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기행(5) 조르아스터의 분신 이란의 야즈드

2007.03.27 17:16:00







테헤란에서 7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야즈드를 가기 위해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없다. 우리 학교 옆 세이오 사파리 버스 정류장에서 저녁 9시에 출발해 다음날 6시에 도착하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슈퍼에 가서 내일 먹을 식품을 이것저것 샀다. 지난 9월 25일부터 시작 된 라마단(이슬람의 금식 기간) 때문에 먹는 것도 무척이나 신경이 쓰인다. 공공장소에서 벌건 낮엔 음식을 먹는 건 이 나라 율법에 어긋나고 예의가 아니다. 어쨌든 식후경이라 배낭에 집어넣고 차에 올랐다. 몇 번의 야간 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어 초반에는 주변 경치를 구경하고 저녁 10시 이후로 잠을 청하면 된다. 이번에도 그게 주효해 잠을 잘 수 있었다. 이곳 야간 버스는 대부분 볼보 버스로 의자를 뒤로 눕히면 거의 1인용 침대 같다. 잘 이용하면 숙박비, 시간 모두를 절약 할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새벽 6시 경에 도착했다. 화장실에 가서 볼일 그리고 세수하기 모든 준비를 하고 아침을 때운다. 라마단 기간이라 조심스럽게 한쪽 구석진 곳에 숨어서 해결했다. 꿀맛 그대로였다. 좀 연세가 지긋한 한 택시 기사를 선정해 8시간 동안 전세 흥정을 벌인다. 시간당 3,000원 정도 내란다. 우리로 치면 무지 싼 요금이다. 그러나 여기 선 무척 비싼 요금이다. 우선 파르시가 되니 ‘엑 써아테 도 헤제르 토만’ 두 말 안하고 좋단다. 시간 당 우리 돈 2,000원이다. 현지 언어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

  오늘 계획을 대충 말했더니 훕(좋다)이라고 연발한다. 우선 조르아스터교의 전통 장지인 침묵의 탑을 찾았다. 사진에서 본 것 보단 훨씬 커 보인다. 황량한 사막 가운데 우뚝 선 2개의 탑이 나를 부른다. 당시 남자와 여자를 나눠서 장사를 지냈단다. 그것도 조장(鳥葬)으로. 사람에게 영혼과 육체가 존재하는 데 육체는 죽으면 불결한 것이니 땅 속에 묻는 것 자체까지 거부해 죽은 사람을 이 침묵의 탑 중앙 웅덩이 같은 곳에 올려놓으면 새들이 와서 그 시체를 먹어 치운단다. 남은 뼈는 깊은 웅덩이에 쌓여 세월이 흐르면서 삭아 없어진단다.
남자 여자 화장터를 모두 등산 겸해서 올랐다. 제법 힘이 들었다. 남자 70m, 여자 50m 쯤 된단다. 특히 남자 조장터 중앙까지 오르기는 무척 힘들었다. 삥 둘러 쌓아올린 원형 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람 한 명 들어갈 만한 구멍으로 뛰어올라야 들어갈 수 있다.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가져간 가방은 밑에 두고 손때로 맨질맨질한 작은 돌을 잡고 뛰어올라 장사 터를 보는 순간 인간의 허무와 연약성을 절감 할 수 있었다.

   두 곳을 탐방하고 바로 이웃에 당시 고대 조르아스터교의 신도들이 머물던 집을 구경 할 수 있었다. 이곳은 여름에 워낙 더워(섭씨 45-50도) 모든 집을 토담으로 지었다. 하기야 사막 한 가운데라 나무로 집을 지을 수가 없다. 흙을 잘 이용해 더위와 추위를 막을 수 있도록 특별하게 지었다. 특히 벗길(budgir)이라는 굴뚝을 만들어 이를 이용해 자연 에어컨으로 활용했단다. 네모로 만든 굴뚝 사방으로 구멍을 내 이 구멍으로 바람이 흡입되어 들어와 큰 통에 담긴 물을 냉각시켜 실내를 시원하게 한단다. 조상들의 지혜가 물씬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야즈드 시내를 둘러보면 크고 작은 벗길이 여러 수천 개나 보인다.

   어쩜 야즈드 전 도시가 박물관과 같은 느낌이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Mehr Traditional Hotel이 좋은 보기이다. 이 호텔은 수백 년 전에 지어진 전통 가옥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호텔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점심 때 이 호텔을 찾아 점심을 먹으면서 그 진수를 맛보았다.


  곧장 이어서 이교도의 참관이 허용되는 아테슈카테(불의 신전)를 찾았다. 이른 아침이라 정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침 이웃 한 할아버지가 뒤쪽에 문이 있으니 들어갈 수 있단다. 건물은 그리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박물관으로 또 신전으로 그 의미는 매우 컸다. 1934년에 지어진 건물 안에는 1,532년 동안 계속 불씨를 살려 이어오고 있는 신성한 불이 있었다. 큰 놋쇠 화로에 계속 불이 타고 있었다. 혹자는 가스로 혹은 전기로 불씨를 이어오고 있다고 했는데 그건 거짓이었다. 마침 필자가 도착했을 때 이 불씨를 관장하는 감독 한 분이 커다란 장작을 가지고 와서 조심스럽게 화로 위에 얹고 있었다.

  이 불은 원래 남부 페르시아 아잘파란바흐 사원에서 보존되었던 불씨로 이곳으로 옮긴 것이란다. 2,5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조르아스터교의 끈질긴 생명력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다. 불은 신의 상징 중 하나로 불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불 자체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배화교(拜火敎)는 약간 잘못 된 표현 인 것 같다. 유리창을 통해 불씨를 감상하고 박물관으로 꾸며진 실내를 감상했다. 바로 정면에 조르아스터교의 교주 사진이 큼직하게 걸려 있다. 17세기 말 프랑스의 앙케틸에 의해 경문이 발견되면서부터 조르아스터교의 교주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숱한 베일에 가려진 내용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단다. 본명이 페르시아어로 ‘차라투스트라’인데 영어로 조르아스터라고 불린다.


그가 쓴 ‘아베스타’를 통해 설파한 신관은 다신교로부터 이신교(선과 악의 신)를 거쳐 유일신으로 승화하는 그런 교리이다. 선한 신인 아후라마즈다가 악신인 아리만간과의 경쟁과 투쟁을 통해서 아후라마즈다가 승리로 유일신이 되어 우주를 통활 한다는 내용이다. 조르아스터 사후 3천년이 지나면 구세주가 나타날 것인데 인간은 부활하여 최후의 심판을 받는다. 선행을 한 사람은 천국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옥행이란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모든 교리를 반영한 듯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5만 명에 가까운 신도가 있는 데 그 중 4만 5천명이 이란에 1만 5천명이 이곳 야즈드에 살고 있단다. 머리에 초록색 터번을 쓴 사람이 바로 조르아스터교도이다. 이곳에서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아무리 이채로워도 파란 만장한 풍상 속에 제 모습으로 이어온 조르아스터교의 유적과 유물은 분명 우리 인류의 공동 문화유산이다. 이곳 야즈드 불씨는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역사를 계속 밝히고 역사의 흐름을 채워주는 샘물이 될 것이다.
주태균 이란 테헤란 한국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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