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오솔길-14> 혼란스런 사이시옷

2003.10.23 10:54:00


한글날 즈음이면 매년 연례행사처럼 우리말의 현재 모습에 대한 진단이 여러 언론을 채운다. 그리고 올해의 주요 이슈는 이른바 '외계어'라 불릴 정도로 생경하게 변해 가는 사이버 언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보다는 덜하지만 사이시옷의 여러 용례들도 우리를 자못 혼란스럽게 한다.

지난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많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일기예보를 볼 때마다 '장맛비'란 말이 자꾸 귀를 거스르게 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장마비'는 "장맛비의 잘못"이라고 나온다. 그래서 더 이상 할말이 없기는 했지만 비가 왜 '장맛'이 나야 하는 것일까 하는 엉뚱한 의문이 계속 머리 속을 감돌았다.

또 어느 신문은 '하굣길'이란 말을 썼다. 많은 사람들이 항의를 했던지 담당 기자는 인터넷을 통해 긴 해명을 했다. 다만 그의 결론은 뜻밖에 간단하며, '하교+길'은 '하교낄' 또는 '하굗낄'로 소리나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받쳐 적어야 옳다고 한다. '장마+비'를 '장맛비'로 적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장마삐'와 '하교낄'이란 발음이 올바른 것일까.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발음을 순화시켜 '장마비'와 '하교길'로 부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예전에 '촛점' '갯수' '잇점'으로 썼던 것들을 이제는 '초점' '개수' '이점'으로 쓴다. 그러나 일상적인 발음은 여전히 '초쩜' '개쑤' '이쩜'이다. 이런 것들은 도리어 예전처럼 사이시옷을 넣어서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각종 법령은 3700여 종에 이르며 가장 근본법은 헌법이다. 그런데 여기의 법령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사실상 헌법보다 더 근본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한글맞춤법'이다. 현행 맞춤법은 1988년 1월 19일에 당시 문교부의 '고시'(告示)로 공포되었다.

따라서 법률 위계상으로는 위의 법령들보다 하위이다. 그러나 한극맞춤법은 우리의 언어 생활 자체를 규율하는 성격을 띠므로 실질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근본법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이라도 이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 할 수는 없다. 실제로는 평소 맞춤법에서 멀어지기 쉽다는 점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어떤 법이든 안정성이 중요하므로 맞춤법도 자주 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하지만 어느덧 15년이 훌쩍 넘었고 더구나 급변하는 오늘날의 실정에 맞지 않는 요소가 발견된다면 굳이 옛 틀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나아가 근래 '매맷값' '전셋값' '존댓말' 등의 용어에 사이시옷을 넣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한 마디로 고유어나 고유어와 한자어의 합성어에만 적고 한자어의 경우에는 '곳간' 등 6개의 한자어에만 넣도록 한 사이시옷에 대한 규정은 일상 언어 생활에 비해 너무 미약하다. 맞춤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벌할 수는 없다. 따라서 새로 고치더라도 법령이 아닌 고시의 형태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말한 것처럼 근본법의 성격이 강하므로 세밀하고도 신중하게 다루되 너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순천대 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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