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삼위일체 이론
매클린(MacLean)은 뇌가 뇌간(brain stem: 파충류의 뇌), 변연계(limbic system: 포유류의 뇌), 피질(인간의 뇌)의 3층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의 뇌는 고유의 기능을 담당함과 동시에 상호보완적으로 활동한다고 밝혔다. 이 세 부위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작용하기 때문에 매클린은 이를 ‘삼위일체 이론’이라 칭했다.
가. 뇌의 구조
1) 뇌간: 파충류의 뇌
뇌의 아랫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뇌 부위 중 가장 먼저 발달한다. 태어날 때 이미 완성되어 있다. 주요 임무는 생존으로 호흡, 혈압 조절, 체온 조절, 심장 박동 등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2) 변연계: 포유류의 뇌
뇌의 가운데에 있는 변연계는 시상, 시상하부, 편도, 뇌하수체, 해마 등으로 구성된다. 포유류는 대부분 변연계를 가지고 있어 포유류의 뇌라 불린다. 감정을 다스리고 기억을 주관하며, 호르몬을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사춘기에 거의 완성된다.
3) 대뇌피질: 인간의 뇌
우리가 사고, 계획 또는 기억과 같이 뇌의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활동을 담당한다. 인간만이 갖고 있으며 감각계에서 들어온 정보를 종합해 사고, 판단, 의사결정, 계획 및 반성 등의 고차원적 기능들을 담당하며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영아기부터 사춘기에 이르기까지 양적성장이 활발히 이루어지는데 초등학교 4~5학년 때쯤 어느 정도 가완성되어 거짓말이 나쁘고 숙제는 해야 하는 정도의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다. 사춘기 동안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가 성인(남자 평균 30세, 여자 평균 24~25세)이 돼야 성숙한다.
뇌의 삼위일체론이 시사하는 교육의 방향
1) 미완성된 전두엽 -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아직 전두엽이 완성돼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의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는 이르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 있다. 그럼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차피 전두엽이 미완성되어 합리적 판단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냥 내버려둬야 할까? 그렇지 않다. 전두엽이 미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더더욱 아이들은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부족한 판단력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선생님과 부모와 같은 어른들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빨간 신호등에서는 길을 건너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지키는 아이들은 사고를 당할 뻔한 공포스러운 경험이 있어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빨간 신호등에 대해 배우면서 관련된 위험스런 공포도 같이 배웠기 때문에 원칙을 지키게 된다고 한다.
2) 다운쉬프팅(downshifting) - 편안한 가르침의 필요성
삼위일체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위협이나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고 생존지향적이 된다고 한다. 이를 다운쉬프팅이라고 한다.
실험에 따르면 높은 도전감을 가진 뇌에서는 뇌간, 변연계, 피질에 혈액이 고루 공급된다. 반면 불안, 위협, 공포의 상황에서는 뇌간, 즉 파충류의 뇌에 혈액이 밀집된다. 사람에게는 생존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불안하거나 공포를 느끼면 생존에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돼 합리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다.
우리가 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은 아직 전두엽이 미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어른들이 생각하는 수준의 합리적인 사고를 기대하기는 이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불안 및 공포스러운 상황에 노출된다면 더더욱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교사들이 종종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윽박지르는 형태의 지도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교실은 일(一) 대 다(多)의 구조라서 조곤조곤 부드럽게 말을 하면 아이들이 선생님을 쳐다보지도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일단 소리를 질러 기선을 제압한 후 다소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조용히 있어 마치 교사의 말을 잘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아이들의 머릿속에서는 선생님이 공포분위기를 조장하면서부터 파충류의 뇌가 더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진정 지도하기 원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내용은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흥분한 선생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10분이 넘도록 같은 말을 반복한다면 아이들은 ‘대체 우리 선생님은 왜 이리 말을 오래하는 걸까?’, ‘왜 선생님은 저렇게 화가 난 걸까?’와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물론 10분이 넘도록 때로는 수업 시간 내내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면 아이들은 말을 잘 듣는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이 새겨서가 아니라 선생님이 화가 나면 본인들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3) 먼저 포유류의 뇌를 깨우자
그럼 어떻게 지도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전두엽이 완성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성인과 같은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먼저 감정을 주관하는 포유류의 뇌를 깨워야 전두엽으로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포유류의 뇌를 깨우는 방법 중 하나가 ‘공감’이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주면 아이는 그로 인해 마음에 안정을 찾고 좀 더 고차원적인 단계인 합리적 사고로 넘어갈 수 있다.
친구 때문에 화가 나서 씩씩 거리는 아이에게는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그토록 화가 난 마음을 만져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화가 많이 났구나”, “속이 많이 상했겠다”와 같은 몇 마디의 말이 아이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이 하고 싶은 말을 꺼내도 늦지 않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자주 싸우는 아이 중에는 단순히 친구와 문제가 있는 아이도 있지만 부모의 불화나 경제적인 어려움,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것이 학교에서 폭발하는 아이들도 있고, 때때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순간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친구랑 싸우면 안된다’는 선생님의 가르침 이전에 먼저 ‘네가 힘들겠구나!’ 하는 한 마디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나름 사는 게 힘들다고 느끼는 아이들에게는 ‘친구랑 싸우면 안된다’는 말보다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한 사람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친구와 문제를 풀어갈지는 그 다음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필자가 어릴 때 넘어져서 무릎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다. 주변에서 ‘아프겠다’며 위로를 해줬지만 눈물을 꾹 참았다. 그리고 집에 가서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참았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펑펑 나왔다. 아마도 나에게 가장 사랑을 주는 대상 앞에 가니 마음이 놓여서 눈물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다 보면 아이의 마음을 알아줬을 때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마음을 확 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일단 아이의 마음만 열리면 지도는 좀 수월해진다.
4) 선생님의 감정도 표현하자
교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다. 많은 교사들은 우리가 흔히 부적절하다고 이야기하는 짜증,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의도적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다. 표현하지 않은 감정들은 꾹꾹 참고 참다가 결국 어디선가 폭발을 하게 된다.
우리는 아이들이 적당히 교사의 눈치를 살펴 교사의 마음을 알아주기 원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뇌 발달 단계상 아직 사회적 신호에 대해 배워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교사의 마음을 잘 읽어주지 못한다. 선생님이 폭발하면 ‘대체 왜 그럴까? 우리 선생님은 좀 이상해’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포유류의 뇌를 깨우려면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교사의 감정도 말해야 한다. 논리적 설명보다 먼저 선생님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이들과의 문제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정서가 포함된 정보에 빠르게 반응
실제로 정서는 아이의 주의를 유도하고 인지적인 기억력, 즉 학습 능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뇌에서 정서를 담당하는 편도와 시상 사이는 한 시냅스의 거리로 매우 짧다. 그래서 정서가 포함된 정보에 더 빠르게 반응하고 더 잘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생활지도를 할 때도 정서적인 면을 건드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학습 지도를 할 때도 감동이 있는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뇌에 대한 이해가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