늧으로 느껴서 아는 일과 말로 여겨서 아는 일

2021.12.06 10:30:00

1. 몸과 머리와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람들은 어떤 말을 배우고 쓰느냐에 따라 머리를 굴리는 것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이를테면 한국말을 배우고 쓰는 사람과 영국말을 배우고 쓰는 사람과 중국말을 배우고 쓰는 사람은 말이 달라서 머리를 굴리는 것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머리를 굴리는 것이 달라짐에 따라 마음을 쓰는 것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이제까지 사람들은 어떤 말을 배우고 쓰더라도 머리를 굴리는 것과 마음을 쓰는 것이 같거나 비슷할 것으로 생각해왔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이런 말과 저런 말이 서로 다른 바탕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배우고 쓰는 것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았다. 이를테면 한국말은 상대에 따라서 말을 높이고 낮추는 말이 매우 많아서, 어떤 사람이 한국말을 배우고 쓰게 되면, 무엇이든 위아래로 차려서 바라보는 버릇을 갖기 쉽다. 그러나 영국말은 상대에 따라서 말을 높이고 낮추는 말이 매우 적어서 어떤 사람이 영국말을 배우고 쓰게 되면, 무엇이든 나란히 차려서 바라보는 버릇을 갖기 쉽다. 이런 까닭으로 한국말을 배우고 쓰는 사람과 영국말을 배우고 쓰는 사람은 머리를 굴리는 것과 마음을 쓰는 것에서 다름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것을 매우 가볍게 생각해왔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배우고 쓰느냐에 따라서 머리를 굴리는 것과 마음을 쓰는 것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살펴보려면, 사람들의 몸과 머리와 마음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알아보아야 한다. 

 

몸은 내가 온갖 것과 함께 하는 일을 통해서 살아가는 일을 이루어가는 나의 기틀을 말한다. 내가 나로서 나고 살고 죽는 것은 온갖 것과 함께 하는 나의 기틀인 몸이 나고 살고 죽는 것을 말한다. 

 

머리는 나의 몸이 살아가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갖가지 것을 부리는 나의 재주를 말한다. 나는 머리가 돌아가는 일을 바탕으로,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서, 몸이 살아가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간다.   

 

마음은 내가 몸과 머리를 써서 만들어나가는 나의 세계를 말한다. 나는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굴려서 나의 안에 마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나는 마음의 세계를 갖게 됨으로써, 마음의 밖에 있는 사물의 세계를 마주하여,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몸과 머리와 마음을 아우르는 하나의 임자를 ‘나’라고 말한다. ‘나’는 기틀이 되는 몸의 임자이면서, 재주를 부리는 머리의 임자이면서, 나름으로 나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마음의 임자이다.  

 

2. ‘어떤 것’을 ‘어떠한 것’으로 느껴서 알아보는 것 

한국사람은 나라는 임자가 몸을 바탕으로 머리를 굴려서 마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을 ‘것’, ‘늧’, ‘느끼다’, ‘얼’, ‘얼이다’, ‘말’, ‘넋’, ‘녘’, ‘녀기다’, ‘알’, ‘알다’와 같은 말로써 풀어왔다.

 

한국말에서 ‘것’은 임자가 마주하는 모든 것을 담아내는 말이다. 임자는 ‘어떤 것’을 마주하는 일을 함으로써 내가 ‘어떤 것’을 ‘어떠한 것’으로 느끼거나 여겨서 알아보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임자가 마주하는 ‘것’에서 냄새, 맛깔, 빛깔, 소리, 모양과 같은 ‘늧’이 일어난다. ‘늧’은 ‘것’이 임자에게 느낌이 일어나게 만드는 감각 자질이다. 사람들이 ‘느닷없이’라고 말할 때 ‘느닷’은 ‘늧앗’으로서 ‘늧’의 ‘씨앗’을 말한다. ‘늧’의 ‘씨앗’이 흐릿한 상태에서 갑자기 어떤 것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느닷없이’라고 말한다. 

 

‘것’에서 비롯하는 ‘늧’이 몸으로 들어오면, 머리에 ‘어떤 것’에 대한 ‘어떠한 얼이’가 얼이게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얼이’를 마음에 비추어 보고서 ‘어떤 것’을 ‘어떠한 것’으로 느껴서 알아보는 일을 한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어떤 것에서 비롯하는 노란 빛깔이 눈으로 들어와서 머릿속에 노란 빛깔을 가진 어떤 것에 대한 ‘얼이’가 얼이게 되면, 이러한 ‘얼이’를 마음에 비추어 보고서 ‘어떤 것’을 ‘노란 빛깔의 것’이라고 느껴서 알아보는 일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것’에서 비롯하는 ‘늧’으로써 ‘어떤 것’을 ‘어떠한 것’으로 느껴서 알아보는 것을 지각(知覺)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지각은 나비, 돼지, 멸치, 침팬지, 사람과 같은 것에서 두루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비, 돼지, 멸치, 침팬지와 다르게 말로써 생각을 펼친다. 사람들은 말로써 생각을 펼치게 되면, 늧으로 느껴서는 알 수 없는 것까지 깊고 넓게 알고, 바라고, 이룰 수 있다. 이로써 사람들은 온갖 것을 살려서 살아가는 살림살이의 임자로서 설 수 있다.    

 

‘말’은 임자가 어떤 것에 대한 뜻을 소리에 담아서 생각을 펼쳐내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말을 배우게 되면, 낱낱의 말을 이리저리 엮어서, 온갖 종류의 생각을 펼쳐서 더불어 함께 뜻을 주고받는다. 

 

한국말에서 ‘말’은 ‘말다’와 바탕을 같이하는 말로서, 두 가지 뜻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첫째로 말은 ‘~지 말라’고 하는 것으로서, 무엇이 어떤 일을 멈추어서 끝을 맺는 것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너는 밥을 먹지 마라”에서 ‘마는 것’은 네가 밥을 먹는 일을 그대로 멈추어서 끝을 맺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 말았다’라고 하는 것으로서, 무엇이 어떤 일을 이루어서 끝을 맺는 것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너는 밥을 먹고 말았다”에서 ‘마는 것’은 네가 밥을 먹는 일을 그대로 이루어서 끝을 맺는 것이다.

 

사람이 어떤 것을 어떤 말에 담는 것은 어떤 것을 어떤 말로서 끝을 맺도록 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이것은 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을 ‘저것’이나 ‘그것’이 아닌 ‘이것’으로 끝을 맺게 하는 일이고, ‘꽃’을 ‘돌’이나 ‘물’이 아닌 ‘꽃’으로 끝을 맺게 하는 일이고, “이것은 꽃이다”를 “이것만 꽃이다”나 “이것도 꽃이다”가 아닌 “이것은 꽃이다”로 끝을 맺게 하는 일이다. ‘말’은 무엇이 무엇으로서 끝을 맺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엇에 대한 말을 가지고, 무엇에 대한 생각을 함께 펼칠 수 있고, 함께 나눌 수 있다. 

 

한국사람은 말을 배우고 쓰는 것과 함께 나의 안에서 생각을 펼치는 줏대인 ‘넋’이 생겨나 자리하는 것으로 보았다. 말을 배우지 않은 단계에서 사람은 그냥 개나 돼지처럼 늧으로 느껴서 아는 일을 하다가, 말을 배우게 되면서 ‘넋’으로써 생각을 펼치는 것으로 보았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넋’을 ‘혼(魂)’이나 ‘백(魄)’으로 새겼다. 

 

한국말에서 ‘넋’은 ‘녘’과 ‘녀기다’와 바탕을 같이 하는 말이다. ‘넋’은 사람들이 말로써 생각을 펼쳐나가는 줏대를 일컫는 말이고, ‘녘’은 사람들의 생각이 온갖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고, ‘녀기다’는 사람들이 말로써 생각을 펼쳐서 어떤 것을 어떠한 것으로 녀겨서 알아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넋’이 나가거나 ‘넋’을 잃으면, 생각이 온갖 것으로 뻗어나가서, 어떤 것을 어떠한 것으로 여겨서 알아보는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이 ‘것’에 바탕을 둔 ‘늧’으로써 어떤 것을 어떠한 것으로 느껴서 알아보는 지각의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이 두루 함께 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는 반면에 사람들이 ‘말’에 바탕을 둔 ‘넋’으로써 어떤 것을 어떠한 것으로 여겨서 알아보는 생각의 경우에는 어떤 말을 배우고 쓰느냐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이러니 우리는 한국말, 영국말, 중국말과 같은 말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  

 

 

 

최봉영 전 한국항공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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