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배꼽에 위치한 람사습지 _ 용늪

2007.08.01 09:00:00

휴전선 이남에서 산지늪으로는 처음으로 발견된 대암산 용늪! 우리나라 최초로 람사협약에 따른 람사습지로 등재된 용늪은 오래전부터 늪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용이 승천하다가 잠시 몸을 쉬어 갔다는 용늪은 하늘 가까이에 위치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한다. 처음, 최초라는 말은 대단한 의미를 품고 있지만, 그 자체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용늪은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쉽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손 뻗으면 가까이 있는 용늪이지만, 아무나 그 곳에 갈 수는 없다. 이번 호에는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우리나라 람사습지 제1호 용늪을 만나러 가 보자.



안개 속에 숨은 신비한 고층습원

대암산은 해발 1304m의 높은 산으로 강원도 양구군과 인제군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큰 바위산인 대암산은 산자락에서부터 정상까지 바위들로 이루어진 험한 산이다. 큰 바위가 품었던 지하수가 솟아나 넘쳐흘러 정상의 남서쪽 사면인 1180m의 구릉지대에 만든 것이 용늪이다. 높은 두 봉우리 사이에 여인의 가슴처럼 약 9200평 크기의 넓은 풀밭이 있는데, 이곳이 고층습원인 용늪이다. 용늪을 적시고 내린 산성의 젖줄은 인북천을 이룬 다음 소양강에 몸을 합친다.

일 년의 절반이 안개에 쌓인 용늪은 그 자체가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이곳은 연중 온도차가 크고 안개일수가 많아 습도가 높고 표층수의 증발량이 낮아 자연스럽게 늪이 형성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예전부터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신령스런 곳으로 취급을 받아온 이곳은 가뭄이 들면 ‘용연기우제’를 하늘에 드렸다. 양구 지방 민요인 돌산령 타령에 따르면 용늪은 이곳 사람들의 삶의 장소였다. ‘문바위 용늪에 얼레지 돋거든 우리 나 삼동서 나물 가세….’ 대암산을 문바위로 표현하고, 용늪 주변에는 얼레지 같은 산나물이 많이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대암산에는 많은 산나물들이 나고 있지만, 군사보호지역이라 일반 사람들의 접근은 어렵다.

용늪은 희귀식물이 많이 자라고, 늪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곳이다. 그래서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용늪은 금단의 땅이면서 동시에 꼭 가보아야 하는 희망의 땅이다.

비무장지대 학술조사 통해 알려져
근래에 많은 산지늪이 발견되기 전까지 용늪은 휴전선 아래쪽에 위치한 유일한 고층습원이었다. 고층습원은 물이끼와 사초류의 번성으로 지하수위가 평지보다 높아진 상태를 말한다.

일본의 야마사키 박사는 우리나라는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 고층습원이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했지만, 1966년 한국자연보존연구회와 미국의 스미소니언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비무장지대 학술조사에서 용늪이 세상에 알려졌다. 함경북도의 대택, 백두산의 장지와 오십리지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발견된 용늪은 발견 그 자체로 큰 흥분을 일으켰다.

이끼의 사체가 쌓여 만들어진 이탄층의 높이는 1~1.8m로 나타났고, 이를 토대로 추정된 나이는 약 5천 살이다. 또 이탄층에는 이곳에 살았던 식물의 꽃가루가 차곡차곡 쌓여 있어 이를 추출하여 분석하면 수천 년 동안의 기후변화와 식물의 천이과정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고층습원을 특별히 ‘자연의 고문서’, ‘타임캡슐’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화분을 추출하여 분석한 결과 이탄층의 밑바닥에는 포자, 그 보다 1천년이 더 쌓인 지층에서는 신갈나무의 꽃가루 그리고 2천년이 지난 지층의 윗부분에서는 소나무 화분이 조사되었다.

용늪을 품고 있는 대암산은 식물구계 상 아주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만주 구계, 우수리 구계, 중국 구계의 북방 식물들이 남하하다가 남방계 식물과 만나는 곳이 대암산이다. 즉, 이곳에서는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남측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고층습원인 용늪은 그 희소성과 그 곳에 살고 있는 여러 희귀 곤충과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천연기념물 제246호(1973년)와 자연생태계보호구역(1989년)으로 지정됐다. 또 우리나라가 람사협약에 가입하면서 용늪은 우리나라 제1호 람사습지이자 습지보호지역(1999년 지정)으로 보호받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도솔산을 기점으로 대우산과 대암산을 엮어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처럼 대암산 용늪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다. 꾸미는 말이 많다는 것은 용늪의 값어치가 높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 소중한 용늪이 사람들의 무지에 의해 몸살을 앓고 있다. 늪의 한쪽 자락에 작전도로가 지나가면서 많은 토사가 흘러 늪이 육상화 되고, 1970년대에 체력단련을 위해 스케이트장을 만들면서 용늪의 일부가 갈라졌다. 또 곳곳에 파 놓은 배수구를 통해 늪의 수분이 빠르게 유출되면서 급격히 파괴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때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지만, 만들어진 생채기는 아직도 둑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그 둑에는 탐방로가 설치되어 있다.

남과 북의 식물이 공존하는 산림
9부 능선에서 시작되는 용늪의 상부는 작전도로와 인접하고 있고, 그 외의 지역은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림을 이루는 나무 중 대부분은 신갈나무와 철쭉으로 되어 있고, 그 외에 개회나무, 백당나무, 함박꽃나무, 갈매나무, 병꽃나무, 미역줄나무, 딱총나무, 물푸레나무, 사스레나무, 고로쇠나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늪에는 쥐오줌풀, 처녀치마, 박새, 세잎종덩굴, 곰취, 좁쌀풀, 산오이풀, 개시호, 갈미사초, 대택사초, 물레나물, 터리풀, 물매화, 동의나물, 비로용담, 네 갈래로 벌어진 꽃 모양이 고깃배의 닻을 닮은 닻꽃, 끈끈이주걱, 금강초롱꽃, 제비동자꽃, 기생꽃이 자라고 있다. 수로와 물웅덩이 주변에는 물이끼, 갈미사초, 대택사초, 쇠털골이 자라고 있으며, 물웅덩이에는 조름나물, 개통발이 나타난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용늪에는 순수한 습원식물 22종류를 비롯하여 112종류의 식물이 있는데 여러 종류의 사초류와 물 주변에서 나타나는 왕미꾸리꽝이, 골풀, 달뿌리풀도 살고 있다.

이 중 숲속에서 자라는 함박꽃나무는 옥란 또는 천녀화로 불리는 북측의 국화이다. 6월에 피는 꽃잎은 6~9개이며 수술은 붉은빛이 돌고 꽃밥은 밝은 홍색이다.

용담과에 속하는 비로용담은 용의 쓸개인 것처럼 뿌리가 아주 쓴 맛을 낸다. 꽃은 여름에 가지 끝에 하나씩 달리는데, 벽자색으로 북측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

금강초롱은 한국특산종으로 8∼9월에 자주색 꽃이 피는데 종 모양이고, 줄기 위에 1∼2개가 붙거나 또는 짧은 가지 끝에 달린다. 백색 꽃이 피는 것을 특히 흰금강초롱이라고 한다.


북통발은 일명 개통발이라고 하는데 일반 통발과는 달리 먹이를 잡기 위해 벌레잡이 통을 매단 줄기를 땅속으로 길게 뻗는다. 지금까지 북통발은 대암산 용늪과 칠보산 습지에서만 기록된 매우 희귀한 식물이다.

용늪에는 앞의 여러 종류의 식물뿐만 아니라 복숭아순나방 등 224종류의 곤충이 서식하고,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새들도 많다.

군사시설로 제 기능 잃은 작은용늪
용늪을 오르는 길은 3갈래로 모두 해당기관(양구군청)의 허락을 받아야 출입할 수 있다. 하나는 돌산령 고갯길에서 군 작전도로를 따라 가고, 다른 하나는 광치고갯길에서 등산로와 임도를 따라 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양구생태식물원에서 등산로를 따라 가는 길이다.

용늪은 자연보호지역과 군사보호지역 안에 위치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그래서 용늪과 대암산 정상으로 갈라지는 부분에 출입금지 안내판과 초소가 설치되어 있다. 초소에서 용늪으로 내려가는 길은 목재로 이루어진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이 탐방로는 용늪의 중심부까지 연결되어 있다.

용늪은 큰용늪과 작은용늪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큰용늪보다 위쪽에 위치한 작은용늪은 막사에서 흘려 내려온 토사에 의해 제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큰용늪은 폭 225m, 길이 297m의 달걀 모양이며, 늪 가운데는 폭 8m의 연못이 2개 있다. 이 연못은 매우 찬 산성의 물로 이루어져 있어 물고기는 살지 않지만,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물벼룩과 장구말이 살고, 이를 먹이로 살아가는 도룡뇽과 물두꺼비 및 개구리 등이 살고 있다.

비 내리는 9월 어느 날에 만난 용늪은 비안개에 쌓여 한치 앞도 내다 볼 수가 없었다. 일 년 중 절반이 안개로 쌓인다는 이곳에 비바람까지 불어대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도 힘이 들었다. 다행히도 탐방로 주변에 물매화와 솔체꽃이 색깔의 대조를 이루면서 손짓을 하니, 금단의 땅 용늪에 오른 것 자체로 만족스러웠다. 전체 배경을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용늪으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 주위에서 진범, 눈개승마, 닻꽃, 만주송이풀을 만날 수 있었다. 작전도로를 되돌아 내려오면서 만난 길 주위를 환하게 비추는 금강초롱과 흰금강초롱은 그 자체가 등불이었다.

용늪은 일반인의 출입 통제 지역이라 이곳의 식물을 옮겨 심어 가꾼 곳이 바로 양구생태식물원이다. 양구군 동면 원당리에 위치한 식물원은 2004년에 개장했으며 400여종의 고산 식물들이 있다. 이곳의 학습장은 온실, 암석원, 수생습지식물원, 음지식물원, 약초원, 잣나무림, 천연보존림, 자생식물원, 야외학습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는 대암산과 용늪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심어 두었을 뿐 아니라, 지리산과 금강산의 고산지역에서 자라는 칼잎용담, 개느삼, 깽깽이풀, 산꼬리풀, 둥근잎꿩의비름, 제비동자꽃, 금마타리, 하늘매발톱, 좁은잎구절초, 솔체꽃, 병조희풀, 솜다리, 노랑무늬붓꽃 등도 만날 수 있다. 대암산의 남서쪽 계곡에 위치한 이곳은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 자연친화적 식물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한반도 정중앙에서 용이 승천하다
끈적끈적한 용늪은 생물체뿐만 아니라 사람이 만든 피조물까지도 빨아들이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피의 능선으로 불리는 도솔산 전투를 살피던 미군 헬기가 포연 속에 훤하게 보이는 초록의 들판을 잔디밭으로 생각하고 헬기를 내리게 된다. 용늪에 내린 헬기는 늪에 빠지게 되고, 결국 탑승자들이 걸어서 산을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처럼 늪은 한 번 빠지면 헤쳐 나오기 힘든 곳이다.

용늪의 북동쪽 지역에는 움푹 파인 모습을 하고 있는 양구군 해안면이 있다. 일명 해안분지로 불리는 이곳은 23㎢ 넓이의 분지 전체가 해안면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운석이 떨어져 분지가 만들어졌다는 설과 차별침식작용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지만, 근래에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 모양이 사발 모양이라 한국전쟁 중에는 ‘펀치볼’이라는 애명을 얻기도 하였다.

해안(亥安)이란 돼지가 마을을 편안하게 했다는 뜻을 지니는데, 움푹 파여 습한 곳이라 예전에는 뱀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한 도사가 집집마다 돼지를 키우라고 하여 길렀더니 뱀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이름도 해안이 되었다고 한다.

해안면으로 가는 길은 인제·원통을 거쳐 가는 길과 양구읍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돌산령을 넘어 갈 수 있다. 돌산령에서 만나는 아침의 해안분지는 구름이 가득 찬 그릇의 모습이라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비온 후 날씨가 맑아질 때, 분지를 이루는 산봉우리에만 구름이 걸리고, 분지에는 햇빛이 내려쬐는 모습을 보여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처럼 대암산과 도솔산 및 대우산에 쌓인 해안분지는 풍광이 아름답고, 다양한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새끼를 낳는 생물들의 모태는 배꼽이다. 배꼽은 생명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인데, 한반도의 배꼽이 바로 용늪이 위치하는 양구군이다.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번지는 동경 128도, 북위 38도로 한반도 정중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독도와 마라도를 포함하면 나라의 중심은 양구이고, 육지 자체만 따지면 경기도 포천이 중앙이 된다.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양구에 용이 승천한 용늪이 있다는 것은 우연히 아닐 것이다. 남과 북의 식물이 만나는 대암산 용늪, 국토의 정중앙에서 서로가 합쳐 하나가 되라는 메시지를 승천하는 용이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용늪은 금단의 땅이면서도 동시에 희망의 땅인 것이다.
김철수 경남 거제옥포고 교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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