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는 1980년대 교육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교육을 통한 사회 이동의 사다리를 놓았으나, 점차 교육 현장의 획일화와 경직성을 초래하며 자율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분출되었음을 살펴보았다.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흐름에 발맞추어 권위주의적 국가 통제를 완화하는 한편, ‘세계화’와 ‘정보화’를 국가 발전의 핵심 전략으로 내걸고 사회 전반의 전면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는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을 발표하며 공급자 중심의 획일적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해 학습자(수요자) 중심의 열린교육사회로 나아가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교육대통령’을 표방하며 ‘교육재정 GNP 5% 확보’와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설치’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고, 취임 후 2년 여에 걸친 사회적 공론화와 숙의 과정을 거쳐 개혁의 청사진을 확립했다. 이때 정립된 ‘자율과 책무, 다양화와 수월성’이라는 기본 철학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교육정책의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5·31 교육개혁은 단순한 이상주의적 선언에 머물지 않았다. 정부는 제7차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의 선택권과 수준별 수업의 길을 열었고, 학교운영위원회를 제도화하여 관치행정에 묶여 있던 단위학교에 자율과 책임경영의 기반을 마련했다. 대입에서는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복수지원제를 안착시켜 입시의 자율화와 공공성을 동시에 모색했으며, 초등 영어교육의 공교육 편입과 대대적인 교육정보화 인프라 구축으로 미래 지식정보사회를 향한 ‘디지털·글로벌 고속도로’를 개척했다. 아울러 이러한 개혁 과제들을 실질적으로 떠받치기 위해 법 개정과 세원 확충을 통한 과감한 교육재정 투자 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비록 교육분야 시장 원리 도입에 따른 신자유주의 논란과 현장의 제도적 미성숙으로 인한 진통, 그리고 현실적 여건에 따른 점진적 속도 조절이라는 과제를 안기도 했으나, 문민정부의 시도는 선진국 진입을 위한 필수적인 국가적 인적자원 개발이자 담대한 제도적 실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호에서는 문민정부 시기 추진된 초·중등 교육개혁의 주요 정책 내용을 검토하고, 그것이 한국 공교육 체제의 변화 과정에서 지니는 역사적 성격과 정책적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의 대전환 _ 제7차 교육과정
문민정부 5·31 교육개혁의 핵심은 기존 국가 주도의 획일적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여,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열린교육사회를 구현하고 공급자가 아닌 학습자(수요자) 중심의 교육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개혁 철학을 초·중등학교 현장의 표준 규범으로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결실이 바로 1997년 12월 30일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이다. 제7차 교육과정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10년을 ‘국민공통기본교육기간’으로 일원화하여 10개 기본 교과의 계열성과 연계성을 확보하는 국가 표준 기틀을 정립했다. 아울러 학생 개개인의 학습 능력 차이를 존중하는 ‘수준별 교육과정’과 고등학교 2~3학년 대상의 ‘선택중심 교육과정’을 도입해 학생이 적성과 진로에 따라 과목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개방했으며, ‘재량활동’을 독립된 영역으로 신설·확대하여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 자율성과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 역량을 함께 도모했다.
이로써 제7차 교육과정은 획일적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의 선택권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현대적 교육과정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준별 이동수업에 따른 ‘우열반 부활 논란’, 전용 교실 및 교원 수급 부족으로 인한 형식적 운영, 대입 수능과의 엇박자로 인한 입시 유불리 중심의 기형적 과목 쏠림 현상 등 현장 안착 과정에서 적지 않은 구조적 한계와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규제와 통제에서 자율과 책무로 _ 학교운영위원회의 설치와 단위학교 책임경영
제7차 교육과정이 학생의 적성과 능력을 고려해 선택의 폭을 넓히고 학교별 교육과정의 다양화를 지향했다면, 이러한 변화는 수업의 내용과 방식에만 머물 수 없었다. 개편된 교육과정을 실제로 편성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학교 현장에도 그에 걸맞은 자율적 권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김영삼 정부는 중앙정부와 교육청의 지시와 통제에 의존하던 학교 운영체제를 단위학교의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러한 정책 방향에 따라 학교에는 지역적 여건과 학생 및 학부모의 요구를 반영해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할 수 있는 권한이 점차 확대되었다. 재량시간과 학교 선택과목은 학교가 획일적인 국가교육과정에서 벗어나 특색 있는 교육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기능했다. 동시에 1995년부터 시범 도입된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교직원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지역사회 인사가 학교 예산과 교육과정 등 주요 사안을 함께 논의하는 참여적 의사결정 체계가 마련되었다. 이는 학교장에게 교육청의 지시를 단순히 집행하는 관리자를 넘어 교육성과를 책임지는 경영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하는 단위학교 책임경영제로 이어졌으며, 자율에 상응하는 책임을 확보하기 위한 학교 평가도 함께 도입되었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5·31 교육개혁이 제시한 자율과 책임, 다양화와 책무성이라는 중심 철학이 학교경영의 차원에서 구체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과정의 자율화가 학교의 교육활동에 변화를 가져왔다면, 학교운영위원회와 단위학교 책임경영은 그 철학을 학교 운영의 방식에 반영한 제도적 장치였다.
국제화 정책과 초등 영어교육의 공교육 편입
문민정부의 세계화 기조 아래 추진된 초·중등 교육개혁 중 주목할 만한 조치는 초등학교 3학년 영어교육의 정규 교과 도입이었다. 국가 차원의 경쟁력 강화와 세계화 대응이라는 목표 외에도, 당시 민간에서 확산되던 조기 영어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 체계 내로 흡수하여 계층 간 교육 격차를 완화하겠다는 정책적 판단이 함께 작용했다.
도입 초기 모국어 발달 저해 및 조기 과열 경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교육 당국은 기존 중·고등학교의 문법 및 독해 위주 수업과 구별되는 ‘듣기·말하기 중심’과 ‘활동·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을 구성하여 학습 부담을 완화하고자 했다. 아울러 제도 안착을 위해 현직 초등 교사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직무연수,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배치 사업, 시청각 멀티미디어 교재 개발 및 보급 등 지원 정책이 병행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일본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공교육 정규 편제를 단행한 사례였다. 초기 교원 수급 및 지도 역량의 편차, 공교육 도입 이후에도 이어진 사교육 심화 문제 등 한계와 논쟁이 병존했으나, 초등 단계에서 실용 외국어 교육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은 문민정부 교육개혁의 주요한 단면으로 평가될 수 있다.
평가 패러다임의 전환과 대입 자율화 _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도입
1990년대 초반 단행된 또 하나의 획기적인 개혁은 1994학년도 입시부터 전면 시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도입이었다. 이는 기존 학력고사의 단순 암기 위주 평가와 고교 교육의 파행을 극복하고 대학 수학에 필요한 종합적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정부는 1980년대 후반 연구와 실험평가를 거쳐 제도를 설계했으며, 국가 수준의 공통 평가기준을 유지하면서 고교 내신 등과 연계해 대학의 자율적 선발 기반을 확립하고자 했다.
수능 도입의 핵심적 의미는 단순 암기 지식 측정에서 벗어나 언어 이해력, 논리력, 문제해결력 등 고차원적 사고력 평가로 전환하고, 원리 적용 중심의 문항을 통해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지향한 데 있다. 나아가 국가 주도의 공통 평가체제로 입시의 공공성과 형평성을 높이는 한편, 수능을 내신 등과 결합하는 다원적 전형 자료로 활용하게 함으로써 대학의 선발 자율권을 넓혔다. 다만 병행된 대학별 본고사는 사교육 과열이라는 비판 속에 훗날 폐지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94학년도 입시에서는 수험생의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복수지원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과거 단 1개 대학에만 응시할 수 있었던 경직된 틀을 깨고, 입시 일자가 다른 여러 대학에 복수로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수험생이 둘 이상의 대학에 동시 합격할 경우 희망하는 대학을 자유롭게 선택해 등록할 수 있게 됨으로써, 대입 제도는 국가 주도의 일방적 배치 체제에서 벗어나 수험생의 권익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현대적 선발 구조로 이행하게 되었다.
미래형 교육환경의 구축과 디지털 전환의 태동 _ 교육정보화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와 함께 정보화를 국가 발전의 핵심 전략으로 추진했다. 1995년 8월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제1차 기본계획을 수립한 정부는 교육정보화를 10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특히 5·31 교육개혁에서 미래 신교육체제 구축의 주요 과제로 제시된 교육정보화는, 학교와 인재 양성을 다가올 지식정보사회의 핵심 기반으로 인식한 국가적 전략의 출발점이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1996년 ‘교육정보화 촉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학교로 이어지는 ‘디지털 고속도로’의 물적 기반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학교 컴퓨터실과 교실에 정보화 장비를 보급하고 학내 전산망(LAN)을 단계적으로 구축했으며, 초등학교 위성방송 수신장치 설치와 교육용 멀티미디어 자료 개발을 병행했다. 아울러 정보기술을 수업에 접목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교원 연수를 확대하고, 1996년 교육정보 종합서비스인 에듀넷(EDUNET) 개통과 1997년 한국교육방송원 부설 멀티미디어교육지원센터(현 KERIS의 모체)를 설립해 콘텐츠 개발과 지원 전담 체계를 갖추었다.
결국 김영삼 정부의 교육정보화는 디지털 교육의 방향과 기본 골격을 마련하고 교실 단위의 인프라를 개척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 시기에 선제적으로 구축된 정책적·물적 기반과 교원 역량은, 이후 김대중 정부가 전국 학교의 초고속 인터넷망 연결과 정보기기를 전면 보급하며 교육정보화를 완성해 나가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교육개혁을 뒷받침한 재정 기반 _ 교육재정 GNP 5% 확보
김영삼 정부는 교육개혁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학교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재정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당시 학교 현장은 과밀학급과 노후 교실 등 누적된 물리적 한계를 안고 있었으며, 이에 정부는 1995년 5·31 교육개혁을 계기로 1998년까지 교육재정을 국민총생산(GNP) 대비 5%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확충된 재원은 교육환경 개선, 교육정보화 인프라 구축, 교원 처우 및 복지 개선, 대학 경쟁력 강화 등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각적인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우선 교육세법을 개정하여 등유의 특별소비세·교통세·담배소비세 등을 과세 대상에 편입하고 일부 세율을 인상해 세수를 확충했다. 또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하여 광역자치단체가 시·도세 총액의 2.6%를 교육비특별회계로 의무 전입하도록 규정했으며, 기초자치단체도 관할 학교의 교육경비를 보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아울러 1995년 제정된 「교육환경개선특별회계법」은 노후 교실과 냉·난방 및 위생시설을 집중적으로 보수·현대화할 수 있는 별도의 재정 창구가 되었다.
급격한 도시개발에 따른 과밀 현상에도 제도적으로 대응했다. 1995년 제정된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은 대규모 주택개발 사업자가 개발 초기 단계에서 학교용지를 확보하고 관련 비용을 분담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각종 개발사업 과정에서 주택 공급뿐 아니라 필수 교육 기반시설과 학생의 학습권을 국가와 사업시행자가 함께 고려하도록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비록 문민정부 임기 말 닥친 외환위기 여파로 예산이 삭감되면서 1998년 실질 교육재정은 약 4.3%에 머물러 당초 목표치를 온전히 달성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교육재정 확충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워 세원을 다각화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재정을 공동 분담하는 구조적 기틀을 확립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제도적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율과 책무의 신교육체제, 한국 교육의 구조를 바꾼 대전환
문민정부의 교육개혁은 1980년대 후반부터 태동한 규제 완화와 교육 자율화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문민’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정체성에 걸맞게 국가 주도의 획일적 통제를 탈피하고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선언한 일대 전환이었다. ‘5·31 교육개혁’으로 대표되는 문민정부의 정책은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획일적 지시에서 단위학교의 자율과 책무로 공교육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물론 새로운 패러다임이 현장에 안착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단위학교의 자율 역량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입된 자율화 조치들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수준별 수업을 둘러싼 갈등, 사교육 과열과 입시 혼선, 학교평가에 따른 현장의 피로감 등 초기 학교 현장은 심각한 진통을 겪어야 했다.
아울러 교육에 시장 경쟁 논리와 효율성을 과도하게 투영했다는 비판, 즉 ‘신자유주의적 교육 재편’이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교육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학계의 우려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또한 개혁안에 포함되었던 고등학교 다양화와 대입 자율화 등 주요 과제들은 급격한 전면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와 속도 조절을 거치며 단계적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문민정부의 시도는 종국적으로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향한 불가피하고 담대한 도전이었다. 민주화와 세계화, 정보화라는 문명사적 전환기 속에서 정부가 보여준 교육에 대한 높은 정책적 관심과 실질적인 재정 투자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필수적인 인적자원 개발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기초 인프라가 미비했던 시기에 학교 현장에 디지털 고속도로의 노반을 닦고, 실용 영어교육을 공교육 체계로 끌어올렸으며, 수능 도입과 학교운영위원회 설치를 통해 근대적 평가와 분권형 학교 자율 거버넌스의 뼈대를 세웠다.
폭넓은 사회적 공론화와 의견 수렴을 거쳐 백년대계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할 법적·재정적 토대를 마련하며 현장에 과감하게 자율성을 부여했던 문민정부의 교육정책은 우리 교육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제도적 실험이었다. 비록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정책의 속도를 조절하며 단계적 완성을 모색해야 했지만, 당시에 마련된 제도적 기틀과 개혁의 철학은 오늘날 대한민국 초·중등 교육의 구조를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문민정부가 대학 설립 준칙주의 도입, 대학 정원 및 학사 자율화, 재정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추진했던 고등교육 분야의 주요 개혁 과제들과 그 명암을 살펴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