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와 교통지옥에 시달리는 테헤란에 다라케라는 때 묻지 않은 계곡이 있어 찾았다.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그저 그만이라는 소리는 자주 들었지만 이 계곡을 따라 등산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에 한 두 번 주차장 근처 음식점은 찾은 적은 있었지만 팔랑찰 마지막 계곡까지 탐방하기로 했다.
정확한 정보도 없이 오전 10시경 다라케 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입구에서부터 한 1km 까지는 각종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입구를 조금 지나자 현지인들의 주식인 빵을 굽는 작은 상점이 있어 거기서 따끈따끈한 빵 하나를 샀다. 구수한 맛이 역정이 전혀 나지 않은 맛이라 그걸 야금야금 먹으면서 오른다. 이 계곡을 오르는 동양인은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오르면서 일부러 고개를 약간 수그리고 오른다. 하도 이란 사람들이 말을 많이 걸어 귀찮아서 그렇다. ‘ 헬로, 치니, 자폰, 코둠 케시바르’ 이런 소리가 내 귀에 못이 박혔다. ‘코레’ 라고 첫눈에 알아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계곡 1km 쯤 벗어나자 인적이 줄어들면서 천하의 절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형형색색 괴암 절벽이 파노라마처럼 내게 와 닿는다. 한국에서 보는 그런 괴암 절벽이 아니다. 나무 한그루, 풀한 포기 없는 황량한 괴암 절벽은 그 모양과 색깔부터 다르다. 몇 개의 색을 연출하면서 이룬 띠 모양의 바위들, 입김으로 불면 곧 무너질 것 같은 돌탑 같은 바위들, 그러면서 오랜 세월 동안 풍화작용으로 각종 동물 모양새를 갖춘 바위들이 신비스럽다.
겨우내 알보르즈 산맥에 쌓였던 눈이 녹아 옥수 같은 물이 지천으로 흐른다. 지리산 계곡에 흘러내리는 물보다 더 깨끗하고 수량도 많다. 이곳 산맥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지리산 몇 배 쯤 넓으니 말이다.
이 계곡을 오르면서 크고 작은 폭포를 몇 십 개는 만났겠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흘러내리는 폭포, 낙차 폭은 그리 높지 않지만 흰 물보라를 내뿜는 폭포 등 정말 신도 탄복할 것은 아름다운 폭포들이다. 그러면서 앙상한 겨울나무가 아직은 때 이른 봄을 기다리면서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한국 여느 계곡을 고스란히 빼 닮았다.
계곡 널찍한 자리마다 여인끼리, 가족 끼리, 친구끼리 자리를 펴놓고 둘러앉아 그들만의 재미난 시간을 보낸다. 음식을 준비와 즉석에서 요리를 한다. 곳곳에 숯불을 피워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 시실릭을 굽고 있다. 술 문화가 없는 이곳이라 모두가 조용하다. 간혹 젊은이들이 트럼프 게임을 하는 모습은 자주 보인다. 사람들 사는 모습은 지구상 어디서나 똑 같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여인들 끼리 온 경우가 무척 드물다. 가족 혹은 남자 친구들 끼리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제약이 여자들의 야외 외출 의욕을 막는 모양이다. 산행을 하면서 간혹 만나는 여성 중에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경우는 한 명도 없다. 간혹 내가 먼저 인사라도 건네면 머리를 홱 돌린다.
오르다가 마침 남자 친구들 끼리 와서 시간을 즐기는 한 무리가 있어 슬며시 갔더니 모두들 손을 흔들며 환영 일색이다. 이란 사람들의 인간미는 언제나 따뜻하다. 특히 산 속 풍경 좋은 곳에서 만나서 맛보는 그들의 사랑은 내 마음을 찡하게 했다. 방 금 구운 시실릭을 내놓고 빵과 과일 있는 대로 다 내놓는다. 같이 사진도 찍고 그러면서 체면치레로 음식들 조금씩만 먹는다. 그들의 호의를 가슴에 담고 일어서려는데 이 친구들 더 놀다가라고 손목을 놓지 않는다. 이란 개혁의 선봉장이라 자부하는 테헤란 대학 경제학과 학생들이었다.
이들의 만남을 아쉬움으로 남기고 팔랑찰을 향해 오른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빙판길이 많다. 철책 보조 로프를 잡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오른다. 출발해서 꼭 4시간 만에 해발 2,412m 팔랑찰 대피소에 도착했다. 그야말로 토찰산 환상적인 모습이 파노라마로 연출된다. 앞뒤로 하얀 눈과 양지쪽 까무잡잡한 산의 색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자연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봄소식에 못이겨 만들어진 폭포가 양쪽에서 흘러내린다. 이 장엄하고 환상의 다라케 계곡을 체험하면서 찬란한 역사와 그리고 문화를 고이 간직한 이란에 자꾸만 중독되어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