청은 지역 맞춤형 교원 배치와 다문화·특수교육 지원을 책임져야 한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교육재정 개편과 고등교육 공공지출 확대를 입법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경기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재정 기반을 마련해야 하고,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협력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컨트롤타워로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때 정책은 일관성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학생 수 감소를 곧장 감축의 근거로 삼는 것은 아인슈타인이 경고한 ‘숫자의 함정’에 빠지는 것과 다름없다. 학령인구는 빠르게 줄고 있지만, 교실의 현실은 단순한 숫자 감소와 다르다. 지난 5년간 학생 수는 6% 줄었으나 교사 수는 5% 줄었고, 학급 수는 1.4% 감소에 그쳤다. 이는 기초학력 미달, 다문화학생 증가, 고교학점제 시행 등 새로운 교육과제가 늘어나면서 교원의 역할이 오히려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원 정원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의 학습권과 지역공동체 유지는 국가적 책무다. 오히려 감소한 숫자는 한 명 한 명에게 더 깊이 투자할 기회다. 한국 교육이 이 역설을 기회로 전환할 때, 미래 세대는 더 튼튼한 교육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교원 정원 개편은 우리 아이들의 학습권과 미래를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기회이자, 교육공동체가 함께 붙잡아야 할 골든타임이다. 숫자는 줄었지만, 교육의 책임은 줄어들 수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