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

2021.07.26 10:41:18

 

“불문”으로 의결한다. 다만, 경고할 것을 권고한다.
 햇살이 눈부시던, 그렇지만 코로나가 온 세상을 휘감으며 아이들의 등교조차 막고 있던, 살아있되 살아있지 않은 봄이었다. 뉴스에서는 아이들의 학력이 학부모들의 관심과 경제력에 의해 그들이 지닌 빈부의 격차만큼 벌어지고 있으며, 온라인 수업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기사가 연일 쏟아지고 있었다. 이 곳은 광역시지만, 나주, 장성, 함평 등 농촌에 더 가까운 광주의 최외곽지. 나는 올해 전근하여 특수, 기초학습부진, 고아, 기초수급자, 조손, 한부모 가정 등 관심을 가져야할 사유가 이중, 삼중으로 중첩된 아이들을 맡았다. 온라인 수업만으로 부족하다는 결론을 지은 우리 학교 담임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 가정 방문을 하기로 했다. 코로나가 수 십년동안 중단되었던 선생님들의 가정 방문을 되살린 것이다.
 

아이들은 나의 방문을 무척 반가워했다. 하긴, 원래대로라면 봄내음 가득한 교정에서 하루하루를 깔깔대며 보내야할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모니터를 통해서만 수업을 들은지 3달이 되어가는데 선생님이 자기 집에까지 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현종(가명)이는 특히 나를 반기던 아이였다. 2학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왜소한 체구에 만만치 않은 성격임을 보여주는 것 같은 뽀글뽀글한 파마 머리. 그 아이는 늘 수업 시간이면 뭐가 잘 안된다고 한다. 인터넷이 안 켜져요, 선생님이 안보여요.. 가정 방문 때는 웃으며 나를 맞이하지만, 늘 과제가 안되어 있거나, 다음 번 수업 때는 잘 참여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기 일쑤다.
 

금요일 오후, 가정방문 시간이 되면 내 휴대폰의 알림음이 쉴새없이 진동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학급단체 채팅창에 재촉하는 메시지를 입력한다. 하지만 그 날은 그것이 화근이었다. 학습 꾸러미를 보완하느라 출발이 약간 늦어진 바람에, 뒤로 갈수록 조금씩 시간이 밀렸다. 여덞명 중 일곱 번째 집인 현종이는 자기 집에 올 시간임에도 도착하지 않는 나를 채근한다. 점점 알림의 빈도는 잦아지고, 이내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선생님 언제와요?’
‘저희 집으로 출발했어요?’
‘오고 있어요?’
‘아직 멀었어요?’
‘왜 아직도 안와요’

 

연달아 메시지가 30개 쯤 왔을까. 마음이 급해진 내 차의 속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그동안 다녀왔던 길이고, 대개 차가 없었으며, 1주일 전까지 분명 신호가 노란불 점멸등이었다. 좌우를 살피며 진입하면 무난히 통과할거라 생각하며 교차로를 통과하던 순간,
“쿠쿵..... 쾅!!!!!..................”
 나의 비명과 함께 교차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직각 방향으로 진행하던 차와 부딪히면서 첫 번째 충격, 다시 신호등과 부딪히며 두 번째 충격. 내 차 양쪽 문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열리지 않을 정도로 찌그러졌고, 충격으로 인해 내 오른쪽 팔꿈치가 전면 유리와 부딪혀 완전히 어그러진 상황이었다. 뒤따라오던 목격자의 신고로 경찰차와 소방차, 구급차가 출동했으며 나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어떤 상황인지 물었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신호위반을 하신 것 같습니다. 3일 전부터 신호등이 작동했습니다.”

 

순전히 내 잘못, 그것도 법을 어겨 사고가 난 것이다. 신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충격 속에서도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아이, 현종이였다. 야속하게도 핸드폰은 깨진 자동차 유리 조각 사이에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구급대원들이 전기톱을 동원하여 문을 여는 와중에 나는‘선생님 오늘 못 가’라고 덜 다친 왼손으로 메시지를 간신히 작성하고, 구급차에 후송되었다. 나는 대학병원에서 늑골, 팔꿈치 골절, 치아 파절, 전신 찰과상 및 타박상 등 전치 10주의 진단이 나왔고, 입원하였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부정적인 감정만 들었다. 온전히 내 잘못으로 입원한 이 상황이 싫었고, 팔을 못 쓸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태어나 처음으로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고통스러웠던 사고의 순간이 반복되며 비명과 신음 속에서 잠을 깨는 것이 수차례 계속되었다. 땀과 소독약 냄새로 범벅이 된 오른팔을 보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상황을 다시 곱씹고 원망하였다. 나약해진 신체와 마음은 사고의 원인을 자꾸 외부 탓으로 돌리게 한다. 이 상황의 원인이 된 가정 방문과, 수십 통의 메시지로 나를 채근해서 마음을 급하게 만든 현종이가 원망스럽고 미웠다.

 

병문안을 온 교장, 교감 선생님과 동료 교사들, 지인들 앞에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위법 행위로 형사 처벌이 진행될 것이고, 공무원 징계 위원회에 회부될 예정이라는 소식은 마음을 더욱 무겁게 억누르고 있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으니 회복도 더디고, 간호를 해주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의미와 의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여태껏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그 어떤 시련과 위기 속에서라도 삶에 대한 의미를 찾고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던 내가, 힘든 상황이 왔다고 해서 내가 해왔던 말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자신을 질책하고 남 탓 하기를 몇날 며칠,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앞으로도 지난 며칠처럼 현실을 부정하고 남을 원망하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내 스스로 변화를 모색할 것인지를.
 

나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지금에 이른 상황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첫째, 나의 생명과 몸. 다행히 생명은 건졌다. 최악의 경우 팔을 못쓴다고 해도,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은가. 둘째, 상대방(피해자)의 건강. 사고 차량 모두 폐차된 사고 규모 대비 피해자는 금방 회복하여 2주 만에 퇴원했다고 한다.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셋째, 재산 피해. 사고를 대비하여 미리 보험을 들어놨고, 걱정없이 입원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서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마지막으로 나의 신상. 법을 어겼으니,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인사 상의 불익 또한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상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다만, 사고는 결코 고의가 아니었고, 교육을 목적으로 한 출장 중에 발생한 사고였던 만큼 참작될 여지가 있다.

 

가정 방문은 코로나로 집에서 방치될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닌가. 그것은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필요한 일이었고, 교육자로서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다. 감사하게도 학교의 많은 분들이 나의 사고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해주었다.
 

사고는 불행한 일이지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사고 후의 상황을 분석해보니, 마냥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내가 학생들에게 강조해왔던 삶의 태도를 실천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을 바꾸니,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고, 재활 여부에 따라 정상으로 생활할 수 있단 얘기를 들었다. 형사 처벌은 상대방이 많이 다치지 않아 벌금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제 공무원 징계위원회. 사고 경위서에 사고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고 담백하게 썼다. 퇴원 직전,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내 상황을 적극적으로 위원들에게 소명했다. 그 결과 <“불문”으로 의결한다. 다만, 경고할 것을 권고한다.> 라는 처분을 얻어냈다. 교육을 목적으로한 출장 중이었다는 점과 그동안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지도해 왔다는 나의 소명을 감안한 처분이었다. 가정 방문이 나를 위기에 빠트리기도 했으나, 결국 나를 구해낸 것이다.
 

사고가 있은 지 4개월 후인 9월. 학교는 마침내 등교 개학을 하게 되었고, 그 사이 나는 퇴원을 했다. 마침내 나는 교단에 다시 설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그 아이, 현종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잠시나마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몹시 반가워하며 내 품에 안긴다. 그리고 나의 팔 수술자국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선생님 아팠겠다..”
 

그 순간, 잠시나마 현종이를 원망했던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못 본 기간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내가 가진 것을 너에게 모두 줄게.’한참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농부인 현종이의 아버지가 근처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했고, 내가 들 것에 실려 구급차에 후송되는 것을 봤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자기 집에 오던 선생님이 사고가 나서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그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 몇 시야?”
“몰라요. 시계보는 법 안 배웠는데요. ”
 

세상에, 시계조차 못 읽는 4학년이라니. 그런데 너무도 당당하다. 현종이는 자신이 모르는 것은 안 배웠다고 말하는 아이다. 가정방문 첫날. 아이의 엄마는 현종이를 많은 선생님이 가르쳐보려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집에서도 포기했다고 했다. 그래도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에 가르치고, 방과 후에 남겨서 가르치고, 질문이나 작은 깨달음에도 머리를 쓰다듬어가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열정을 쏟아냈다. 한 자리수의 덧셈, 뺄셈, 구구단부터, 시계보기, 분수, 4학년 2학기 소수의 덧셈까지. 더디지만,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 안하던 아이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채점할 때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며 맞고 틀림에 따라 감정을 숨김없이 표현한다.‘지금은 10시 23분이에요’라고 자신감있게 이야기하며 새롭게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한다.

 

수업시간에는‘이 부분을 잘 모르겠어요.’라고 다시 질문하는 아이로 변했다. 엄마의 반응 또한 조금씩 달라졌다.“오늘은 저와 아빠에게 가분수와 대분수 바꾸는 방법을 설명했어요. 어찌나 자신감 넘치던지. 현종이의 어깨 쭉 편 모습은 처음봐요.”완전하지는 않아도 조금씩 아이의 삶의 태도와 공부에 대한 자세가 달라짐을 느낀다. 공자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군자의 기쁨이라고 하였지만, 감히 공자에 비할 수는 없어도 배움의 즐거움을 몰랐던 아이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뜨도록 가르치는 것이 가르치는 자의 큰 기쁨임을 현종이가 알게 해주었다.
 

현종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점심 시간 후 나와의 산책시간이다. 수술로 아픈 팔에 햇볕을 쪼여 조금이라도 회복하고자 혼자 거닐던 학교 주변 산책이, 이제는 아이들이 옆에서 나란히 내 손을 잡고 재잘거리는 데이트 시간이 되었다. 햇살이 눈부신 가을. 코로나로 인해 죽어 있던 학교가, 이제 다시 조금씩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조금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코로나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그것은 일상 생활의 소중함과 삶에서 위기에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는 삶의 태도, 그리고 가르치는 자의 기쁨이다.
 

오늘도 현종이는 누구보다 빨리 급식을 해치우고, 신발을 갈아신고 급식실 입구에서 나를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급식실을 나오면 환한 미소로 손을 내민다. 내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웃고 있는 현종이를 보고 뭐가 그렇게 즐겁냐는 교장 선생님의 물음에 그 아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교장 선생님, 나는 코로나하고, 주말하고, 방학이 싫어요.
학교 못가니까. 우리 선생님 못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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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교단수기 공모 - 은상 수상 소감

새 학기엔 코로나가 극복된

치유와 희망의 시긴이기를

 

내 삶을 바꾼 사고가 있은 지 어느새 반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코로나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위기와 역경은 그것이 극복되는 과정에서 존재와 현상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더욱 성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먼 훗날, 마스크와 거리두기로 기억될 이 시간들이 서로를 더 단단하게 만든 순간이었기를, 그리하여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해준 시련이었기를 바라본다.
 

학교로 돌아간 이후로도 몇 차례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이 반복되었다. 2020년을 함께 지낸 그 아이를 비롯한 4학년 아이들과 온전히 1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해서 5학년, 1년을 더 함께하고자 한다. 올해는 지난 해에 하지 못한 현장체험학습, 공개수업, 운동회, 축제 등 멈추었던 삶이 회복되면 좋겠다. 당연하고도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가 그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수상 소감을 쓰려고 하니, 감사드려야 할 사람이 참 많다. 이 모든 것들이 나 혼자 극복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서로의 봄이 되어주겠노라 약속하며 늘 내 곁에서 함께 이겨내준 아내 신애경,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 두 아들 서진, 서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양가 부모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또한 내가 처한 어려움에 함께 마음 아파해주고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신 김숙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삼도초 모든 교육 가족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입원 기간 동안 기간제 임시 담임으로서 우리 학급을 맡아 온전하게 이끌어준, 오늘 광주 임용 합격 소식을 전해준 정세인 선생님께도 특별히 감사와 축하의 말을 전한다. 나의 부재로 맡은 우리 학급에서의 두 달이 임용 준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어두운 면만 존재하지는 않는 법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마지막으로 어설프고 서툰 글이지만 더 나은 교사가 되라고 격려해주신 한국교총과 한국교육신문에도 감사하다. 매년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부족하지만 내가 배우고 경험하며 느낀 것들을 전하고 성장을 응원해주는 먼저 태어난 자(先生)가 되리라 다짐한다.

박준 광주 삼도초 교사 jebo@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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