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못다 핀 꽃봉오리들이 싹둑 잘려 나갔다. 외면적으로는 스스로 꽃망울을 떨군 모양새지만 이는 그 꽃들을 관리하고 키워야 할 사회가 무참하게 조장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사회적 타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안타깝고 불명예스럽게도 지금까지 우리는 거의 10여 년째 세계에서 가장 많은 청소년들이 꽃을 피우지도 못 한 채 떨구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이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발만 동동 구르며 방관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저 너머 영원한 안식처에서는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읍소해 왔다.
“청소년 자살, 더 이상은 안 된다.” 아무리 외쳐도 새 날이 밝아오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소년의 죽음의 소식이 또 전해진다. 그런데 그 죽음의 배경에는 거의 비슷한 이유가 존재한다. 최근 부산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고생 3명이 함께 숨진 이유 역시 학업 스트레스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입시와 학업 부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 확실한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큰 압박감에 시달렸을 지를 추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5월 발표한 ‘2025년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2023년 청소년 자살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11.7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위인 안전사고로 인한 청소년 사망자 수(3.2명)의 4배에 달해 2011년 이후 13년째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매년 5만 명 안팎의 학교 밖 청소년들의 배출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청소년들은 학교를 떠나고 죽음을 선택하는 등의 극단적인 수단을 서슴지 않을까?
우리는 이러한 비극적인 현실이 현행 교육 제도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는 과도한 경쟁 위주의 교육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는 이번 사건을 청소년들이 처한 삶의 조건과, 학교·사회·국가가 함께 만들어 낸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굳이 전문적인 진단을 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우리 아이들과 그 친구들의 참담한 현실을 매일 눈으로 보고 있다. 학교 등교 시부터 우울한 표정은 거의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의 고민과 깊숙이 연계되어 있다.
늘 그렇듯이 결론은 한 마디다. 청소년 자살은 우리 교육의 치명적인 인과응보다. 더 이상 우리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 사실 문제는 교육제도와 학교 현장의 모순에 그치지 않고, 사회 구조 전반의 문제이기에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정책으로 온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극도의 입시 경쟁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교육 제도와 학교 현장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사람의 목숨만큼 더 소중한 것이 또 있으랴? 그 소중함을 우리의 아이들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차라리 온갖 고통을 잊고자 하는 그들의 심정을 우리는 얼마나 역지사지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학교 현장은 ‘정서 위기의 아이들’이 구해달라고 모든 손짓, 발짓을 하며 SOS를 긴급하게 띄우고 있을 것이다. 극단적 선택을 앞두고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으로 주변에 자신들의 정서적 상태를 호소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를 소위 생명의 ‘하인리히 법칙’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이 없을 것이다. 과연 그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진심어린 관심과 건강을 돌보는 시스템과 안전망의 강화를 취하고 있는가? 각 학교에서는 ‘위기 학생 관리 위원회’를 얼마나 진지하게 운영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이제는 근본적인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학생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하도록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경쟁으로 한 줄 세우고, 성적으로 아이들을 차별하여 아직도 소위 ‘우수반’이란 명목으로 학생들을 차별하며, 학업 스트레스로 몰아 잠 못 이루는 아이들을 양산하며, 친구도 모두가 극복해야 할 경쟁자로 만드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완전 개혁하지 않으면 청소년의 죽음은 끊임없이 전해져 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매번 우리는 구태의연한 행태를 반복하며 그저 가슴만을 쓸어내리기를 지속할 것인가?
“사람이 우선이다.” 이는 지난 진보 정부가 내세웠던 구호다. 또 다시 사이클을 이루어 새 진보 정부가 들어섰다. 아무리 말로는 ‘꽃보다 아름답다’고 인간을 미화해도 그 꽃이 일찌감치 시들어버리는 현실에서 우리는 꽃의 존재마저 무시하고 무관심으로 방관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당장 경쟁을 협력과 연대로 바꾸어 모두가 성장하고 성공하는 교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경쟁만을 신봉하는 이 사회의 기득권자들에게 더 이상 살인을 용인할 수 없다. 경쟁 없이도 잘 살고 강대국을 유지하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많다. 가장 공정하다는 허울 좋은 경쟁을 명분으로 내세워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온갖 고민과 불행 나아가 자살의 단초를 제공하는 교육제도와 경쟁시스템을 혁명적으로 개혁할 때임을 하루라도 빨리 인식하여 궤도 수정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