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에게 해방령을 내린 페르시아 초대왕 고레스의 칙령이 발견된 악메다(Achmetha)는 메대(728-550 BC)제국 수도로 헬라어 말로는‘엑바타나’(에크바타나)라고 했다. 후에 페르시아 제국 여름 궁전으로 파르티아 왕국의 수도로써 그 면모를 갖추었다.

이곳이 현재 이란의 테헤란 남서쪽약 337㎞ 지점인 하메단이다.알반드(Alvand 3,580m) 산의 북동쪽 기슭 근처에 있는 평야에 위치한 것 같으나 해발 고도가1,830m 나 되는 이란에서 보기 드문 고원 도시이다. 이곳에는 성경에 나오는 악메다 궁터에서 발굴 된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이 바로 이웃에 있다.
악메다(엑바타나)는 BC 678년 메대 사람 데이오세스(Deioces)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은 BC 550년 페르시아의 초대왕 고레스(Cyrus)에게 점령당했으며,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은 BC 330년에 아케메네스 왕조(550-330 BC)의 마지막 왕인 다리오(다리우스)3세로부터 다리오가 예루살렘 재건을 허용한다는 고레스의 칙령을 빼앗았던 곳이다.

구약 성경 다리오왕 때 이 악메다에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허락한다는 고레스의 칙령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발견하였다. 이 고레스 칙령(조서)이 발견됨으로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수월해질 수 있었다.

이후 악메다는 파르티아(247 BC-224 AD) 왕들의 여름 휴양지가 되었으나 사산(Sassan)(224-651 AD) 왕조 하에서 쇠망하였고 이슬람에 정복된 후 하메단 이란 도시로 이름이 바뀐다.
하메단(악메다)에서는 아케메네스왕조의 비문들과 1923년 다리우스 왕(다리오 1세)의 이름이 새겨진 금과 은으로 된 2개의 받침쟁반과 크세르크세스(구약 성경의 에스더서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2세의 기둥뿌리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이 두 왕이 악메다궁을 세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악메다 궁터에서는 돌사자 또는 상 쉬르(Sang Shir)라는 사자상이 발굴되었다. 이 돌사자상은 길이 2.5m,폭 1.5m,높이1.2m의 매우 큰 것으로, 마케도니아에서 전사한 헤파에스티온(Hephaestion) 장군을 기리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의 석공들이 조각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 사자상은 하메단 시내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악메다 시내에서 서쪽 5㎞ 지점의 압바스 아바드(Abbas Abad) 계곡에 있는 ‘간자너메’라는 아하수에로왕과 다리오왕의 돌 비문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비문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위대한 신 아후라마즈다(Ahura Mazda), 모든 신들 중에 가장 위대하시며, 이 땅과 하늘과 사람을 창조하신 분, 그분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셨고, 그분은 쎌서스(아하수에로)왕을 세우셨다. 많은 왕들 중에서 뛰어난 왕, 많은 통치자들 중에서 뛰어난 통치자, 나는 위대한 왕 쎌서스, 왕중의 왕이며 수많은 거민들이 있는 땅의 왕, 끝이 없는 경계를 가진 거대한 왕국의 왕아케메니안의 군주 다리오의 아들이니라”이 비문이 바로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왕의 비문이다.

아하수에로 왕 당시 유대인들은 실권 제 2 인자였던 ‘하만’의 계략에 의해 풍전등화의 멸망 위기에 처해있었다. 그러나 바사의 왕비 ‘에스더’에 의해 상황이 뒤 바뀌게 되며 오히려 유대인 ‘모르드개’가 하만의 자리에 앉게 되므로 천하가 유대인 세상이 되게 되었다. 그 때에 사방에 흩어져있던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유대인 총리대신 모르드개가 있던 당시의 수도 Hamedan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유대인의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며 이곳에서 최후를 맞고 이곳 하메단에 묻힌다. 시내 시장 통 바로 이웃에 에스더, 모르드개의 묘가 오랜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