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호기심”

2026.06.25 09:26:39

전 영재교육장학관이 AI와 함께 만든 속진학습 플랫폼 ‘OHORA’
선행학습 아닌 ‘속진학습’ 제안… 학생 특성 따라 배우는 새로운 영재교육 모델 주목

“초등학교 1학년 손자가 주기율표 원소를 줄줄 외우고, 2학년 손녀가 영어 단어를 스스로 익혀 짧은 문장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가능성이 학년이라는 틀 안에만 머물러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고요.”

 

38년간 교육 현장을 지켜온 이구남 전 경기도교육청 영재교육담당 장학관이 최근 초등학생 대상 AI 기반 학습 플랫폼 ‘OHORA(오호라)’를 선보이며 교육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받는 이유는 73세의 전 장학관이 직접 교육 철학을 설계하고, 인공지능과 협업해 플랫폼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이 전 장학관은 연구사와 교육과정 장학사, 교장, 영재교육담당 장학관 등을 역임하며 오랜 기간 학생들의 학습 특성과 성장 과정을 관찰해 왔다. 퇴직 후에도 코딩과 집필 활동을 이어오던 그는 손주들의 학습 모습을 계기로 새로운 교육 플랫폼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손주들에게 학습 문제를 파일로 보내주곤 했는데 접근성이 떨어졌다”며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기반 학습 앱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개발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초기에는 수학·영어·한자 세 과목으로 출발했지만, 점차 과학·AI·컴퓨터·세계사·지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현재의 플랫폼 형태를 갖추게 됐다.

 

OHORA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발자가 강조하는 ‘속진학습’ 개념이다. 최근 교육계에서는 과도한 선행학습의 부작용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전 장학관은 “선행학습은 정해진 교육과정을 앞당겨 배우는 개념이라면, 속진학습은 학생 개개인의 흥미와 특성에 맞춰 학습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 교육은 다수 학생을 대상으로 동일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개인별 관심과 재능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며 “아이마다 호기심을 보이는 분야와 성장 속도가 다른 만큼 학년보다 특성 중심의 학습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OHORA는 학년 구분 없이 다양한 과목을 단계별로 구성해 학생이 관심 있는 분야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정 과목에서 뛰어난 흥미를 보이는 학생이라면 학년의 제약 없이 더 높은 수준의 내용을 탐색할 수 있다.

 

이 전 장학관은 “속진학습은 일부 천재나 영재만을 위한 개념이 아니다”라며 “특성을 통해 아이 안에 숨어 있는 영재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OHORA는 어떤 학생들에게 적합할까? 개발자는 특정 영재 학생만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시각에 선을 그었다.

 

“특정 분야에 유난히 호기심이 많거나, 좋아하는 것을 깊이 파고드는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영재성은 일부 학생에게만 존재하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적절한 환경에서 발견되고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특히 학부모가 자녀의 학습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학생이 플랫폼에서 학습한 내용과 활동 기록은 실시간으로 누적되며, 학부모는 이를 통해 자녀가 어떤 영역에 흥미를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요즘 학부모들은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느라 매우 바쁩니다. 그렇다고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을 놓을 수는 없죠. OHORA는 부모가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자녀의 학습 현황을 확인하고 격려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는 학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지나친 관리나 간섭보다 격려와 대화가 중요하다”며 “자녀가 스스로 학습하는 과정을 응원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활용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OHORA에는 13종의 게임이 탑재돼 있다. 그러나 개발자는 이를 단순한 오락 기능으로 보지 않는다.

 

“게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교육적으로 설계된 게임은 충분한 학습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OHORA의 게임은 재미를 위한 보상이 아니라 학습의 연장선입니다.”

 

예를 들어 블록 쌓기 게임은 공간지각력, 카드 매칭 게임은 기억력, 수리 퍼즐 게임은 연산 능력, 체스는 전략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는 “아이들이 즐겁게 몰입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수 감각, 어휘력, 집중력, 논리력, 창의력 등을 키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궁극적으로는 작은 성공 경험이 누적되면서 자기주도성과 성취감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나친 사용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습도 결국 균형이 중요합니다. 앱에 흥미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의 과도한 사용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루 2시간 정도 꾸준히 활용한다면 충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OHORA는 지난 23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는 시범 운영 단계를 마친 초기 서비스로, 본격적인 회원 확보와 사용자 경험 축적이 앞으로의 과제다. 이 전 장학관은 “현재까지는 손주들과 교육계 지인들을 중심으로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재미있다’, ‘속진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실질적인 교육 효과는 일정 기간 운영 후 객관적으로 검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HORA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도 교육의 본질은 현장 경험과 학생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그는 “코드는 AI가 작성했지만 무엇을 가르칠지,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는 교육 현장의 경험이 결정했다”며 “AI는 도구일 뿐이며 교육 철학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다양한 특성과 흥미를 반영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율 속진학습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전 경기도교육청 장학관의 도전은 단순한 학습 앱 개발을 넘어선다. 학년 중심 교육의 한계를 넘어 학생 개개인의 호기심과 잠재력에 주목하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AI 시대를 맞아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 이제 막 시작된 셈이다. 현재 OHORA는 ohora.ai.kr을 통해 누구나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이영관 교육칼럼니스트 yyg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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