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교원문학상 동화 가작> 형 제

2004.12.07 10:06:00

역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 마을에는 십자가를 머리에인 성당이 가장 키 큰 건물이었다. 아이들은 이 마을을 성당 마을이라 불렀다. 솟대처럼 우뚝 선 간이역 풍향계는 남에서 동으로 동에서 남으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후 두 시 완행열차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역을 빠져나갔다.

“형, 성공했어?”
“기다려 봐. 갖고 올게.”

석이는 막 지나간 완행열차 꽁무니라도 잡을 듯이 철길로 내달았다. 열차는 뱀처럼 길게 꼬리를 달고 모롱이를 돌아 사라졌다. 훈이는 기차가 지나간 굴다리 밑에 엎드려서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형이 손을 치켜들고는 마라톤 선수처럼 훈이를 향해 달려 왔다. 납작해진 왕못이 분명했다. 형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훈이는 열 살이다. 이 시간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 지내야 할 아이다.
“형, 오늘은 꼭 자전거 훔쳐 주는 거지?”
“짜-식, 보채긴......”
납작해진 못으로 열쇠를 만들기 위해 망치질을 하던 석이는 훈이를 힐끗 바라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 한 조각이 두둥실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훈이가 학교에 가지 않고 역 근처에서 놀기만 한 것이 벌써 달포는 넘었다. 훈이는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학교보다는 형과 함께 노는 역 마당이나 성당 마당이 더 좋았다. 성당 놀이터 언덕에는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학교가 아이들을 가두어 두고 있는 한낮에는 성당 놀이터는 훈이 형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당 놀이터가 훈이에게 학교를 잊게 했다. 학교 운동장보다 더 재미있게 탈 수 있는 놀이 기구도 많았다. 성당 마당에는 무서운 선생님도 놀리는 아이들도 없어서 좋았다. 노란 색으로 색칠한 미끄럼틀이며, 혼자서 졸고 있는 그네, 시이소오, 정글짐, 이 모두를 훈이와 석이가 다 차지하고 놀 수 있는 다정한 동무였다.

훈이는 형과 단 둘이 살고 있다. 엄마는 돈을 벌어오겠다며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아 직장을 잃은 아픔으로 술만 마시는 아빠와 매일 다투던 엄마가 집을 뛰쳐나간 후 아빠는 술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두 아이만 달랑 남겨둔 채.

훈이 형제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은 성당에서 가까웠다. 칠이 벗겨진 함석판을 머리에 얹은 키 낮은 오두막집. 새벽 미사를 알리는 성당 종소리가 훈이네 방 이불속까지 파고들었다.

“형, 엄마는 우리들이 보고 싶지 않을까?”
훈이는 가끔 형에게 엄마 이야기를 꺼냈으나 형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엄마는 돈 벌면 우릴 찾으러 오실 거야.”

드르륵! 부엌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이- 불쌍한 것들, 지들끼리 밥은 해 묵나 우짜노?”
걱정 반 짜증 반, 큰 방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 큰 방 아주머니의 보살핌이 아니었더라면 벌써 거리로 내쫓긴 몸이었을 것이다.
“네, 라면 끓여 먹었어요.”

큰 방 아주머니가 챙겨주시지 않았으면 동사무소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석이 목소리는 풀기가 없었다. 끼니 걱정이라도 해주시는 큰 방 아주머니 목소리에는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

훈이와 석이에게 학교는 점점 관심 밖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학교에 가도 함께 놀아 주는 동무도 없었고, 선생님도 말썽만 일으키는 훈이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으셨다. 때가 절은 옷차림에 공부도 못하는 훈이 형제를 아이들이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다. 주일 미사에 오는 사람들로 성당 마당은 여느 때와는 달리 붐볐다. 훈이, 석이 또래의 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성당 놀이터에도 성당 뜰에도 아이들이 가득했다. 운동화를 신은 아이들이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미끄러지듯이 달렸다. 달린다기보다는 나는 것처럼 빨랐다.

“형, 저 아이 운동화 밑에는 바퀴가 달렸나봐.”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훈이가 형에게 말을 걸었다.
“야 임마, 그것도 몰라. 저게 바로 휠리스라는 거야.”
형은 훈이 곁으로 다가섰다.
“야 신기하다. 형 우리도 저거 사자.”
훈이는 철부지였다.
“돈이 어딨어. 얼마나 비싼데.”
형제는 부러운 듯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바퀴 달린 운동화가 내달리는 것을.

멀리서 왔는지 성당 마당에는 승용차도 몇 대 보였다. 같이 놀아 주는 동무들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일요일은 덜 심심했다. 미사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몸집이 다른 차보다 큰 검은색 승용차 근처에서 놀던 훈이가 형 석이를 불렀다.

“형, 차 문이 열렸어.”
“그래, 그럼 한 번 열어 봐.”
훈이는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문이 열렸다. 무심코 한 짓이었다.

운전석에 커다란 지갑이 보였다. 지갑은 손잡이가 금빛이었다. 성당 안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신부님의 기도 소리가 쩌렁쩌렁 울러 나왔다. 해부대 위에 놓인 붕어의 가슴처럼 석이 가슴에서는 방망이질 소리가 났다.

주위를 한 번 휙 둘러 본 석이는 지갑을 웃옷 속에 재빨리 숨겼다. 훈이를 데리고 성당 마당을 빠져 나왔다. 들은 힘껏 뛰었다. 멀리서 기적이 울렸다. 두 시 기차가 역으로 빨려 들고 있었다. 한 달음에 철길이 지나는 굴다리 밑으로 왔다.

훈이는 누가 오나 망을 보았다. 아무도 쫓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석이는 지갑의 지퍼를 열었다. 만 원짜리 종이돈이 한 움큼이나 들어 있었다. 돈을 꺼내 호주머니에 넣고는 지갑은 강으로 던져 버렸다. 돈이 든 호주머니가 불룩했다. 파리를 잔뜩 잡아먹은 두꺼비 마냥……

‘무엇을 살까?’
한참을 망설였다. 갑자기 생긴 많은 돈에 두 아이의 가슴은 내내 벌렁거렸다.
둘은 농협 옆에 있는 신발 가게로 갔다. 칠 만원을 주고 바퀴 달린 운동화 두 켤레를 샀다. 빗물이 배어드는 코끝이 해어진 운동화가 새 것으로 바뀌었다. 신발 가게에서 나온 훈이와 석이는 역 앞을 지났다.

“형, 돈까스 사줘.”
훈이는 학교에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양식집에 가서 돈까스 먹었다고 자랑하는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좋아, 돈까스 집이 어딨니?”
“삼거리 우체국 옆에 있잖아.”

형제는 콧노래를 부르며 우체국 가는 길을 따라 신나게 걸었다. 통닭집 앞을 지났다. 돈까스를 파는 식당에 들어갔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서 말로만 듣던 양식집이었다. 분홍색 식탁이 잘 어울리는 깨끗한 식당이었다.

“얘들이 웬 돈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어?”
“……”

식당 아주머니가 형 석이가 만지고 있는 돈 뭉치를 본 것이었다. 식당 아주머니가 놀란 듯 묻는 말에 석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아이들이 많은 돈을 가진 것을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주인이 마음에 걸려 석이는 훈이 손을 잡고 돈까스 집을 슬그머니 나와 버렸다.

두 아이는 도망치듯 내달려서 뒷골목에 있는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둘은 자장면을 시켰다. 훈이는 입가가 시꺼멓게 자장 국물이 묻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어댔다. 자장면 곱빼기를 배가 풍선처럼 커지도록 먹었다. 며칠 동안 굶은 배를 한꺼번에 채울 듯이…….

역 마당에서 새 운동화로 바꿔 신은 형제는 신나게 달렸다. 동생 훈이는 서툴러 자주 넘어지기도 했지만 석이는 익숙했다. 친구 휠리스를 빌려 타 본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얼음판에서 스케이트을 타듯이.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오락실에도 들렀다. 건너다보이는 낙동강 강나루에 노을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시장 골목길을 빙빙 둘러 집으로 왔다. 성당 앞을 지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모 마리아께서 지갑 훔치는 것을 보시지는 않았을까?’
석이 마음은 큰 바위 하나를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훈이는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형, 내일은 우리 어린이 대공원 가자. 응-”
“짜 - 식, 그래- 좋아.”
석이는 너무 많은 돈이 호주머니에 불룩하게 들어 있는 것이 어쩐지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이 안개처럼 퍼졌다.
막 대문을 들어서는데, 큰 방 아주머니와 낯선 키 큰 아저씨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보니 키다리 아저씨는 성당지기 아저씨였다.

“얘들이구먼요.”
큰 방 아주머니는 턱으로 석이를 가리켰다.
“요 녀석들…….”
어느새 석이의 손이 덥석 잡혀 있었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훈이는 겁이 덜컥 났다.
“잔 말 말고 아저씨 따라 가보면 알 거야.”
“나는 아무 잘 못도 없단 말이에요.”

성당지기 아저씨의 억센 두 손에 훈이와 석이는 질질 끌려서 성당으로 갔다. 신부님 방으로 들어서니 신부님과 낯선 아주머니 한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부님은 미소 띈 얼굴로 말없이 석이와 훈이의 손을 잡았다. 신부님의 손은 따뜻했다.

“다 용서할 테니 너희들이 한 일을 이야기해 봐요.”
처음에는 석이가 절대로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우겼다. 그러나 불룩한 호주머니 속에 든 돈 때문에 더 이상 우길 수도 없었다. 성당지기 아저씨는 석이 호주머니에서 쓰고 남은 돈을 꺼냈다. 석이는 울먹였다.

“차에 창문이 잠겨있지 않아서 열어보았다가…… 그만…….”
둘이서 자장면도 사 먹고, 새 운동화를 샀다는 것도. 엄마가 집을 나가 동생 훈이와 둘이서 살고 있고,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는 것도 신부님 앞에서는 쉽게 입이 열렸다. 형의 눈망울만 쳐다보고 있던 훈이도 그만 형을 따라 훌쩍이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안 계시고 너희 둘이서만 살고 있단 말이냐?”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두 아이를 지켜보던 돈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쯧 쯧- 어린 것들이 오죽했으면…….”
아주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얘들이 성당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몇 번 본 일이 있지요.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라 우발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모양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장발장의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러나 석이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석이는 아주머니에게 눈물을 쏟으며 용서를 빌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물건을 탐내는 것은 나쁜 짓이란다.”
신부님은 탁자 위의 티슈를 꺼내 석이와 훈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신부님, 날씨가 추워지는데 이 아이들을 고아원에라도 보내서…….”
아주머니도 석이와 훈이를 용서하며 겨울을 지낼 걱정까지 해 주셨다.

형제는 역 마당으로 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골목길을 나서면서 형은 운동화 뒤에 달린 바퀴로 미끄러지듯이 달렸다. 평평한 포장길만 보이면 달렸다. 자동차보다도 더 빠른 느낌이었다. 그러나 동생 훈이는 아직도 서툴렀다.

“형, 같이 가-.”
훈이는 형을 불렀지만 훈이의 목소리는 바람 속에 묻혀 버렸다. 역 마당에는 벌써부터 휠리스를 타는 아이들이 많았다.

균형을 못 잡아 뒤뚱거리는 여자 아이들은 얼마를 못 가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신부님한테서도 용서를 받은 훈이 형제의 운동화는 역 마당을 어제보다 더 빨리 달렸다. 한낮이 되면서 역 마당은 사람들이 많았다.

“훈아, 우리 강둑으로 가자.”
“왜? 형......”
“여긴 아이들이 많아서 빨리 달리 수가 없어.”
둘은 손을 잡고 미끄러지듯이 역 마당을 빠져 나왔다. 육교를 건너 강둑으로 향했다. 강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 주었다. 강둑을 따라 길게 뻗은 포장길을 바퀴 달린 운동화가 달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동네와 멀어 아이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훈아, 천천히 따라와. 나 먼저 달린다.”
형은 씽씽 달렸다. 강물보다도 빨랐다.
“형, 같이 가.”

훈이는 도저히 형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강둑이 낮아진 곳에 시멘트로 잘 포장된 주차장 마당이 있었다. 훈이는 다리가 아파 강둑에 퍼질고 앉았다. 또래 아이들이 구슬치기에 왁자지껄했다.
훈이는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강둑 끝까지 갔던 형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감감 소식이 없었다.

훈이는 형을 찾아 형이 간 강둑을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가도 형이 보이지 않았다. 훈이가 주차장 마당을 한 바퀴 돌며 찾아보아도 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훈이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 때였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역으로 뚫린 큰 길로 빨간 불을 머리에 매단 119 구급차가 달려 왔다.

“형-.”
큰소리로 형을 불렀다.
'설마, 우리 형이…….'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형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훈이는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구급대 아저씨들이 물속에서 나와 들것을 구급차에 실었다. 물에 흠뻑 젖은 얼굴은 분명 형이었다.

“형-!, 형-!”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형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네가 얘 동생이냐? 빨리 차에 올라! 병원으로 가서 얘기 해!”
구급대 아저씨가 훈이를 형을 실은 구급차에 태웠다.
구급차가 강둑길을 넘어 쏜살같이 달렸다.
“형, 눈을 떠! 형, 정신 차리란 말야! 으앙앙앙......”

들것에 누워있는 형의 가슴을 누르며 인공호흡을 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는 구급대 아저씨들을 보면서 훈이는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다. 강물은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장호 부산 금명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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