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한이 서린 지리산 왕등재늪

2007.11.01 09:00:00

국립공원 제1호이면서 남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지리산! 역사의 뒤안길마다 많은 사람들을 품었고, 자연과 문화 및 인간이 어우러져 가장 넉넉한 산으로 불린다. 이들의 어울림이 문학으로 표현되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어디 그 뿐이랴,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서 뿜어낸 지하수는 방울방울 모여 계곡물을 만들고, 이들이 모여 남강과 섬진강을 이루면서 지리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생물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고 있다. 산에서 물이 처음 시작되는 곳은 질퍽질퍽한 땅으로 이루어진 습지인데, 여러 습지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곳이 왕등재늪과 외고개늪이다.


민족의 명산 지리산

높이 1915m의 지리산은 3개도(道) 5개군(郡)에 걸쳐 있는데, 경상남도의 산청군·하동군·함양군, 전라남도의 구례군, 전라북도의 남원시에 몸을 펼치고 있다. 남도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동쪽 날개는 중봉, 하봉, 두류봉, 쑥밭재, 왕등재, 웅석봉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쪽 날개는 제석봉, 삼신봉, 촛대봉, 칠선봉, 반야봉, 노고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산은 두류산 또는 방장산으로도 불리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류산은 멀리 백두대간의 머리가 흘려왔다는 의미이고, 방장산은 신선이 사는 삼신산에서 유래되었다.

웅장한 산세와 넉넉한 자연의 품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리산 산행의 백미는 주능선 산행이다.
능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펼쳐진 산하를 보면서 25.5㎞의 주능선을 걷노라면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몰아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에는 1500m 이상의 봉우리만도 16개나 있어 더욱 운치를 더한다. 어느 코스에서 접근하더라도 주능선은 짧지만 실제 산행거리는 등정과 하산까지 합쳐 50㎞ 정도 된다. 백두대간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원시 덕두산에서 산청군 웅석봉까지의 산행을 고집한다. 전체 산행거리는 80.9㎞이고, 산행의 코스가 북에서 출발하여 남으로 왔다가 동으로 가는 모양이라 태극형 종주코스라 부른다.

지리산은 몸통의 곳곳에서 많은 물줄기를 뿜어내어 계곡마다 헤아릴 수 없는 맑고 검푸른 소와 폭포를 만들어 비경을 더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을 지리산 12동천이라 하는데, 청학동, 화개동, 덕산동, 악양동, 마천동, 백무동, 칠선동, 밤밭골, 피아골, 연곡골, 들돋골, 뱀사골 등이다. 골짜기에서 모여든 물들은 지리산 몸통을 각각 남북으로 감싸는 큰 강을 이룬다. 그 중 하나는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고, 다른 하나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이다. 남강은 함양과 산청을 적시고 내린 경호강과 천왕샘에서 출발한 덕천강이 진주 근방에서 만나 이루어진다. 섬진강은 마이산과 봉황산에서 시작되어 지리산의 서쪽을 감싸고 흐려다가 연곡천, 화개천을 만나 몸통을 불린다.

또 지리산에는 유서 깊은 사찰이 많이 남아 있어 다양한 국보와 보물 등의 문화재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사찰에는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법계사, 대원사, 내원사, 실상사, 벽송사, 영원사 등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지리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식물 800종류, 동물 400종류 이상이 있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과 이곳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울려진 이곳은 문화와 자연경관의 보고이기에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왕이 오른 고개에 자리 잡은 산지늪
지리산 12동천 중 하나인 덕산동은 천왕샘에서 출발한 물이 흐르는 중산리계곡과 대원사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 학자 남명 조식 선생은 양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는 덕산동 초입에 정자를 만들고 많은 후학들을 기르면서 이곳의 경치를 다음의 시조로 표현하였다.

지리산 양단수를 옛 듣고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도원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양단수의 하나인 대원사계곡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쓴 유홍준은 발을 담구고 여가를 즐기는 남한 제일의 탁족장소로 소개하고 있다. ‘너럭바위에 앉아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먼 하늘을 쳐다보며 인생의 긴 여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 보다 더한 행복이 있으랴’라고 하였다. 이곳은 계곡이 깊고 계곡 옆에 많은 나무들이 자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가을에는 알록달록한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다. 계곡의 절경마다 붙여진 이름은 선녀탕, 세신대, 세심대, 옥녀탕 등으로 세속에 찌든 몸과 마음을 비우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친 숨을 내쉬면서 계곡을 따라가면 대원사와 (구)가랑잎초등학교가 나타난다. 이 길을 계속 올라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조개골계곡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유평계곡이 나온다.

유평계곡은 길이가 짧고 규모가 작으나 2개의 산지늪을 품었으니 왕등재늪과 외고개늪이다. 고개를 이르는 말에는 재, 치, 령, 현 등이 있는데, 왕등재와 외고개는 삼장면 유평리에서 금서면 오봉리로 넘어가는 고개길이다.

외곡마을 끝자락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30분가량 오르면 왕등재늪이 나타난다. ‘왕이 오른 고개’라는 의미를 지닌 왕등재에 올라서면 산청과 함양 및 경호강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이곳에는 가락국 제10대 왕인 구형왕(기록에는 나라를 넘겨준 의미로 양왕)의 슬픈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신라군에 쫓긴 구형왕은 지리산의 언저리인 왕산에 들어와 왕궁을 만들고, 천혜의 요새인 왕등재에 토성을 쌓고 항전하다 끝내 왕산 아래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이야기로 왕산에는 가락국의 별궁인 태왕궁(또는 수정궁)이 있어 왕족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532년 구형왕은 신라에 대항하여 많은 백성들에게 아픔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밀양의 이궁대에서 신라의 법흥왕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이곳의 태왕궁으로 들어와 은거하다 5년 후 세상을 떠난 것으로 가락국 2000년사에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왕등재늪 주변에는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토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되어 있고, 성을 따라 성문이 적당한 간격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성문이 있던 곳에는 석축을 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외에도 왕등재 남쪽에는 깃대를 걸었다는 깃대봉, 망을 보았다는 망덕재, 말을 사육했다는 망생이골 등이 있다.

왕등재늪은 길이 200m, 폭 80m 정도로 사철 물이 있어 습지에 들어서면 발목까지 물이 차오른다. 등산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고, 늪 옆으로 목도를 설치하여 보호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대암산 용늪 다음으로 발견된 왕등재늪은 다양한 생물들을 품고 있어 보존의 값어치가 높은 곳이다.
왕등재늪에서 동쪽으로 가면 삼장면과 산청읍을 연결하는 밤머리재를 만날 수 있고, 서쪽으로 가면 외고개와 새재 및 쑥밭재를 지나 천왕봉으로 갈 수 있다. 외고개에서는 왕등재, 금서면 오봉리, 새재, 유평의 외목마을 등으로 갈 수 있다.

유평의 외목마을로 가는 길로 접어들어 산비탈을 내려가면 잣나무 식재림을 만나게 된다. 가을에 이곳을 오게 되면 갑자기 은빛의 물결이 눈앞으로 다가오는데, 이곳이 외고개늪이다. 등산로가 늪의 중간을 가로질러 있어 은빛의 물결 속을 걸어가는 기분은 가보지 않은 사람을 알지 못하리라. 외고개늪은 해발 약 800m의 계곡 사면에 형성되어 있는데, 주변 능선의 경사면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모이면서 넓게 만들어졌고 대부분이 갈대 군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습지의 대부분은 갈대군락으로 되어 있어 저층습원으로 보이나 지형이나 지하수위로 볼 때는 중층습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계절별로 다양한 들풀 자생해
산이 높으면 구름이 쉬고 가는 날이 많은 법이다. 산할아버지가 구름 모자를 쓰듯이 많은 날들이 구름과 안개로 뒤덮인 왕등재와 외고개늪! 왕등재늪은 봄이면 안개 속에 동의나물, 참꽃마리, 산비늘사초, 자란초 등을 싹 틔우고, 여름이면 감자개발나물, 범꼬리, 세모부추, 방울새란, 닭의난초, 잠자리난초, 창포가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온갖 식물들이 알록달록한 단풍옷을 입는 가을이면 숫잔대가 보라색 꽃을 나홀로 자랑한다.

왕등재늪 주변은 신갈나무 군락으로 덮여 있고, 산림과 늪 주변에는 고사리를 비롯한 산나물도 많이 자라고 있다. 특히 늪 주변에는 1m 정도 자라는 꿩고비가 무리지어 있는데, 안개 속에서 만나는 꿩고비 군락은 이곳이 열대우림의 한 부분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꿩고비의 포자엽은 영양엽보다 작고 2회 깃꼴로 갈라지며 붉은빛이 도는 갈색의 포자낭이 입체적으로 달린다. 어린 싹을 나물로 먹고, 한방에서는 뿌리줄기를 약재로 사용한다. 그 외에도 주변 산림에는 고추나무, 노각나무, 단풍나무, 때죽나무, 병꽃나무, 층꽃나무, 큰꽃으아리, 족두리풀, 쥐오줌풀, 활량나물, 톱풀, 층층잔대 등이 자라고 있다. 다양한 식물이 어우러져 자라는 이곳에는 여러 곤충들과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꼬마잠자리와 도롱뇽이 있다.

외고개늪의 습지에는 갈대군락이 넓게 분포하고, 작은 개울이 거미줄처럼 펴져 있어 물이 많은 곳이다. 물길이 흐르는 곳에는 진퍼리새, 삿갓사초, 골풀이 작은 군락을 이루고, 사이사이에 큰방울새란, 닭의난초, 흰제비란, 꽃창포, 노루오줌, 하늘나리, 동의나물, 곰취, 도깨비사초, 왕비늘사초, 솜방망이가 자라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외고개늪 주변에는 뻐국나리, 엉겅퀴, 억새, 털중나리, 꿀풀, 흰꿀풀, 조팝나무가 자라고 있다. 동물로는 꼬마잠자리를 비롯한 여러 곤충들과 척추동물인 무당개구리, 아무르산개구리, 살모사, 까치살모사가 발견되었고, 노루와 멧돼지도 살고 있다.

가락국의 슬픈 역사 간직한 계곡
왕등재와 외고개늪이 위치한 대원사계곡은 민족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으로 원래의 이름은 유평계곡이다. 아직도 이 지역의 사람들은 “덕산 유독골”이라 부른다. 유독골 하면 아주 깊고 험한 골짜기를 의미하고,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지역 노인들은 “유독골로 보낸다”는 말을 자주 쓴다. 유독골은 민족동란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빨치산이든 이들을 토벌한 군인이든 살아 나오기 힘든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 가장 무서운 말이 ‘덕산 유독골로 보낸다’였다. 이것이 세상에 알려져 지금도 사람들은 ‘골로 갔다, 골로 보낸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죽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대원사골은 골이 깊어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삶의 피난처이자 안식처였다. 1862년 이곳의 인근인 단성면에서 시작된 농민항쟁이 동학혁명으로 이어질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면서 모여든 곳도 지리산이요, 한국동란에서 사상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품어준 곳도 지리산이기에 이곳은 갈등과 융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역사의 한 장소이다. 이루지 못한 꿈을 역사에서 찾고, 그 의미를 부여한 왕등재늪이 대원사골에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에 대원사골은 도피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땅인 것이다.

왕등재늪과 관련이 높은 구형왕릉은 늪의 북쪽 사면인 금서면의 왕산 근처에 있다. 역사적으로 밝혀지지 못하여 전구형왕릉으로 지칭되는 왕릉은 국가지정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잡석으로 방형의 단을 만들었는데, 피라밋 모양으로 모두 7단으로 이루어진 돌무덤으로 특이하게 4단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감실이 마련되어 있다. 왕산 주변의 가락국의 유적에는 구형왕릉 외에 덕양전과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의 유허비, 수정궁, 왕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할아버지인 구형왕의 무덤을 지키면서 무술을 연마한 곳 등이 있다.


대원사골이란 이름이 있게 한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곳으로 1955년 법일 스님에 의해 비구니선원으로 중창되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참선도량이면서 보물 제1112호인 대원사 다층석탑을 가지고 있다.

며느리밥풀꽃이나 동자꽃은 원망과 슬픔을 품고 있기에 꽃 색깔이 대체로 붉다. 그처럼 대원사골에 진하게 맺힌 아픔들은 가을이면 붉은 단풍으로 태어난다. 그것에 더하여 유평계곡에는 맛있는 사과로 알려진 유평사과가 가을이면 붉은색으로 익어간다.

억만 겁의 세월 속에서도 지리산은 영원한 우리의 영산이다. 넓고 높아서 영산이 아니라 사람과 여러 생물들에게 큰 도움을 주기에 영산인 것이다. 오늘도 왕등재와 외고개늪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수는 계곡과 하천을 적시며 생물들에게 생명수를 주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행복을 주고 있다.
김철수 경남 거제옥포고 교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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