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매를 들고 교육에 임하는 것은 사랑과 이해에 바탕을 둔 진정한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 교단생활 삼십여 년 동안 하나의 금기처럼 멀리했던 매를 기막히게도 교감이 되고 난 후 들게 됐다.
막다른 일선학교의 절망적인 생활지도 현실에 비추어 교감이라도, 아니 교감부터서 매를 들지 않으면 정상적인 학생관리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마음이 무겁다.
줄지 않는 사건·사고 백약이 무효?
하루가 멀다않고 터지는 각종 사건, 못된 몇몇 학생들의 음주․흡연 행위에서부터 준법성이 없는 아이들의 이런저런 비행과 장난 수준을 넘어선 학우들 간의 폭력 사건 그리고 학업성취나 교우관계 등 학교생활 전반에서 부적응을 보이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실 앞에서 교직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궁리해 보지만 하나같이 미봉책에 그칠 뿐이다.
학기 초에 관심을 요하는 학생을 선정해 교사들과 결연을 맺어 수시상담하고 관찰지도를 하게 하거나 사전예방에 중점을 둔 담임 중심의 생활지도 활동, 학교 차원의 교육적 훈화와 계도, 지역사회 유관기관과의 합동 교외지도, 학부모와의 연계지도 등 생활지도의 정착을 위해 좋다는 방법은 안 해보는 일이 없건만 사건은 줄어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날로 늘어나는 결손가정과 부모의 무관심을 하나의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갈수록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사별로 인한 ‘편부, 편모 가정’이 늘고 있고 이 같은 불안정한 상태가 학생을 탈선과 비행에 쉽게 노출되게 하는 것이다. 아무런 보호나 통제가 없는 우리의 아이들이 환경적 요인으로 문제의 학생이 되는 것이다.
또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욕먹기 싫어하고 궂은 일 싫어하는 우리 선생님들의 소심한 교육의지도 학생 탈선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교육활동에서 교사는 문화적 규범과 사회적 규율을 제시하고 그 내면화를 지도해야 하는 쪽이고 학생은 그러한 제도적 규범의 틀에 순응하기보다 일단 벗어나려 하는 속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따라서 둘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대립적이어서 항상 긴장될 수밖에 없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이 의무와 책임은 외면한 채 자기 권리만 요구하고 있고 이기적 자식사랑에 눈먼 일부 학부모들의 무지몽매한 동조화까지 겹쳐져 고소 고발되는 사태에 이르고 보니 이젠 누구도 학생지도에 열성을 부리려 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아무 일 없기만을 바라는 실정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 조숙의 정도가 예전 아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고 그 행동특성 또한 종잡을 수 없는 요즘 청소년기 아이들의 특성에 대한 전문적 이해가 부족한 것도 학생의 생활지도를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 발달단계에 맞는 생활지도 방법과 대안이 일선학교에 구축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자식을 가장 잘 안다는 학부모는 자녀의 품성이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그 내면적 욕구가 무엇이든지 간에 무조건 공부만 잘해주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식의 접근을 하게 되고 선생님들 역시 그에 별반 다르지 않는 관점에서 아이들을 다루다 보니 생활지도가 ‘하는 시늉’으로 끝나버리고 그 여파로 교육활동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지적․정의적․신체적 측면에서의 조화로운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깊게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은 작게는 개인적 불행이고 크게는 국가적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생활지도 가정과 학교 함께 나서야
가정은 가정대로 위기이고 학교는 학교대로 정상이라 볼 수 없는 오늘의 상황에서 이 땅의 모든 부모들이 자식교육에 관한 스스로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부모로서의 역할회복에 나서고, 학교는 학교대로 선생님들 모두가 스스로에 주어진 무한책임의 소명을 자각하고 학생 지도의 열정을 되살려 나간다면 얼마든지 희망은 있다고 본다. 아울러 날로 심각성을 더하는 청소년문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 국가적 대안마련 노력 또한 필요하다.
광주 지산중 교감·한교닷컴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