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교실, 수학 교육의 ‘은밀한 낙인’을 걷어내려면

2026.06.24 14:09:04

학창 시절 나에게 수학은 큰 성취감과 자신감을 주는 과목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바라본 교실의 풍경은 나와 사뭇 달랐다. 평소 활기차던 친구들은 수학 교과서만 펼치면 약속이라도 한 듯 기가 죽었다. 수학교육을 전공하며 교육학에서 '낙인효과'를 배웠을 때, 나는 학창 시절 곁에서 수학 때문에 남몰래 좌절했던 친구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낙인효과란 타인이 부여한 부정적인 편견이 개인의 정체성으로 고착화되어 결국 그 낙인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다. 오늘날 교실에서의 낙인은 과거와 달리 훨씬 정교하고 은밀하게 작동한다. 정답과 오답의 경계가 명확하고 위계성이 강한 수학의 특성상, 학생들은 일상적인 수업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수포자’라는 라벨을 붙여버리곤 한다.

 

학창 시절 내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는 매사 유쾌해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유독 수학 모둠 활동 시간이 되면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다른 조원들이 어려운 기하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갈 때 친구는 대화에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친구가 계산 과정을 헷갈려 할 때면 모둠원들 사이에 악의 없는 미묘한 침묵이나 한숨이 지나갔다. 누구도 대놓고 무안을 주지 않았지만, 그 은근한 분위기 속에서 친구는 '나는 이 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무거운 낙인을 스스로 찍고 있었다.

 

그날 이후 친구는 수학 시간이 되면 "난 그냥 찍고 잘래", "내가 풀면 답만 더 꼬인다"라며 장난 섞인 핀잔으로 상황을 넘기려 하거나 한 걸음 물러서곤 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방어벽을 치는 것에 가까웠다. 낙인이 내면화되자 친구는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어차피 모르는데 뭐"라며 쉽게 펜을 놓았고, 수학을 못한다는 은밀한 라벨링은 친구가 가진 다른 활기와 자존감까지 서서히 갉아먹었다.

 

교실 안에서 수학 수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소리 없이 소외되며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화려한 질책이 없더라도 일상적인 평가 시스템과 미묘한 분위기가 아이들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모습을 나는 매일 목격했다. 이는 내가 수학교육과에 진학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예비 교사로서 지금 나는 그때 친구들이 겪었던 실패가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은연중에 낙인을 찍고 방치하는 교육 환경의 결과물이었음을 깨닫는다.

 

미래의 수학 교사로서 나는 교실 안의 이 은밀한 낙인의 굴레를 어떻게 끊어내야 할까? 첫째로, 교사의 관찰과 피드백 언어가 정교해져야 한다. 교사는 뒤처지는 학생들의 작은 시도에도 주목해야 한다. 정답이 틀렸을지라도 "이 단계까지 생각을 전개한 방향성은 아주 독창적이야. 아직 정답에 도달하는 공식을 연결하지 못했을 뿐이야"와 같이 과정 중심의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 '아직'의 정신을 교실에 불어넣어, 실패가 낙인이 아닌 성장의 과정임을 느끼게 해야 한다.

 

둘째로, 수학적 성공의 정의를 넓혀야 한다. 고난도 문제를 빠르게 맞히는 것만이 유능함의 증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완벽한 정답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풀이 과정을 설명해 보는 것, 일상 속의 현상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프로젝트 등 다양한 평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모든 학생이 "나도 수학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효능감을 느끼도록 문턱을 낮추어 주어야 한다.

 

교육의 본질은 아이들의 내면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교사의 성급한 효율성으로 아이의 한계를 좁은 틀 안에 가두는 낙인은 교육의 본질에 정면으로 위배 된다. 학창 시절, 소리 없는 소외 속에서 수학책을 덮던 친구의 옆모습을 기억한다. 수학이 배제와 좌절의 도구가 아닌 모든 학생이 저마다의 논리를 펼치는 성장의 무대가 될 때, 교실 안의 보이지 않는 낙인도 비로소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시온 고려대 교육대학원 재학생 zion1204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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