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희망의 교육 터전이 되려면

2026.02.09 13:45:12

필자는 교직에서 교사로, 교감으로, 그리고 교장으로 아이들과 40년을 함께했다. 아침에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늦은 밤까지 교재 연구와 학생 상담을 하면서 교무실 불을 켜며 보냈던 날들 속에서 수많은 교육정책의 변화를 경험했다. 하지만 “변화가 상수(常數)”인 시대에 한 가지는 여전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입시가 학교를 지배하고, 사교육이 빈틈을 메우는 구조다.

 

현장에서 학부모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선생님, 학교 수업만으로는 불안합니다”였다. 이 말은 학부모의 이기심이 아니라, 학교를 끝까지 믿지 못하게 만든 제도와 사회의 책임이 크다. 특히 7년 정도를 관리자(교감, 교장)로 재직하며 학교 교육의 한계를 훨씬 더 잘 알게 되었다. 교육과정은 촘촘했지만, 평가를 위한 수업이었고, 아이들은 배움보다 결과를 먼저 걱정했다. 그 사이에서 사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누구나 입시는 공정하다고 말하고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필자가 바라본 현실은 달랐다. 입시의 규칙은 동일했지만, 준비의 조건은 결코 같지 않았다. 방과 후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 고가의 컨설팅으로 학생부를 관리하는 가정, 정보의 차이가 성적의 차이로 이어지는 구조를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 결과 학교는 점점 위상을 잃고 약화되어 가고, 학원은 미래를 준비하고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다.

 

긴 세월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국가 정책들을 접했고, 현장 교육자로서 직접 이에 대한 의견을 틈틈이 글로 제언했다. 그러나 제도가 바뀔 때마다 현장은 더 복잡해졌고,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은 더 커졌다. 입시가 정교해질수록, 그 해법은 교실이 아니라 학원에서 먼저 나왔다. 학교가 중심이 되지 못하는 교육개혁은 결국 사교육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수없이 겪고 있다.

 

한때 학교 관리자로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아이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하기 위해 “학교 수업에 충실하라”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그때마다 속으로는 움찔했다. 이 말이 아이들에게 단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교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입시 구조 자체가 선별과 변별에 과도하게 매달려 있는 한, 학교는 늘 부족한 공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핀란드를 비롯한 해외의 교육 선진국들의 사례를 연구할 기회를 가졌다. 상위 자격 취득을 위한 보고서 작성을 위해 교육 선진국들의 정책과 사례를 공부했다. 그때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 나라 학생들의 성적표가 아니라 교사와 학생 사이의 신뢰였다. 학교 간 서열이 없고, 조기 선발이 없으며,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확인했다. 그들 나라에서 사교육이 크지 않은 이유는 규제가 아니라, 학교가 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입시의 문제를 아이들과 학부모의 과열 이른바 ‘과도한 경쟁’으로만 돌려왔다. 이는 지금도 많은 고위 공직자들의 좌담회나 인터뷰, 고백에서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조를 유지해 온 것은 어른들이고, 정책이었고, 사회였다. 학교가 감당할 수 없는 역할을 떠안고, 그 결과를 사교육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이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첫째, 입시는 더 단순해져야 한다. 상위권을 가려내기 위한 미세한 변별은 대다수 아이를 불안으로 몰아넣는다. 둘째, 학교에 평가와 교육의 자율성을 돌려주어야 한다. 교사는 행정의 집행자가 아니라, 교육 전문가다. 셋째, 무엇보다 학교 교육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신뢰를 국가가 제도로 증명해야 한다.

 

현직을 떠난 지금도 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입시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작게만 느끼던 아이들, 노력보다 환경이 앞서는 현실에 체념하던 아이들 말이다. 교육은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모든 아이가 존중받으며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학교와 우리 교육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이제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말하고자 한다. 사교육을 줄이고 싶다면, 먼저 학교를 믿게 만들어야 한다. 그 책임은 아이들에게도, 학부모에게도, 교사에게도 아닌, 우리의 모든 어른에게 있다. 이 땅에 어른들의 진정한 용기와 혁신으로 교육의 본질에 보다 매진하여 학교 교육만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을 펼치는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기대하고 소망한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hak0316@hanmail.net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 wks123@tobeunicorn.kr, TEL: 1644-1013,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강주호 | 편집인 : 김동석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