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 만드는 신령스럼 산들늪

2007.06.01 09:00:00

산허리에 걸린 구름이 자신의 몸 일부를 쉼 없이 나누어 만든 곳이 밀양의 재약산 사자평의 산들늪이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이곳에는 아홉 군데에서 샘물이 솟아올라 드넓은 산들늪을 적시고 흐르다가 작은 하천을 이루어 다양한 생물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표충사 경내의 영정(靈井)약수도 이곳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솟아오른 것이다.



해발 700m에 자리 잡은 산지습지
산허리에 걸린 구름이 자신의 몸 일부를 쉼 없이 나누어 만든 곳이 밀양의 재약산 사자평의 산들늪이다. 국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이곳에는 아홉 군데에서 샘물이 솟아올라 드넓은 산들늪을 적시고 흐르다가 작은 하천을 이루어 다양한 생물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표충사 경내의 영정((靈井)약수도 이곳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솟아오른 것이다.

산 위의 넓은 들판에 있는 늪이라는 의미를 가진 산들늪. 영남 알프스의 한 봉우리인 재약산 수미봉(1108m)의 동남쪽에 위치한 대평원인 사자평의 일부분이다. 해발 700~800m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은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에 속한다. 영남 알프스는 밀양시, 청도군, 울주군의 3개 시·군에 모여 있는 해발 1000m 이상인 가지산, 운문산, 재약산, 신불산, 취서산, 고헌산, 간월산의 7개 산군을 말하는데 험한 산세와 아름다운 풍광이 유럽의 알프스에 버금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들늪은 2006년 고산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는데, 전체면적은 0.58㎢(약 18만평)이다.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생태적으로 우수한 자연경관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탄층이 발달된 습지에 진퍼리새와 오리나무군락이 잘 발달되어 있다. 또 이곳에는 멸종위기 종 2급인 삵과 복주머니난, 큰방울새난 등 보호가치가 높은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곳은 몇 개의 높디높은 폭포를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700m의 산지습지인데도 버들치가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주로 좁은 산간 계류에 서식하는 버들치는 깨끗한 1급수의 물에서만 사는 지표종으로 갑각류, 곤충류, 식물의 종자 등을 먹으며 행동이 활발한 것이 특징이다.

산들늪 가는 길은 표충사의 홍제교에서 시작된다. 표충사를 기점으로 좌로는 옥류동천, 우로는 금강동천이 흘러 밀양강의 한 지류인 시전천을 이룬다. 표충사 오른쪽에 위치한 옥류동천의 물길을 따라 2시간 정도 오르면 늪을 가장 빨리 만날 수 있다. 안개 낀 옥류동천을 오르는 길은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처럼 신비하고 운치가 있다. 안개가 걷히면서 산새들이 지저귀고 가느다란 햇살이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면 영산의 신비를 더욱 느끼게 한다. 안개가 밀려가는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면 거친 숨결이 쏟아져 나오지만 계곡의 물소리가 음악이 되어 더욱 힘이 나게 한다.

특히 등산 중간에 만나는 홍룡폭포와 층층폭포의 모습은 막힌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바라보는 홍룡폭포는 살아 움직이는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이제 앉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오를 때, 굉음을 내고 쏟아지는 층층폭포를 만나게 된다. 늪에서 길을 떠난 물방울들이 작은 시냇물을 이루다가 층층폭포에서 하늘로 몸을 흩날려 햇살의 기운을 얻은 다음 광채를 발하는 옥구슬이 되는 모습은 장관이다. 층층폭포를 지나면 임도(林道)가 나오고 이 길을 10분 정도 걸어가면 사자평의 산동초 고사리분교터를 만나게 된다.


낮은 지대의 하천 조건 갖고 있어
1997년까지 이곳에서 몇몇 사람들이 등산객에게 민박을 치며 생계를 이어갔으나 식수원 보호를 위해 마을을 철거하면서 학교 역시 마을의 운명과 함께 사라지고 지금은 빈터만 남아 있다. 마을 터에서부터 4.1㎢(125만평)의 사자평이 시작된다. 사자평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에는 1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넓은 평지의 군데군데에 억새밭이 펼쳐지고 푸른 하늘과 배경된 분지가 가슴을 더욱 넓어지게 한다.

마을 터에서 수미봉으로 난 임도를 500m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산들늪으로 들어서게 된다. 길의 일부가 계곡물에 의해 유실됐지만, 작전도로를 따라 경작지로 사용되던 억새밭에는 잣나무와 소나무가 늘어서 있고, 이곳에서 700m를 지나 오른쪽 샛길로 빠져들면 잘 보존된 늪의 중심부로 들어서게 된다.

질퍽한 길을 걸어 진퍼리새군락을 지나면 작은 실개천이 나타나는데, 이곳을 건너면 지금은 늪의 모습을 거의 회복한 계단식으로 조성된 휴경지가 나타난다. 이곳이 늪의 중심부로서 봄이면 솜방망이가 여름이면 꽃창포를 비롯한 여러 습지식물들이 꽃을 피우는 곳으로 오리나무군락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의 중간으로는 원동계곡으로 넘어가는 등산로가 있어 오리나무에 매달린 깃발들이 온 몸을 흔들며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작은 실개천의 바닥은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져 있고, 달뿌리풀과 갈대 및 갯버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어 이곳이 700m의 고지대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실개천에 버들치가 무리지어 헤엄치고 가끔씩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예전에는 메기 종류인 미유기가 살았다고 하니, 낮은 지대의 하천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저 생명체의 높은 적응력에 감탄을 내 뱉을 수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사자평에 오르는 길은 표충사를 기점으로 여러 갈래인데, 사자봉을 거쳐 가는 길, 수미봉을 거쳐 가는 길, 그리고 울주군과 양산의 원동계곡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다. 또 재약산에는 산들늪 뿐만 아니라 향로봉의 북동쪽 능선부에 칡밭늪이 위치하지만 접근이 어렵다.

늪의 중요성 더하는 다양한 동·식물
사자평의 아름다움은 전국에서 가장 넓다고 하는 억새밭에 있다. 봄이면 칼처럼 생긴 잎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여름이면 초록색 융단을 펼치다가 가을이면 은빛의 물결을 온 산에 뿌려 놓는다. 특히 겨울에 억새의 몸통에 내려앉은 서리는 태양빛을 받으면 영롱하게 빛나 떠나간 억새의 종자를 그리워하는 눈물처럼 보인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강한 힘을 발휘해 나약하면서도 강한 힘을 내는 우리네 삶과 비슷하게 보여 더욱 정이 간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내는 소리는 그 자체가 음악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이 왔는가’하고 노래한다. 어떤 사람들은 억새를 갈대라고도 한다. 옛날부터 대금을 만들 때, 갈대나 억새의 줄기 속에 붙어있는 흰색의 얇은 속껍질로 대금의 취구와 지공 사이에 있는 청공에 붙여 소리를 더욱 맑고 청아하게 하는 떨림판인 청을 만들었다. 이때 청을 만드는 재료는 산에서 나는 갈대, 즉 억새와 늪에서 나는 갈대로 구분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청은 늪지에서 나는 갈대로 만들었다. 가무를 즐긴 우리 민족은 주위의 자연물을 이용하여 피리를 만들었는데, 버들피리, 보리피리, 갈대피리, 나뭇잎피리 등이 있다. 억새와 갈대는 생김새가 유사하고 이것으로 만든 피리를 갈대피리라고 하다 보니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억새와 갈대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억새가 하늘거리는 산들늪에는 많은 동·식물들이 살고 있다. 주요하게 나타나는 식물군락은 진퍼리새, 삿갓사초, 진퍼리새-오리나무, 삿갓사초-오리나무군락 등이고, 습원의 특징은 저층습원의 특징이 일부 나타나는 중층습원이다.

희귀식물에는 야생보호대상식물 제15호인 천마와 푸른천마, 제42호인 왕제비꽃, 자난초, 복주머니난, 흰제비란, 잠자리란, 닭의난초, 큰방울새란, 방울새란, 등칡, 개회향, 뻐꾹나리, 꽃창포 등이 있다. 그리고 습지식물로는 진퍼리새, 삿갓사초, 동자꽃, 물고추풀, 좀고추풀, 왕비늘사초, 숫잔대, 도깨비사초, 노루오줌, 큰앵초, 쥐오줌풀, 쥐오줌풀, 방울고랭이, 송이고랭이, 솜방망이 등이 있다.

어류로는 버들치가 많은 개체수로 나타났고, 양서류로는 계곡산개구리, 산개구리, 무당개구리, 도롱뇽 등이 서식한다. 특히 계곡산개구리는 집단으로 서식하여 늪의 중요성을 한층 더하고 있다. 파충류에는 멸종위기 보호야생동물인 까치살모사를 비롯하여 대륙유혈목이, 장지뱀, 줄장지뱀, 쇠살모사 등이 발견됐다.

조류는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황조롱이와 제327호인 원앙을 비롯하여 물까마귀, 쏙독새, 어치, 멧비둘기, 꿩, 까마귀 등이 나타났고, 곤충에는 베치레잠자리를 포함하여 200여 종류가 발견됐다.


일제가 남긴 상처 갖고 있는 재약산
재약산은 밀양시 단장면과 산내면, 울주군의 상북면의 경계에 솟은 산으로 산세가 수려하여, 〈밀양지〉에 따르면 ‘삼남금강’, ‘한반도의 영산’으로 불린다고 한다. 수미봉을 중심으로 동쪽을 옥류동천, 서쪽을 금강서천, 중앙을 사자황평으로 나누고 있다. 동계인 옥류동천은 울창한 수림과 기암절벽으로 흐르는 계류가 ‘구슬 같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무지개가 영롱하게 생기는 2층으로 이루어진 층층폭포, 꽃이 만발한 계곡에 쏟아져 내리는 용의 모습을 한 홍룡폭포, 학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학암폭포 등의 절경이 있다.

서계인 금강서천은 옥류동천과 쌍벽을 이루는데, 금강폭포, 금강대, 내원계류가 절경이며, 사자봉의 북서쪽 사면에는 가마볼폭포, 호박소와 구연폭포를 포함하는 천연기념물 제224호인 얼음골이 위치한다. 사자황평은 사자평으로 불리는 곳으로 사자봉과 수미봉의 동남쪽에 넓게 펼쳐진 수목지대와 억새밭을 말한다.

재약산의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신라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한센씨병에 걸러 전국의 명산과 약수를 찾아 두루 헤매다 표충사에 이르러 영정약수를 마시고 병이 나았다. 그때부터 이 절의 북동쪽에 솟아오른 봉우리를 재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약초들이 가득 자라는 재약산 수미봉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필봉과 사자봉(천황산)이, 오른쪽으로 관음봉과 문수봉 및 향로봉(약무덤) 등의 연봉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

재약산과 천황산은 서로 이름이 혼용되어 불린다. 원래의 명칭은 천황산의 주봉이 사자봉(1189.2m)이고 재약산의 주봉은 수미봉이다. 수미(須彌)는 가장 높다는 뜻으로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아있다는 상상의 산을 의미한다. 숫자만으로 따지는 인간의 눈에는 사자봉이 재약산의 중심봉우리지만, 부처님의 눈에는 표충사를 배산하고 있는 수미봉이 재약산의 중심인 것이다.

그러나 천황산은 일제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최근에 우리 이름 되찾기 일환으로 천황산 사자봉을 재약산이라 부르면서 혼란이 나타났다. 예전처럼 표충사를 감싸는 산 전체를 재약산으로 하고, 원래의 봉우리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다면 쉽게 해결될 텐데 아쉽다. 그 뿐만 아니라 일제의 흔적은 산들늪을 포함하는 사자평에도 남아 있는데, 사자평의 더 넓은 분지에 스키장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낸 흔적이 지금의 거대한 억새밭으로 변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 선조는 표충사와 전국의 4개 사찰에 스님의 제일 높은 자리인 도총섭을 내렸는데, 일제는 영남을 넷으로 나눈 다음 표충사를 통도사의 말사로 만들고 그 정기를 훼손하였다.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망가진 재약산, 민족정기를 보존하는 차원에서 원래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정확하게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의 변화 고스란히 간직해
산들늪은 한 생태사진작가가 헬기를 타고 영남 알프스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카메라에 담아 발견됐다. 평소 산지늪에 관심이 많았기에 전문가에 의뢰했고 그들의 현지답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예전부터 존재했지만 단지 산의 일부분이었던 늪에 2001년 말 산들늪이란 이름이 생겼다. 이를 계기로 다음해에는 산들늪 가까이에 칡밭늪이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오랜 시간의 변화를 몸으로 보여주는 산들늪은 늪에 얽힌 이야기도 많지만, 늪 주변에서 생활해온 우리네 소박한 삶의 이야기도 많이 전하고 있다. 산들늪을 에워싸고 있는 울주군의 원동계곡, 얼음골계곡, 표충사계곡의 자연미는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깊은 산의 골짜기마다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문화유적들이 널려 있다.

표충사는 신라 태종무열왕 1년(654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죽림사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829년에 영정사로 이름을 바꾸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그 뒤에 폐사되었다가 1839년에 사당 3칸을 신축하여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사명·서산·기허대사의 진영과 위패를 무안면 표충사에서 옮겨오면서 절 이름을 영정사에서 표충사로 고쳐 불렀다. 그래서 표충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당과 서원을 겸비한 사찰이 되었고,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 보물 제467호인 삼층석탑, 사명대사 유물 200여 종과 각종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얼음골은 여름에 얼음이 얼고, 겨울에는 더운 김이 오르는 신비한 곳이다. 3000평의 너덜지대에서 6월 중순부터 얼음이 얼기 시작해 더워질수록 얼음이 더 많아지다가 삼복에 최대가 된다. 반대로 겨울에는 바위틈에 얼음 대신 김이 올라오고 계곡을 흐르는 물도 얼지 않는 곳으로 천연기념물 제224호로 지정됐는데 이는 단열냉각에 의해 나타난 자연현상이다. 또 얼음골에는 호박소라는 못이 있는데 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돌을 움푹하게 만들어 절구 모양으로 만들었고, 이무기가 글을 읽고 용이 되어 호박소에 잠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처럼 귀중한 유산을 품고 있는 산들늪이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과거에 개간되어 경작지로 이용했던 곳이 복원되지 않았고, 산들늪에 쇠사슬을 채우고 있는 임도는 더욱더 늪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특별히 사냥과 산악 종주 목적으로 운행되는 오프로드 차량에 의한 습원의 파괴는 더욱 심각하다. 그나마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돼 다행한 일이나, 복원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될지 많은 고민을 해야 되는 시점이다.
김철수 경남 거제옥포고 교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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