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살 것인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한 사람에게나 국가에게나 중대한 질문일 것이다.
역사의 거울 앞에 설 때 우리는 늘 자만의 자세보다는 성찰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수천 년의 우리 역사에서 20세기 후반기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분단은 수십 년간 도덕적 국위 손상은 물론 정치 경제적으로 엄청난 국력을 낭비시키고, 사람들의 심리 깊숙이 스며들어 전 민족의 사회 문화를 피폐케 하였다." ~ 작가의 책머리에서~
이러한 고민을 안고 35년을 외교관으로 산 권태면 작가(전 코스타리카 대사)가 우연히 재미 독립운동가인 김용중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가지 못한 길'(출판사 논형)을 세상에 내어 12일 출판기념회를 하였다.
이 책의 핵심은 재미 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이며 민주화 운동가인 김용준(1898년 금산 출생)의 스토리를 소설방식으로 담았다.
선생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 신혼 후, 상해로 망명했다. 여운형의 도움으로 1917년 도미, 캘리포니아에서 10여 년간 막노동을 하며 늦깎이로 영어중고교를 다닌 후 청과물 도매회사를 설립했다. 사업 성공으로 백만장자가 되어 하버드 입학, 동포사회 내 재력가이자 지식인으로서 1937년 중일전쟁 이래 한인 사회 내 지도부로 활동하였다.
태평양전쟁기에는 워싱턴에 파견되어 이승만을 도와 활동하고, 1943년부터는 워싱턴에 한국문제연구소를 만들어 40여 년간 언론 외교 활동에 매진하였다. 선생은 미군정과 국무부 등에게 가장 인정받는 재미인사로서 1947년 남북분단이 걱정되어 귀국, 여운형의 외교 보좌, 재망명 후 1975년 서거시까지 30여 년간 중립을 통한 통일 노력, 반 독재 및 민주화 투쟁을 하였다. 이후 1998년에야 유해 송환이 이뤄졌으며, 건국훈장 애족장 서훈도 받았다. 선생의 유언은 "내 뼛가루를 38선에 뿌려달라!"였다.
김용중 전기소설을 쓰게 된 동기와 의미
김용중의 생애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통일과 독립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곧 외교관이 고민해야 할 잇슈라는 점에서 외교관 생활 중 쓴 것인데, 전문 작가나 연구자가 아닌데다 일반 독자의 쉬운 이해를 위해 위인전이나 평전이 아닌 팩션 방식으로 쓰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교과서나 역사서에서 배우는 독립운동가는 대부분 무력 투쟁가, 정치 지도자들인데, 국제정치 분야에 초점을 둔 김용중 같은 독립 통일 운동가도 있다는 것을 일반 국민에게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주장은 무엇인가?
선생은 통일이 아닌 분단은 전쟁을 가져오고, 전후에도 분단은 민족의 영원한 족쇄가 될 것이라는 통찰을 하게 되어 분단 극복에 평생을 바쳤다. 또 좌우 강국에 치우치지 않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독립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방법으로는 중립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점이다.
일시적으로 중립을 제기한 분들로는 김규식, 안재홍, 조봉암, 조용수, 이병주, 맨스필드 등이 있다.
특히 외교 언론 활동가라 할 수 있는 선생이 국가도, 국가기관도 제대로 없던 시기인 1943~1961년까지 무려 18년이나 혼자 발간해 낸 월간 영문지 Voice of Korea는 재평가해야 할 업적이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동맹 수립 후 70여 년이 흘러 문제의 재인식 자체가 쉽지 않은 현실이나, 완충국인 한반도에 중립의 길은 과거의 주장만이 아니라 현재도 미래에도 민족의 생존 번영에 영원한 화두가 될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목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스위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웨덴처럼 중립의 지혜를 갖지 못하고 국내 갈등과 통합을 이루지 못해 온 점일 것이다.
작가 권태면은 "나침반 이론에 따라 영세 중립인 12시가 아니더라도 11시에서 1시 사이의 중립의 길이다. 책 제목은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착안하여 우리가 갈 수 있었으나 가지 않았던 길, 가지 못한 길,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에서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 약력>
1979년에 외무고시 13회 수석합격으로 외교관이 되어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스페인, 뉴욕의 유엔대표부, 폴란드에서 중년을 보냈다. 외교부 북한과장, 통일부 국장 등 상당 기간 북한에 관한 일을 하였다.
나이가 들어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주기로 한 다자기구인 KEDO(한반도에너지개 발기구)의 북한 주재 대표로 2003년부터 함경도에서 2년을 살고, 2006년부터 미국 워싱턴에서 총영사, 2009년부터는 코스타리카에서 대사로 일했다.
공직에 있던 기간 중 지은 책으로 한국의 사회문화에 관해 쓴 <밖에서 바라본 한국>, 북한에 살면서 그곳을 보며 쓴 <북한에서 바라본 북한>, 신라 이래 우리 역사에서 외교활동을 한 분들의 이야기를 쓴 〈우리 역사 속의 외교관, 어려서부터 써 온 아마추어 시들을 묶어 펴낸 시집으로 <구별연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