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강사를 출제 위원으로 위촉하고 수능시험 초유의 복수 정답 시비까지 불거져 공신력을 잃은 2004학년도 수능시험 결과가 발표됨으로써 마침내 2004학년도 입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12 여 년 동안 수학한 결과를 단 한 차례의 '수학 능력 시험'으로 서열화하여 일렬로 줄을 세우고 듣기 평가 시간에는 자동차 클락션 사용은 물론 비행기 이착륙까지 금지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수능시험이 끝날 때마다 시험을 잘못 치른 수험생들이 이를 비관하여 피워보지도 못한 채 자살을 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해도 매년 되풀이되는 일과성 일쯤으로 이를 치부해 버린 채 무관심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사교육비가 교육부 예산 절반 넘어
대학입시가 사회 문제화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 그리고 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무지개빛 새로운 입시제도들이 경쟁적으로 공표 되고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 까닭은 모든 교육이 대학 입시를 위한 과정쯤으로 인식되고 적성이나 개성은 무시된 채 오직 점수 따기 교육, 수요자 중심보다는 공급자 중심 교육, 자율보다는 규제 일변도의 파행적 교육 정책이 횡행해 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학벌위주, 간판위주의 한국적인 교육 풍토를 도외시한 채 우리 실정에 맞지도 않는 선진국의 입시 제도를 직수입하여 무리하게 적용을 시도하고 여기에 일부 무능력한 교육 관료들의 이기심과 사이비 교육학자들이 가세함으로써 교육의 파행을 더욱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교육 당국이 지금과 같은 수학능력 시험을 계속 고집하는 한 수험생들의 자살은 계속될 것이며 공교육의 파행을 더욱 심화시키고 사교육비의 과다 지출을 부추겨 결국 가정 경제마저 파탄시킬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9,10월 전국 초·중·고생 4588명과 학부모 1만 2462명, 교사 2582명을 대상으로 사교육비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간 사교육비는 13조6000억원에 이르며 4가구 가운데 1가구가 소득의 30%이상을 자녀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추정치 591조원의 2.3%, 올해 교육부 예산 24조9036억원의 54.5%에 해당한다.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3만 8000원이었으며 거주지별 연간 사교육비의 경우 서울 강남 지역 478만원, 수도권 358만원, 서울 기타 지역 313만원, 광역시 276만원, 중소도시 249만원, 읍 면 지역 203만원 순이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파출부, 야간 대리 운전은 물론 유흥업소 아르바이트도 서슴지 않고 있다.
사교육비의 증가 원인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 지상주의, 과열 입시 경쟁, 학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 등을 꼽을 수도 있겠으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으로 공교육 붕괴에 따른 '공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수능' 따로, '내신' 따로인 현재와 같은 제도 하에서 공교육의 정상화를 바란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런 까닭에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서민 가계의 안정과 교육 기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교육 살리기'를 통한 공교육의 내실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교육 당국은 현행 수학 능력 시험을 '대학입학 자격시험'으로 바꾸고 신입생 선발권을 각 대학에 되돌려 주는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입학자격시험으로 바꿔야
학력, 간판을 중시하는 대기업과 국민들의 의식 전환도 필요하다. 정부에서 공무원을 채용하거나, 대기업체에서 신입 사원을 선발할 때 실제로 학력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 대학 간판이 없더라도 열심히 일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우대 받는 그런 실력 위주, 능력 위주 사회를 만드는 데 정부는 물론 대기업 모두 솔선수범 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수능 제도 개선을 통한 공교육의 정상화 없는 그 어떤 대책도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특히 가정 경제는 물론 국가 경제까지 위협하고 있는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우수 교원 확보, 획기적인 교사의 처우 개선, 노후 시설 및 실험 실습 환경의 개선 등에 관한 근본적인 대책이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