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개발원이 오는 30일 개원 30주년을 맞는다. 1972년 교육과정 연구·개발기관으로 태동한 개발원은 국책연구기관으로서, 교육과정평가원·직업능력개발원·한국교육방송공사를 잉태시킨 산실로서 한국교육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제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사명'으로 재도약을 준비중인 이종재 원장을 만났다.
-개발원 태동기인 74∼80년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시다 기관장으로 다시 돌아오신 만큼 감회가 남다르시리라 봅니다. 이제 서른 살을 맞은 개발원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설립초기 개발원은 초중학교 수업 개선을 위해 '새로운 교수-학습체제'를 연구개발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개발원은 교육발전을 주도하는 주요 연구개발 사업과 교육정책 문제에 대한 분석과 정책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교육발전을 주도하는 국가연구기관으로 그 위치를 세웠습니다.
최근에는 개발원의 임무가 광범위해져 직능원, 평가원, 학술정보원 등이 떨어져 나가 각각 전문화된 영역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의 개발원은 다시 교육정책 전문연구기관으로서 중심을 잡고 정부의 교육정책 개발과 한국교육의 수준과 실상을 점검하는 일을 새로운 사명으로 정립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고 봅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화두를 늘 염두에 두신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발원은 평가원, 직능원, 교육방송이 떨어져 나가면서 정책연구와 각종 사업 등의 비중이 대등해져 중심 축을 잃은 듯한 인상입니다. 이와 관련 30주년 기념식에서는 향후 개발원이 만들어가야 할 길과 정체성을
담은 '사명선언문(Mission statement)'이 발표되는 것으로 압니다만.
"30주년 행사에서는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의식을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을 정리할 생각입니다. 국가차원의 교육정책전문연구기관으로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내외의 뜻을 모아 기관의 사명을 점검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명선언문은 한국교육개발원은 한국교육의 수준과 실상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교육문제와 교육정책과제를 깊이 분석해 한국교육의 발전 방향과 전략을 탐색하는 핵심적인 정책과제를 수행하는데 전념해야 한다는 합일된 의지가 담겨질 것입니다."
-개발원이 총리 직속 인문사회연구회 산하 연구기관이 됐지만 여전히 교육부와 관계 부처의 입김 하에 있다는 인상입니다. 교육계의 최고 두뇌집단이 제목소리를 내는 것은 교육발전을 위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목소리를 내야한다면 그 근거는 네 가지라고 봅니다. 첫 번째는 한국의 발전을 지향하는 교육 지향성, 즉 일반 국민이 동의하는 교육원칙이고, 두 번째는 공론이나 이념이 아닌 문제를 점검 분석 평가해 합당한 근거에 입각해 검토한다는 실사구시의 원칙, 그리고 교육 현장에의 적합성이라는 조건, 마지막으로 전문적 자율성에 대한 존중이 그것입니다.
한국교육을 논의할 때 때로는 정부의 방침과 안 맞거나 정부의 노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이 때 개발원은 교육원칙, 실사구시, 자율적인 전문성과 현장 적합성이라는 근거에 부합된다면 당연히 연구결과를 공개하고 할 말은 할 것입니다. 가령 정부가 평준화를 깨는 건 어렵다 해도 네 가지 조건에 합당한 결과라면 평준화를 깨자는 얘기를 하겠다는 겁니다. 네 가지 원칙에 부합하는 연구결과는 당연히 공개돼야 합니다."
-이와 관련 개발원은 직능원, 평가원, 학술정보원과 네트워크를 구성해 교육관련 이슈가 발생하면 공동 의견과 대안을 제시해 나갈 계획인 것으로 압니다만.
"교육부, 4개 연구기관, 시도교육청, 시도교육연구원 등이 이미 네트워크를 구성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중요한 교육과제를 같이 풀어나가는데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할 계획입니다. 특히 4개 연구기관은 나름대로 발전적 분화를 했다고 보는데 이제 분화된 채 각각 있기보다는 전문적 기능을 서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 매우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그래서 현재 구체적인 일을 계획중인데 예를 들면 '교수학습지원센터'를 만드는 문제가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 사업은 평가원이 전담기구지만 공동연구나 세미나, 조사분담, 4개 기관 협동연구 등이 진행될 계획입니다. 교육부, 학교현장,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네크워크를 얻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30년의 발자취만큼 원장님이 만들어 가실 3년의 역사도 중요할 것입니다. 얼마 전 인문사회연구회에 3년 경영목표를 제출한 것으로 압니다. 어떤 비전들을 담으셨는지요.
"국가차원의 교육정책연구기관으로서 중핵적인 연구과제를 설정해 지속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경영목표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본연구 과제가 굉장히 의미 있는 연구주제를 다루게 될 것이고 수탁과제는 기본과제와 연관성이 높은 것을 선별적으로 수행하는 등 지금보다는 비중이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조직은 연구 영역을 전담할 수 있는 체제라기보다는 과제 중심의 조직이어서 개편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문화연구실, 교원정책연구실, 학생연구실, 교육과정정책연구실, 고등교육정책연구실 등 연구 영역별로 조직을 갖추고 대표성을 부여해 그 영역의 연구를 전담하도록 지원할 생각입니다. 학생연구실에서는 중도탈락자, 학내폭력, 부적응 문제 등 학생과 관련된 문제를 전담연구하는 형식입니다. 현재 조직발전위원회가 조직개편에 대한 연구가 진행중인데 금년 말에 조직을 개편할 계획입니다."
-낮은 보수와 연구원들의 잦은 이직은 개인적인 문제를 떠나 개발원은 물론 한국교육의 미래를 저해하는 걸림돌입니다. 그래서 원내 교육전문대학원 설립, 처우 개선 등에 대한 지적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고도의 전문가 그룹이라 유동성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개발원을 거쳐간 400명의 동문들은 위치만 바꾸었을 뿐 각계에서 활약 중입니다. 그러나 직무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려는 기관차원의 노력은 게을리 하지 않을 겁니다.
보수 개선이나 전문대학원 설립 문제는 내 개인적인 과제로 안고 실현을 위해 노력중이며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율적인 연구를 통한 성취감과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 연구풍토를 좀더 개방되고 활력 있게 하는데 심부름 할 게 없는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30년 후 한국교육개발원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러기 위해 지금 개발원은 어떤 씨앗을 뿌려야 할까요.
"앞으로의 30년을 보기보다는 지난 30년의 역사 속에 서 있다는 자체가 엄청난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30년의 역사를 지니고 온 기업이 생각보다 드물지 않습니까. 사회가 변함에 따라 개발원의 역할도 끊임없이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정책연구기관으로서의 재도약을 준비하고 추구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