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오솔길-10>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2003.09.18 09:41:00


격언은 인간 사회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지혜를 압축된 표현에 담아서 일깨워준다. 이에 따라 여러 문화는 고유의 특성을 드러내는 수많은 격언을 갖고 있다. 속담·금언·잠언·경구 등도 기본적으로는 대략 비슷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격언을 들자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 사람에 따라 관점이 다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객관적인 답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교육 현장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때 최고의 격언은 아무래도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아닐까 싶다.

이는 암기 및 문제풀이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하는 데에서는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여러 지식들이 별 이유 없이 제시되기 쉬우며, 이로 인한 궁금증은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창 시절에 이런 저런 공부를 하면서 "도대체 이것들은 어디에 써먹나"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현실 세계와 직접 맞닿지 않고 추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수학의 경우에 아주 두드러진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이른바 자연수는 1, 2, 3 …을 가리키며 0이 빠진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책들은 아무 설명 없이 그저 자연수는 0이 아니라 1부터 시작한다고만 기술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여기에는 참으로 중대한 의의가 숨어 있다. 모든 사람들을 그토록 애먹이는 수학, 그리고 그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을 이루는 자연수에 0이 빠져 있다는 사실은 맨 처음 인간이 '수'란 것을 떠올릴 때 0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자연수는 무엇인가를 '세기(헤아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이처럼 자연수는 "뭔가를 센다"는 매우 '자연스런 필요성'에서 출발했으며, 그래서 '자연수'라고 불린 것이다.

이런 필요성은 아득한 원시 시대부터 있었을 것이 분명하고 당연히 자연수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0은 놀랍게도 기원 후 6세기경에 비로소 그 필요성을 인정받는다. 그럼 음수는 어땠을까. 언뜻 0이 인정된 이상 음수도 수 체계에 곧 포섭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18세기가 되어서야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밖에 무리수와 허수도 갖은 우여곡절 끝에 그 필요성이 절실히 인정된 후에야 수용되었으며, 이와 같은 수의 역사는 이를테면 '수의 투쟁사'라고 할 정도로 치열한 배경을 갖고 있다.

다른 예도 많지만 가장 극적인 예는 배움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필요성을 깊이 깨달으려면 많은 배움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깨달음과 배움은 서로가 서로를 이끄는 관계에 있다. 그리고 배움이 높아짐에 따라 주위의 도움보다 각자의 개인적 노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결국 가르치는 사람은 물론 배우는 사람들 자신도 이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어느 단계에 오르면 스스로의 깨달음을 토대로 보다 깊은 필요성을 꾸준히 재발견해가야 한다.
고중숙 순천대 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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