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

2011.05.01 09:00:00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는 교육의 본질에 기반을 둔 전략을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학교의 맛을 살리면서 우리 아이들이 세상을 탐험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눈과 마음을 끄는 독특한 방식이 필요한 때이다

오래전 필자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 ·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를 35년 만에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대학시절 연애 이야기에 이르렀다. 그는 그녀를 위해 어느 날 저녁 소양강변에서 하모니카를 불었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하모니카를 종종 분다고 했다.
아무튼 소양강변의 저녁과 하모니카, 참 멋진 어울림이다. 트럼펫, 첼로 등 다른 악기의 연주 소리도 멋지지만 저녁의 하모니카 소리는 아스라한 그리움이 담겨져 있다. 여름날 저녁에 중학생이었던 친구 형님이 구성지게 불던 하모니카 소리, “해는 저어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설익은 실력이었지만 담백하게 멜로디를 풀어내는 그 형님의 모습은 굳이 들어달라고 하지 않아도 옆에서 듣게끔 하는, 적어도 나에게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는 구경도 못해보고 학교에나 풍금이 있었던 그 시절의 하모니카는 최초의 악기로서 많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간단한 노래 한 곡조 정도는 부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토미 라일리(Tommy Reilly, 1919~2000), 지그문트 그로븐(Sigmund Groven, 1946~), 리 오스카(Lee Oskar, 1948~) 등의 연주자는 하모니카에 대한 나의 소박한 생각들을 바꿔놓았다.
하모니카는 전 세계에 널리 퍼진 악기 중 하나로 연간 판매량이 무려 2천만 대에 달하는 대중적인 악기이지만 전문 연주자는 놀랄 만큼 적다.

나는 리 오스카가 연주하는 <마이 로드(My road)>를 좋아한다. 오래 전 이 음악을 처음 듣던 날, 아이들과 얽혀 있는 선생이라는 나의 길이,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어 강이 아름다운 것처럼, 예사롭지 않게 멋있어야 한다는 다짐이 가슴속에 소리 없이 가라앉았다.
리 오스카는 전문 연주자답게 수많은 하모니카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이름을 딴 하모니카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모니카’라는 악기가 이토록 멋있었단 말인가! 리 오스카는 새로운 하모니카의 세계를 알게 해준 연주자이다. 그가 들려주는 하모니카의 세계는 쓸쓸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쾌하고, 유혹적이기도 하다.

리 오스카는 만약 자신이 어릴 때부터 음악 교육을 받아 뛰어남을 보였더라면 아마도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 때문에 하모니카가 아닌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하모니카 연주자가 되었고 자기가 좋아하는 하모니카 연주자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한다.
20세기 최고의 콘트라 베이시스트 게리 카(Gary karr) 또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악기를 가지고 최고의 위치에 올랐을 뿐 아니라 그 악기의 역사마저도 바꾸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처럼 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며 살고 있는가.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되질 못하고 끊임없이 내 밖의 어떤 사람을 닮아가려고 애만 쓰고 산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창조적인 도구가 악기라고 한다면 꼭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악기라 하더라도 우리의 영혼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족하지 않겠는가.

클리셰(Cliche) 깨뜨리기
‘클리셰(Cliche)’란 ‘진부한 표현(생각) 또는 판에 박은 듯한 문구’를 뜻하는 말로서 원래는 인쇄에서 사용하는 연판(鉛版)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이다. ‘공사다망한데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처럼 너무 자주 사용되어 진부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표현을 의미한다.
이런 광고문구를 본 적이 있다. 『그림 그리는 재주가 없다면 사진을 찍어보는 건 어떨까요?/ 공을 맞추는 재능이 없다면 공을 던지는 투수를 하면 어떨까요?/ 그것이 그대가 만드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땅에서 기회를 찾을 수 없다면 바다에서 돋보일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됩니다』
좋은 광고는 ‘먼저 눈길을 끌고 그 다음에 마음을 훔치고 최후에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데 맞는 것 같다. 그 광고에는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점, 재미있는 점, 유익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새 학기를 맞아 전국 고등학교에 보급된 개정 음악교과서 3종에 요즘 청소년들의 취향에 맞춰 대중음악 가수들의 곡이 실렸다. 어떤 교과서는 1920년대부터 2000년대 댄스음악과 아이돌 그룹 출현까지를 분석하면서 윤심덕, 이미자, 산울림, 조용필 등 시대별 주요 가수를 언급했다. 또 1988년 이문세의 <붉은 노을>과 2008년에 이를 리메이크한 빅뱅의 곡을 소개하면서 악보를 실었다. 예전의 음악 교과서는 클래식과 가곡뿐이어서 학생들이 재미없어하기 때문이고, 이제 대중음악의 학문적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이란다. 클리셰를 깨는 <붉은 노을>의 가사가 명쾌하다.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신입생 여러분들의 노력을 기대합니다’, ‘사교육을 이기기 위한 공교육이어야 합니다’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의 클리셰를 깰 수는 없을까?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신입생 여러분들 입니다”라는 말이 신입생들에게 훨씬 도전 의지를 부추기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사교육과의 경쟁이 아니라 ‘21 세기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알게 해야 한다’는 교육의 본질에 기반을 둔 전략을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유인책 학교 특색사업
부산광역시교육청 주관 2011학년도 교장자격 연수에서 <학교 특색사업의 기획과 운영>이라는 과목으로 강의를 했다. 강의 원고에 『특색있는 학교는 학교 및 지역사회의 여건과 특성에 맞추어 창의적이며 자율적인 학교운영을 통해 바람직한 성과를 높이는 학교를 말한다. 그리고 특색있는 학교는 곧 ‘좋은 학교’ 또는 ‘우수한 학교’와 동의어이다』라고 본론을 열었다.
나는 평소 ‘좋은 학교’는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가장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교라고 생각한다. ‘좋은 교육’은 <국민교육헌장>에 나타나 있듯이 저마다 타고난 소질을 계발(啓發)하는 것이고, 계발은 ‘문답을 통해 자발적으로 깨달아 알게 하고 창의와 자발성을 길러주는 교육방법’ 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학교 특색사업이란 학생들의 소질 계발을 위한 독특한 방법이며, 감동 없는 고생길이 아니라 세상을 탐험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가도록 하는 유인책인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의 교육은 60년 이상을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보다는 진학 · 선발에 대비한 교육으로 점철되어 소질과 적성, 잠재능력의 개발은 안중에 별로 없고 모두 한 곳만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이어져 왔다. 모두가 한 대학만 바라보고 언론에서도 그 대학 합격자 수가 많은 학교에만 주목한다.
왜 쓸데없이 위대함만을 추구하려고 하는가. 위대함이란 치명적인 함정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하루하루 일과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살아가는 힘을 키우기 위한 가장 구체적인 전략을 개발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몇 년 전 어느 일간지에서 『올해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 고교는 전국의 833개교. 모두 서울대 합격을 홍보하려고 나서지만 ○○고등학교는 정반대다. 이런 분위기는 “일류병과 허영에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당당하게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 돼라”는 설립자가 강조한 독특한 교육철학 때문이다. 따라서 이 학교는 재학생이 서울대에 합격했다고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의 길을 열어주자
인생은 학벌이 아니고 누가 더 대단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가의 싸움(?)이다. 그 학교만의 대단한 이야기, 아이들과 선생님 각자의 대단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심오한 사색과 지혜, 단순 명쾌하면서도 깊은 뜻과 의미 등이 각 학교에 녹아있어야 한다. 이제 학교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길을 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학교는 통섭, 융합, 소통 등을 기본 콘셉트로 해 우리 아이들의 개성과 끼를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또한 평생학습 시대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학생 대상으로 <2+2상생협동학습>, <과제연구>, <1인 20제 가지기> 등을, 선생님들을 대상으로는 을 실시하고 있다.
2+2상생협동학습과 과제연구는 협동학습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1인 20제 가지기는 예술적 감성을 함양하기 위해 졸업할 때까지 음악, 미술, 시 등 각각 20제를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Co-teaching은 간학문 통합주제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넓은 안목을 기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학생들의 사고력, 문제 해결력, 공부에 대한 흥미, 동료들과의 관계, 학교생활 만족도 등에서 많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과제연구에서 재미있는 연구들이 많았는 데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들은 것은 잊혀지지만 본 것은 기억이 되고, 경험한 것은 이해가 된다’는 것을 스스로 체득하는 과정인 것이다.

아이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꿔보자
내년에는 ‘확산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를 통해 세상을 바꾸어보자는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컨퍼런스와 같은 학급회 시간이나 이야기 대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창조적인 생각과 솜씨 발표를 통해 친구들이 자극을 받고 ‘아하! 하게 되는 순간(Aha! Moment)’을 경험하게 하고 싶다.
이제 ‘교육’하면 ‘입시’만을 떠올리는 단편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뜻 깊게 살아갈 길을 찾을 수 있는 실존적 안목과 우리 사회를 민주적이고 생산적이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시민의식, 그리고 직업역량을 배양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뮤지컬의 감독은 감(感)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고 기발한 무대를 떠올리며, 노래의 맛을 살려내는 편곡과 지휘가 그 생명이듯이 교장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모니카 불고 통기타 치면서 진부하지 않은 기발한 이야기도 하고, 쓸데없이 위대함만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학교의 맛을 살려낼 수 있는, 그리고 아이들의 눈길을 끌고 마음을 훔치면서 마침내 행동하게 하는 좋은 교육을 해보자.
촛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전구를 발명할 수는 없다. 발상의 전환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현실교육에 대한 비판과 대학입시제도 때문이라는 핑계보다는 좋은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노력하자. 독특한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도전하자. 봄날은 간다.
조갑룡 부산 경남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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