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장맛을 찾아

2001.09.10 00:00:00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은 항상 조용하다. 아니, 언제부터인가 조용하게 되었다. 예전에야 몇 백 명 아이들의 함성이 가득했던 운동장이건만, 이제는 점심시간임에도 운동장은 아이들에게 너무 넓은 공간이 돼버렸다.

오늘날의 농어촌 면소재지 초등학교가 모두 그렇다고 하지만, 오늘 따라 창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이 유난히 허전해 보인다. 생활의 편리함을 찾아 모두들 도시로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 농어촌을 만들어 놓고, 이제는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편리를 찾아 떠날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러나 어디 생활뿐이겠는가! 즐기는 것도 먹는 것도 오늘날에는 모두 편리를 찾는다. 아이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 또한 그런 것들뿐이다. 어머니의 소중한 마음이 듬뿍 담겨 있는 손끝에서 만들어진 먹을 것도 찾아보기 힘들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이 아이들에게 참 맛을 알려줄 수는 없을까? 이미 유전자 콩에 대한 염려는 예고된 지 오래다. 뿐만 아니라 농약 속에서 콩나물을 길러 파는 상혼(商魂)을 고발하고, 불량식품 근처를 맴도는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불량식품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문득 텅 비어 있는 운동장만큼이나 갑자기 마음의 황량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생각의 와중에서 생각해낸 것은 학교 둘레의 빈 공간에 콩을 심는 일이었다. 그렇다. 학교의 빈 공간을 찾아 나섰다. 학교 둘레를 살펴보고, 울타리 밑을 다독여보고 나니 텅 빈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공간이 생겨났다. 그 공간에 선생님들과 어린이들이 한데 어울려 웃음과 함께 콩을 심었다.

그러고 나니 황량한 운동장이 아니라 무엇인가 가득해버린 학교 둘레의 빈 공간에서 푸르름이 다가오는 듯했다. 콩 수확이 끝나고 어린이들과 같이 메주를 만들어보고, 그 메주로 하여금 공작실에 가득 향기를 머금게 했고, 다시 어린이들과 장을 담가 그 장맛을 보고 있는 요즈음이다. 생각만 해도 흐뭇한 일이다. 지나간 일들이 전광석화처럼 나타났다 물러난다.

아차! 어서 급식실로 가야지. 지금 내 마음은 몹시 들떠있다. 잠시 후 아이들과 함께 만든 된장 향기에 취해 점심 식탁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만자 화양초등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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