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어머니는 1학년

2006.03.23 17:31:00

봄이라는 계절을 제대로 느낄 겨를도 없이 바쁜 나날이다.

25년 교직 경력에 1학년 담임을 맡은 것이 겨우 두 번째다. 그것도 17년 만에 하는 것이니 무척이나 낯설고 생소하기까지 하다. 대화가 통하고 학습 내용도 재미있어서 주로 고학년만 지도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올해는 내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볼 생각으로 마음먹고 1학년을 지원했다. 정말 티 없이 맑고 순수한 1학년 꼬마들, 복잡한 세상사를 모두 잊게 만드는 천진난만한 모습들이다.

3월 교재인 ‘우리들은 1학년’을 연구하기 위해서 매일 동학년 교사들이 머리를 맞댄다. 노래, 율동, 학습자료 제작, 환경 구성 등 할 일이 끝도 없다. 미처 못다한 것은 퇴근길에 가져가기도 하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대로 가져오는 날도 꽤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올해로 84살이 되신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 근처에 살고 계시는데, 성당 노인 대학 과제인 ‘그림으로 엮은 성서이야기’를 색칠하시는 걸 본 기억이 났던 것이다.
“옳지!”

그 날부터 나와 친정어머니의 본격적인 예습이 시작되었다. 며칠 전에는 ‘돌이와 꽃님이’라는 이야기를 읽어 드리고, 거기에 나오는 색깔대로 돌이의 한복을 칠하라고 말씀드렸다. 저고리는 노란색, 옷고름은 초록색, 바지는 연두색…. 어머니는 순서대로 잘 하셨다.

그런데 마무리한 것을 보니 설명에 없었던 깃의 색을 초록색으로 해놓으셨다.
“어머니, 깃을 칠하라는 말은 없었는데요?”
“한복을 지을 때 원래 깃은 옷고름과 같은 색으로 많이 한단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마주보며 한참을 웃었다. 이번에는 어머니에게 한 수 배웠다. 친정어머니는 막내딸을 위해서 아주 훌륭한 1학년이 되어 주신 것이다.
정현주 서울 연가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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