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비오는 골목에서

2001.04.23 00:00:00

회식을 마치고 나온 골목에는 그날 장대비가 내렸다. 우산이 없어 처마 밑에서 한참을 서 있던
내 앞에 제법 체격이 큰 청년이 우산 두 개를 내밀었다. 몇 년 전 수원 S고에 재직할 때, 불미스런 일로 학교를 그만 둔 신 군이었다.
신 군은 당시 2학년이었고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신 군은 담배를 피우면서 교무실을 자주 드나드는 신세가 됐다. 그것이 나와의 인연을
맺어준 계기가 됐다. 신 군의 지도를 자청한 나는 두어 달 동안 함께 얘기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순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후 신 군은 별 말썽 없이 지냈고, 3학년을 맡은 나도 그 때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신 군이 자전거를 훔친 절도죄로 경찰서에 잡혀 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그럴 리가….' 정말 어이가 없어 나는 담임교사의
등을 밀다시피 해 경찰서로 갔다. 신 군의 두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좀 더 잘 지도했더라면…'하는 무력감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검찰에 이송될 때까지 나는 경찰서에 드나들며 신 군을 만났고 청소년 전담 검사님의 호의로 `책임 감화시키겠다'는 각서를 쓰고 신 군을 데리고
나왔다.
학교에서는 검찰청까지 다녀 온 신 군을 퇴학시키자고 했지만 사정사정 끝에 무기정학으로 양해를 얻었다. 하지만 신 군은 더 이상 얼굴을 들 수
없다며 끝내 학교를 떠났다.
교문을 나서는 그 아이의 뒷모습은 평생의 아픔으로 남았지만, 난 그 때 그 아이를 위해 무언가 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불탔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검정고시였다. `학교를 그만 뒀다고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는 말로 난 방황하는 신 군을 붙잡았다. 그리고 독학에 필요한 책과 학교에서
나오는 학습유인물을 신 군의 친구를 통해 계속 전했다.
결국 신 군은 친구들의 정성과 본인의 성실함으로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단국대학교 공과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 소식을 마지막으로 또 몇 년이 흐른 오늘. 신 군은 내 앞에서 비오는 골목길을 지키고 서 있었다. 신 군은 육군에서 선발하는 기술병과 초급
장교 후보시험에 합격해 입영 전날, 내게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했다. 너무 고맙고 반가웠다. 빗물이 떨어지는 처마 밑에서 우린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에서 얘기지만 신 군은 친구 때문에 자전거를 훔쳤다고 했다. 가장 절친한 남 군이 시내버스에서 등록금을 분실하자 등록금 마련을 위해 무모한
짓을 저질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신 군의 잘못만 생각했지, 친구를 도우려했던 아이의 때묻지 않은 우정은 헤아리지 못했다. <전진용
경기이천교육청 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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