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기 칼럼] AI와 교사의 권위

2026.07.07 10:00:00

평가에서 AI 활용과 관련한 이슈
AI 시대의 평가 관련 강연을 할 때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교수자가 평가 문항 제작, 보고서 주제 예시 추출 및 평가 루브릭 제작, 보고서 평가 및 피드백 작성 등을 작업하면서 AI를 사용하면 밝혀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사용을 금하면서 교수자가 사용하는 것은 AI 활용 윤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교수자의 AI 활용을 밝히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사용 내역을 밝힌다면 어디까지 그리고 어떻게 밝혀야 할까?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밝힐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무엇이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등 다양한 질문이 이어진다. 여기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AI 시대 교수자의 윤리와 활용 지침
학생이 AI로 글 쓰는 것을 금하면서 교사가 AI로 채점하는 것은 과연 정당할까? 뉴욕대학 철학 교수인 콰메 아피아(Kwame Appiah)는 “학생이 보고서 초안을 작성할 때 AI 사용을 막는 이유는 다른 기술처럼 글쓰기도 많은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과제 채점 능력을 갖고 있는 교사가 평가 연습을 할 필요는 없다”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Appiah, 2024). 


그는 교수자들이 느낄 수 있는 윤리적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주는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아피아의 주장과 달리 학생들은 교사가 AI를 사용해 과제를 채점하는 것에 대해 90% 가까이가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Proulx, 2024). 이유는 이중잣대에 대한 분노 및 불공정성, 인간적 피드백의 가치 훼손 및 인간적 교감의 단절, 전문가로서의 직무 유기 등이었다. 


국내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에 AI를 쓰는 교사가 늘고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학에서는 AI로 작성된 학생부인지 검사하는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는데, 학생부 검사용 GPT 킬러를 도입하고 있는 대학은 83곳에 이른다고 한다(최인준, 2025). 이에 따라 교수자의 AI 활용 여부를 명확히 공개하는 투명성 원칙, 학생 동의 절차, 개인정보 보호 기준, 인간 교사의 최종 검토 의무 등이 중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교수자의 AI 활용 공시
교수자의 불투명한 AI 활용은 교육 서비스의 질적 저하만이 아니라 신뢰 붕괴라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학생용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통해 학문적 정직성과 출처 표기를 강조하는 상황에서는 교수자의 AI 활용 공시도 윤리적 의무이자 교육적 책임이 되고 있다. 교수자가 보고서 피드백을 위해 AI를 활용할 경우 어디까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밝혀야 할까? 


교수자의 AI 활용을 밝히는 수준은 AI 활용 정도와 관련이 된다. 가장 낮은 단계의 활용, 즉 피드백 내용에 대한 문장을 다듬고 보완하는 수준에서 AI를 활용한 경우에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는 기존의 워드프로세서 기능을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교수자가 원할 경우에는 강의계획서(수업안)의 평가 부분에 ‘문장 교정 및 가독성 향상을 위해 AI 도구를 부분적으로 활용함’ 정도로 명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니면 수업 중에 구두로 언급해도 될 것이다. 


중간 단계의 활용, 즉 피드백의 핵심 논지 설정과 학생들의 전반적인 오류 패턴 분류 등을 위해 AI의 분석 기능을 활용했다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보고서 피드백의 논리적 구조화와 오류 유형 분류에 AI의 분석 데이터를 참고하였음. 최종 검토와 수정은 교수자가 직접 수행함’처럼 사용 방식과 최종 처리 방식을 밝히면 될 것이다. 


높은 단계의 활용 예로는 평가기준표(루브릭)에 따라 AI가 1차 피드백을 생성하고, 이를 교수자가 검토하고 수정하여 피드백을 제공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어떤 모델을 활용했는지, 교수자는 어떤 방식으로 검토 절차를 거치는지 밝히면 된다. 이미 공지한 평가기준표를 어떤 AI에 제시하여 1차 피드백을 받는지, (만일 여러 개의 AI를 활용해 피드백을 받는다면) 다양한 결과를 어떻게 상호 비교하는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강의계획서 평가 부분에는 ‘AI가 생성한 1차 피드백을 바탕으로 교수자의 전문적 식견을 더해 제공한 피드백 내용을 최종 완성하였음’이라고 명시하면 된다. 이 경우 학생들은 평가 피드백이 AI와 교수자의 협업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교수자의 AI 활용 공시 부작용 완화책
교수자가 사용하는 AI 모델을 공개할 경우 학생들은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해당 AI를 활용한 사전 시뮬레이션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예방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는 보고서 평가에 초점을 맞춰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첫째는 보고서 평가 방식의 다변화이다. 최종 점수를 부여할 때 보고서 완성도보다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의 지적 여정을 평가의 핵심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어떤 자료를 참고했고, AI와는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으며, 논리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AI의 제안 중 무엇을 수용하고 무엇을 거부했는지 기록한 성찰일지를 함께 제출하게 하여 해당 평가 요소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 대한 구술시험이나 발표를 최종 점수에 상당 부분 포함시키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둘째는 교수자의 최종 판단권 명시이다. 사용하는 AI를 공개할 경우 그것이 점수를 결정하는 유일한 잣대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AI는 문장력, 구조화, 핵심 키워드 포함 여부 등 기술적인 측면(40%)을 평가함. 교수자는 논리의 독창성, 현장 사례 적용력, 비판적 통찰력 등 심층적인 측면(60%)을 평가함’과 같이 역할을 분담하고 이를 공개하는 상호보완적 평가체계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수정 과정 자체를 학습의 일부로 수용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AI로 사전 평가를 한 후 이를 바탕으로 글을 고치는 행위를 자기주도적 학습의 한 과정으로 간주하는 관점도 필요하다. 학생에게 교수자가 사용하는 AI의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기 전의 초안과 수정 후의 최종본을 함께 제출하게 한다. AI의 피드백을 학생이 얼마나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발전시켰는지를 비교 평가하여 가산점을 부여한다. 


넷째는 생성 AI가 작성하기 어렵거나 평가하기 어려운 맥락적 과제를 설계하는 것이다. AI의 학습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은 아주 최신의 뉴스나 학교가 속한 지역사회의 특수한 현안을 과제 주제로 삼는 것이 한 예이다. 개인적 경험과 연결시키는 과제 부과도 보탬이 된다. AI는 흔히 일어날 법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조합하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지만, 학생만이 겪었을 법한 아주 구체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를 제공하는 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 학생의 경험이 녹아든 글에는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게 되어 어느 정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나아갈 방향
교육 현장에서 교수자들이 평가 등의 목적으로 AI를 활용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추세이다. 이를 윤리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교육자·학생·기술전문가 사이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이 AI 탐지 프로그램까지 동원하여 교수자의 피드백을 검증하기 시작했다. 이 사례는 교수자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첫째, 교육적 권위라는 것이 ‘전문적 수고’에서 나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학생은 교수자의 고유한 통찰과 비판적 사고가 담긴 고유한 피드백을 기대한다. 교수자가 학생의 글을 읽지 않고 AI에게 그 과정을 위임한다면 이는 학생의 노고에 대해 교수자가 기울여야 하는 관심을 철회하는 것이다. 학생은 이를 교육적 방임으로 간주할 것이다. 


둘째, AI 윤리의 적절한 상호성을 확립해야 한다. 학생에게는 AI 사용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교수자 자신은 아무 제약 없이 비공개로 AI를 사용하는 것은 모순으로 보일 수 있다. 자신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따라야 할 AI 활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 교수자 스스로도 어떠한 영역에서 AI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 일정 부분 공개할 필요가 있다. 교수자의 AI 활용 투명성은 학생들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셋째, 평가와 피드백의 본질적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교수자의 피드백은 오류 수정과 함께 학생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정서적이고 지적인 상호작용이다. 기술의 편리함에 기대어 기계에게 피드백을 위임하면 본질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인간 교사는 어휘력은 부족해도 창의적인 통찰력을 담은 글을 발견하고 동기를 북돋아 주는 적절한 피드백을 해줄 수 있다. AI가 규칙(데이터)에 따라 제시하는 똑같은 피드백을 활용한다면 창의적인 학생의 의욕이 꺾이고 많은 학생에게 기계적인 글쓰기를 하도록 장려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국내 많은 교육기관이 아직은 교수자의 AI 활용 범위와 활용 내용 공개에 대한 명시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향후에는 학습자들로부터 이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지고, 이에 따라 학교 차원에서 어느 정도 구체적인 지침이 제시될 가능성도 있다. 초·중등학교용은 교육부 차원에서 큰 틀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바탕으로 각 교육청과 학교가 자신들의 여건에 맞게 보완한 후 사용하게 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의 도래로 인해 교수자들은 평가와 피드백의 본질적 가치를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AI 시대 교수자의 진정한 역할은 더 인간다운 교육, 즉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개별적 관심과 깊이 있는 통찰을 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때 학교교육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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