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기행(7) 에스파한의 그림 이맘 광장

2007.04.02 22:41:00











  작년(06년 10월) 가을에 이곳을 찾았을 땐 정보도 없이 그저 유네스코 등록 문화재라는 단순한 기대감만을 갖고 찾았다. 그러면서 페르시아 문화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곳 정보를 알아가면서 다시 찾아 참 의미를 알고 싶었다. 이번엔(07.03.28) 하루 종일 이곳 유적지를 이 잡듯이 돌아보면서 또 한 번 찬란한 페르시아 문화에 흠뻑 젖게 되었다.

  이란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이스파한은 시라즈와 함께 찬란한 역사를 간직한 고도다. 또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된 문화재가 살아숨쉬는 보석이다. 11세기 셀주크 제국의 수도로서 영화를 누리기 시작한 에스파한은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침략도 잦았다. 13세기 몽골의 침략을 받아 파괴됐고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처한 티무르에 항거했다가 7만명이 학살당하기도 했다. 당시 기록은 살해된 에스파한 시민들의 머리를 쌓아 언덕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에스파한은 사파비 왕조시대에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압바스 1세(1587∼1629)는 1598년 에스파한을 수도로 정하고 도시를 가꾸었다. 유적의 대부분이 그 당시에 만들어졌다. 문헌에 따르면 최전성기 인구가 100만명을 넘었고, 163개의 모스크, 48개의 학교, 1801개의 가게, 263개의 공중목욕탕이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17세기 사람들은 “에스파한을 ‘네스퍼 자헌’ 세상의 절반(Esfahan Nesf-e Jahan)이라는 뜻으로 이 도시를 찬양했다. 이란말로 ‘네스퍼’는 절반이라는 뜻과 ‘자헌’세계라는 뜻의 합성어이다. 그 만큼 이곳 유적들이 아름답고 섬세하고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다는 뜻이다.
에스파한은 지금도 ‘이란의 진주’란 미명을 지닌 이슬람 세계 유수의 도시다. 어디를 가나 이름에 걸맞는 유적 유물이 즐비하다. 우선 찾은 곳은 16세기 압바스 1세 때 조성한 이맘 광장이다. 이란인들이 즐겨 부르는 ‘세계의 그림’(낙쉐 자한) 광장이며,‘열린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원래 ‘왕(샤)의 광장’이라 불렀으나, 혁명 뒤 ‘이맘 호메이니 광장’(이맘 광장은 약칭)으로 바뀌었다.

   16세기 프랑스 시인 레니에르(Renier)는 이곳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고 ‘이곳이 바로 세계 절반이구나’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1,602년 당시 압바스에 의해 이 광장 건축되기 시작되었으며 이 광장엔 2개의 모스크와 당시 왕궁이었던 알리카푸 궁전이 그 모습을 그 대로 유지하고 있다.

   중국 천안문 광장 다음으로 넓은 이 광장은 남,북 512m*163m 거대한 광장이다. 잘 조성된 잔디밭과 정원이 있어 이곳을 찾는 현지인들 휴식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중앙에 잘 장식된 분수대가 있어 늘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다. 또 광장을 찾는 관광객에게 타임머쉰을 타고 고대로 돌아간 듯한 마차타고 광장 일주하기 이벤트가 있다. 모두가 이 광장을 더 여유롭고 만들어주고 있다.





주태균 이란 테헤란 한국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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