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위기, 모든 경제 주체들의 성찰이 필요하다

2025.11.18 14:05:01

지식인,한국 경제 침체에 대비해야
한국의 노동윤리 강건한가
국민 통합의 정치에 솔선수범해야

6.25 전쟁 무렵 태어난 우리 세대는 어려서부터 생필품 결핍 시대를 살았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공을 차고 싶었지만 축구공이 없어서 돼지를 잡고 난 후 방광에 바람을 넣고 고무줄로 묶어 차고 놀았다. 어른들은 미국 제품인 만년필을 좋아했고, 가정에서는 일본 제품인 코끼리 밥통을 선호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TV를 비롯한 가전 제품은 국산이 대부분이고 로봇 청소기는 중국산에게 국산이 밀려난 것 같다. 도로에는 전에 상상도 못 했던 중국산 버스가 달리고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을 중국이 거의 대체해 가고 있다. 이러첨 중국의 파도가 몰려 오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경쟁자는 결코 일본도 아니고 중국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이처럼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며, 지금도 그 와중에 있다. 지난 달 서울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 '글로벌 이코노미 아웃룩 2026' 세션에서 거시경제·투자 전문가들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 촉발한 무역전쟁이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를 동시에 유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불법 이민자 추방으로 제조업 노동력이 공급 절벽에 이르며 경기 활력을 저하시킬 것이란 우려도 내놓았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향해서는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경제 침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는 이미 체험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달리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와 유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제조업의 중심지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은 GM 자동차 공장 덕분에 먹고 사는 공업 도시였다. 2008년 GM 공장이 문을 닫으며 시련이 닥쳤다. 대출금을 갚지 못한 집들이 매물로 쏟아졌고 자살자가 속출했다. 제인스빌 사람들은 이 불행의 원인을 미국 밖에서 찾았다. 독일·일본·한국·중국 같은 국외 제조업 강자들 탓이라고 했다. 이같은 분노에 정치인들이 올라타 트럼프는 대선 이슈로 삼았다. 그의 모토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이 제조업 부활이다. 이 목표를 위해 관세 장벽을 세우고 투자를 유치해 미국 땅에 미국인을 위한 일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제조업 쇠락의 진짜 이유를 외면했다.

 

이런 상황을 잘 전해 주는 기록이 바로 밴스 부통령이 쓴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에 남아 있다. 책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밥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결근했고 툭하면 지각했다. 하루에 서너 번씩 화장실 간다며 자리를 비웠고 그때마다 30분 넘게 쉬다가 돌아왔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은 중서부 산업지대가 쇠퇴하고 백인 노동 계층의 경제 축이 무너지는 현 상황을 우려한다. 내가 목격한 현실은 거시경제적 추세나 동향보다 훨씬 더 깊은 문제다. 요즘엔 고된 일을 기피하는 젊은이가 너무 많다.’ 그들은 ‘노동을 재능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며’, ‘주당 30시간 미만 일하면서 자신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미국 내 다른 민족 집단보다 불평은 더 많으며’ ‘자기 인생에 얼마 있지도 않은 가치마저 산산이 부수는 마약쟁이’들이다."  -미 밴스 부통령 자서전 ‘힐빌리의 노래’에서

 

그가 지적한 것은 미국인의 타락한 노동 윤리다. 미국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국에서 미국 현지 공장에 파견 나간 관리자들은 물건을 만드느라 힘든 게 아니라 나태하고 무책임하며 툭하면 회사에 소송을 걸어 돈 뜯어낼 궁리나 하는 직원들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좋은 직원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약물 남용과 범죄에 빠져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20세 이상 55세 미만 청·장년층이 12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강대국이다. 힘 자랑은 한국 같은 나라가 당해내야 하기에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으니 비상한 각오로 이 시기를 견딜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의 현실이 반기업적인 풍토가 확산하고 일하지 않는 분위기가 득세하는 우리 노동 현장을 돌아보게도 한다. 우리의 노동 윤리는 태평양 너머에서 닥쳐온 큰 파도를 헤쳐나갈 만큼 강건하긴 한 걸까.

 

기업들이 열심히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도 매년 200억 달러를 갚아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것이 앞으로 우리의 엄한 현실이다. 더구나 서학개미들은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적자재정으로 국채를 발행, 한국에는 통화가 팽창하여 국내에서 달러 고갈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태풍이 일기 전에 그 전조가 반드시 나타난다. 경제 불확실성 지수와 시장 변동성은 이미 크게 높아져 있다. 그 증세가 지금 나타나 환율은 최근 달러당 1470원에 육박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으나 대책은 미미하다.

 

한편으로 고용 한파는 2030세대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체 장기 실업자 수는 지난달 11만9000명으로 코로나19 여파가 남아 있던 2021년 10월(12만8000명) 이후 4년 만에 가장 많았다.

 

특히 대학이나 직업훈련을 마치고 사회에 진입해야 할 20대 후반(25~29세)의 취업 상황이 심각하다.  최근 발표한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대 후반 청년 중 실업자, 임시·일용직, 무급 가족 종사자, 비경제활동 인구(취업·실업 모두 아님)는 지난달 115만4907명으로 나타났다. 대학 재학·휴학자를 제외한 인구 292만1951명의 39.5%에 해당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할 20대 후반 10명 중 4명이 사실상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한 셈이다.

 

86세대의 세계관이 한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잡고 있으며, 여기에 반대하면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이들은 한국 1인당 GDP가 100달러였을 때 태어났는데, 지난해 3만6000달러였다. 거칠게 말해 360배 성장을 경험한 세대다. 인구·경제·문화 모든 것이 성장하는 시대에 살았다. 그러니, 모든 것이 내리막인 2030세대의 공포나 상실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갈등의 갭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갈대밭을 바라보라. 강한 바람이 불어도 뿌리 깊이 박힌 갈대는 결코 뽑히는 일이 없다. 정부는 정부대로 경제 주체들 모두가 정신 바짝 차려야 산다. 위기의 최대 방지책은 시장과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권력을 가진 자들과 국민 모두의 성찰이 필요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정치권은 정쟁부터 멈추고,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국민을 통합하는 정치에 솔선수범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소원일까.

김광섭 교육칼럼니스트 ggs19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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