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리에 방송된 MBC ‘신인감독’ 프로그램은 배구계를 넘어 스포츠계에서 슈퍼스타로 통하는 전 배구선수 김연경이 신임 감독에 데뷔해 성공을 거둔 스토리다. 그는 지도자 경험이 없었지만 그라운드에서 쌓아온 존재감과 특유의 리더십, 경기를 꿰뚫는 통찰력으로 강팀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선수는 물론 감독으로서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은 프로팀 방출 선수, 프로팀이 꿈인 실업팀 선수, 은퇴한 선수 등 언더독으로 분류된 선수들로 팀을 구성해 프로 제8구단을 목표로 강팀들과의 맞대결을 펼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총 5경기 중 3경기를 승리하며 살아남았고 제8구단 창단이라는 기대감을 남긴 채 종영됐다.
‘신임감독 김연경’, 이 작품이 대중적 공감을 얻은 이유는 단순한 스포츠 서사가 아니다. 기록에 남지 않던 선수들, 주목받지 못한 이들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견하고, 더 큰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잠재력은 특정 엘리트에게만 존재하지 않는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뿐이다.
방송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체격이 부족하거나, 과거 부진한 기록이 있거나, 자기 확신마저 흔들려 있던 선수들이다. 그러나 김연경 신임 감독은 이들을 처음부터 ‘언더독’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약점보다 가능성의 조각을 먼저 보았다. 그리고 그 조각을 집요하게 연결해 하나의 능력으로 만들어내었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학생을 성적으로 분류하고, 비교하고, 상위권에게만 자원을 집중하는 구조는 결국 수많은 ‘미래의 언더독 승부사’를 잃는 일이다. 프로그램 속 반전이 현실에서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 가장 놓치기 쉬운 것이 바로 이 ‘가능성의 시선’이다. 오늘날 교실은 경쟁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학생 한명 한명을 깊이 바라보는 시간은 과거보다 줄고 있다. 상위권 중심의 담론은 여전히 강력하고, 정책은 측정 가능한 지표에 집중된다. 평가 점수는 빠르게 나오지만, 학생이 가진 재능의 씨앗, 즉 잠재력은 정작 평가되지 않는다. 드라마 속 언더독들이 성장한 힘은 ‘엄청난 훈련량’이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시선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에서 무엇이 가장 시급한가? 첫째, 학생을 단일 기준으로 평가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체력·민첩·전략·멘탈·감각 중 무엇 하나가 부족하다고 해서 선수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수학이 약하다고 해서 과학적 상상력이 없는 것도, 국어 점수가 낮다고 해서 의사소통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교육평가 체계는 ‘다양한 재능의 층위’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물고기들에게 다람쥐처럼 나무를 오르라는 것으로 능력을 평가한다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교육은 점수를 키우는 시스템이 아니라, 각자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레이더가 되어야 한다.
둘째, 실패를 학습의 자원으로 인정하는 환경이 필요하다. 언더독의 성장 스토리는 항상 실패로 시작된다. 실패는 약점이 아니라 ‘방향을 찾는 과정’이다. 하지만 한국 교육에서는 실패가 곧 낙인이 되고, 낙인은 기회를 제한한다. 방송 프,로그램 속 선수들이 변화한 이유는 실패를 견딜 수 있는 심리적 안전지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도 ‘한 번의 실수로 미래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셋째, 학교는 학생의 재능을 발굴하고 조합하는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한다. 스포츠에서 좋은 감독은 뛰어난 선수만 찾는 사람이 아니다.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진 선수들을 유기적으로 조합해 ‘팀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사람이다. 오늘의 학교는 이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 예체능 소질을 가진 아이, 기술적 감각이 뛰어난 아이, 감정 이해도가 높은 아이 모두가 ‘표준화된 커리큘럼’에서 동일한 결과만 요구받는다. 이제는 학교가 학생의 강점을 조합해 개별 맞춤 성장전략을 설계하는 전문 기관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넷째, 멘토링 기반의 신뢰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김연경 감독이 선수들에게 준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신뢰’였다. 누군가 자신을 믿는다는 경험은 학생을 단순히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 준다. 현재의 교사 업무는 너무 과중하여 이런 멘토링이 실제로 이뤄지기 어렵다. 교사의 행정 부담을 줄이고, 멘토 교사제, 학교 내 전문 상담·진로 교사 확충이 필수적인 이유다.
언더독의 반란은 기적이 아니다. 놓쳐온 가능성을 되찾는 과정일 뿐이다. 프로그램 속 언더독 팀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 ‘가능성을 믿는 교육의 힘’이 만들어낸 결과다. 우리가 교육에 기대해야 할 것은 소수의 엘리트가 더 뛰어나다는 것보다, 잠재력이 묻힌 다수의 학생들이 자기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이 앞으로 맞이해야 할 혁신은 거창한 제도의 개편이 아니다. 바로 학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것, 그것이 언더독의 반란이 우리에게 던진 가장 큰 메시지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이긴 사람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준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 만들어진 우승 스토리보다 불확실한 도전에서 피어나는 진짜 변화를 원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개인별 맞춤식 지도 및 잠재력과 가능성을 발굴해 집중적으로 키우는 교육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참교육이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