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을에서 책읽기-이반 일리치의 죽음

2021.07.01 09:25:17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아침 출근길에 황금빛 꽃이 눈부신 모감주나무를 본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이 아름답고 귀한 나무는 중국에서 씨앗으로 바다를 건너 태안반도에 정착하여 숲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첫여름이 되면 그곳의 황금숲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모감주나무는 영어권에서는 골드 레인 트리(Gold Rain Tree)라고 합니다. 황금색 꽃이 나무를 뒤덮고 있는 듯한 모습이 금빛비와 흡사한 모양입니다.

 

하지를 지나 태양 빛은 세력을 나날이 더하며 황금빛 햇발을 드리웁니다. 빛나는 태양의 빛줄기가 모감주나무에 황금빛 꽃으로 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모감주나무의 꽃은 크림트의 아름다운 그림 ‘다나에’를 연상시킵니다. 제우스가 탑에 갇힌 다나에를 황금비로 변해 찾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황금비에 젖은 다나에의 몽환적 미소가 매력적으로 기억됩니다. 아름다운 행복의 절정이 황금빛이라면 인간 삶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요?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의 죽음 앞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었습니다.

 

소설은 동료들과 가족 친지들이 이반 일리치f,f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동료들은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애도하기보다는 자신들에게 가져올 이해득실을 계산합니다. 당시 상류층의 삶을 살아온 이반 일리치는 죽음 앞에 이르러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가를 거듭 묻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신이 죽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신과 운명을 저주하며 고통에 몸부림칩니다. 결국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된 이반 일리치는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히 눈을 감습니다.

 

똘스또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역사적, 사회적 모순성을 가장 예민하게 감지해낸 예술가로서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근대적 인간의 존재와 존재양식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던집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죽음을 넘어서는 사유를 하는 것은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곁에서 떠나지 않던 죽음의 공포를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죽음은 어디에 있지? 죽음이 뭐야? 죽음이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그 어떤 공포도 있을 수 없었다.

죽음 대신 빛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갑자기 그는 소리쳤다.

“아, 이렇게 기쁠 수가!”

이 모든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고 이 한순간의 의미는 이제 흔들리지 않았다.

pp.118~119

 

죽음의 과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를 읽으며 '모멘토 모리(momento mori)‘란 말을 생각났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가 아닐 것입니다. 내일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사유를 통해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강마을에 여름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무논의 어린모가 제법 푸릇푸릇합니다. 학교 경계에 수많은 열매를 총총히 달고 선 측백나무 사이로 하얀 개망초 무성한 묘지가 보입니다.^^ 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 조심하십시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똘스또이 지음, 2012, 창비

이선애 수필가, 경남 지정중 교사 soso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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