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디지털의 거센 물결이 마치 혁명과도 같이 우리 사회의 겉과 속을 송두리째 바꿔가고 있다. 그 중에도 가장 대표적인 주역은 바로 휴대폰이라 할 것이다. 불과 오륙 년 전만 해도 일부 특수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았던 '이동식 전화'가 이제는 말 그대로 손안에 들어오는 '휴대폰'이 되어 거의 수족의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나아가 앞으로는 여기에 그동안 따로따로 사용했던 디지털 도구들을 한데 통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즉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MP3는 물론 가장 중요한 도구인 PC의 기능까지 엮어 넣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휴대폰은 각 개인의 총체적인 정보관리 센터가 된다. 그리하여 격변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함께 헤쳐나갈 가장 가까운 동반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면 디지털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는 점이 사뭇 흥미롭다. 디지털(digital)에서의 디지트(digit)는 본래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어렸을 때 처음 사용했던 '손가락 셈'이 바로 디지털 계산이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 손가락 셈의 기원은 아득한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임에 틀림없다. 이 점에서 보듯 손가락 셈이라는 '계산의 원형'은 디지털이다. 실제로 오늘날 만국 공통으로 쓰이는 10진법은 그 직접적인 유산이며, 고대 문화에서 가끔씩 발견되는 5진법과 20진법의 뿌리도 여기에 닿는다.
디지털 계산은 이후 '주판'이란 도구의 탄생으로 크게 융성한다. 정확한 기원이 어딘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국과 로마 등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널리 쓰였다. 우리의 경우 바로 10여 년 전까지도 은행원의 필수 도구로 쓰일 정도로 오래 지속되기도 했다.
아날로그의 원 뜻은 '비유' '흉내'이다. 따라서 아날로그 계산은 "진짜 계산인 디지털 계산의 흉내내기"라는 뜻인데, 이에 대해서는 저울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울에 사과 2개를 올리면 2란 눈금을 가리킨다고 하자. 여기에 3개를 더 올리면 5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저울의 눈금은 저울 속에 들어 있는 용수철의 눌린 정도를 비유적으로 나타낼 뿐 손가락이나 주판알처럼 어떤 수에 대한 직접적인 상징이 아니다. 그러나 아날로그 계산은 근대에 들어 기계적인 측정 기술이 정밀하게 발달함에 따라 매우 폭넓게 쓰였다. 여러 가지 눈금이 깨알같이 새겨진 '계산자'는 1970년대 말 휴대용 계산기가 나오기 전까지 이공계 종사자들이 널리 애용했던 계산 도구였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디지털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아날로그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인간의 오감은 본질적으로 아날로그다. 따라서 어떤 정보를 아무리 디지털화한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려면 다시 아날로그 형태로 바꿔야 한다. 나아가 디지털화가 아예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거장 음악가의 연주나 미술가의 창작 활동은 물론 전통 공예나 무형 문화재 같은 경우 아날로그가 본질이며 디지털화가 오히려 흉내내기가 된다. 요컨대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세상의 2대 본연이자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2대 방법론이다. 거기에 어떤 본질적인 우열은 없으므로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오직 상황에 따라 보다 적절한 관념을 적용해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