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을 한 아이가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에 붙은 거울이 우리를 반겨준다. 예쁜 방울이 달린 털모자를 쓰고, 아이가 거울 앞으로 달려가 입김을 분다. 하얗게 맺힌 입김 위에 아이가 벙어리장갑 낀 손으로 하트를 그린다. 하나로 뭉쳐진 둥근 손가락이 곱게도 하트를 그린다. 하트가 지워질세라 연신 입김을 불어대며, ‘호호’ 숨결을 불어 넣는다. 숨결이 닿을 때마다 거울이 하트모양 입으로 연신 웃음을 터트린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
‘하트’라는 제목으로 글을 지었다. ‘AI 시대, 우리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나만의 대답이다. AI가 할 수 없는 것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그 첫 번째는 ‘자율성’이다. 인간은 스스로 욕망을 일으키고, 때론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이, 자기에게 해로운 욕망을 품으며 스스로의 가치와 충돌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도덕적 책임을 지며 자율성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두 번째는 ‘메타인지’다. 인간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알아차리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밖에서 들어오는 외부 정보와 안에서 일어나는 내부 정보를 구분하고, 이 둘을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다.
세 번째는 ‘감정’이다. 인간은 자기가 만든 작품에 희열을 느끼며 감동할 수 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자신만의 내적 스토리가 펼쳐지며 순간순간 강렬한 정서적 떨림을 경험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죽음’이다. 인간은 자신이 사라져도 이 세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내가 사라진다는 근원적인 두려움과 함께 그 두려움을 통해 생겨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 실존적인 주체다. 그리고 이 네 가지 모두를 합한 것이 바로 ‘예술 창작’이다. 인간이 가야 할 길이다.
옛날에는 밭을 갈 때 멀리 서 있는 미루나무를 보며 쟁기를 밀었다. 눈앞의 고랑만 보고 쟁기를 밀면 처음엔 반듯해 보이지만, 막상 뒤돌아봤을 때는 삐뚤빼뚤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망과 느낌, 생각들이 저 멀리 서 있는 미루나무다. 작가는 이 미루나무를 보며 길을 잃지 않고 작품을 쓴다. 이 미루나무는 이제 작품 속에 숨어 작품 전체를 붙잡게 된다. 독자는 이 보이지 않는 미루나무가 내뿜는 에너지에 감동 받고, 거기에 자극돼 자기만의 느낌과 해석이라는 작품값을 지불한다. 이때 독자는 작품의 새로운 창작자로 거듭나게 된다.
시공간 뛰어넘는 창작성
풍경화에는 보이지 않는 소실점이 숨어있다. 이 소실점은 그림 속 사물과 작가 사이의 시선의 거리이기도 하다. 또한 시공을 초월해 작가의 보는 눈과 관객의 보는 눈이 만나는 지점이다. 천 년 전에 죽은 작가를 되살려내 함께 영원을 경험하는 자리다. 이것은 결코 AI가 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