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_ 사막으로 떠난 지리 교사
올해 1월, 두바이쫀득쿠키를 사려고 오픈런을 하던 시기에 두바이와 아부다비에 가게 되었다. 지리를 가르치는 나에게 아라비아반도는 건조 기후 지역이자, 기술로 자연환경의 제약을 극복해 온 지역이며, 에너지 자원의 중심지로 교과서에서는 익숙하지만 실제 모습은 늘 궁금했던 곳이었다. 아랍에미리트의 1월은 반소매에 얇은 긴팔 외투를 걸치면 적당할 만큼 여행하기 좋은 시기였다. 역시 아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달랐다. ‘아, 이래서 그랬구나!’ 싶은 것도 있었고, ‘이렇게까지?’ 싶은 것도 있었다. 사막 위에 만들어진 이 나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모래 위에 세운 도시
두바이는 건설에 진심이다. 화려하고 독특한 건물이 즐비한 한편 개발 중인 지역도 엄청나게 많다. 아니, 도시 전체가 건설 중인 느낌이었달까? 숙소비가 저렴한 곳을 찾아 예약했더니 개발 중인 신도시였는데, 주변 공사 부지가 온통 모래였다. ‘아, 여기 사막이었지!’
지금은 초고층 건물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두바이는 작은 해안 정착지에서 출발했다. 주민들은 어업과 진주 채취에 종사했고, 두바이 크리크(바닷물 수로)를 중심으로 해상무역도 이루어졌다. 이후 석유로 벌어들인 자금을 항만·공항·도로 등에 투자했고, 아부다비에 비해 석유 자원이 많지 않았던 두바이는 무역·관광·항공·금융 등으로 일찍부터 눈을 돌렸다. 유럽과 아시아·아프리카를 잇는 위치를 활용해 세계적인 관광·비즈니스 중심지로 성장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화려한 도시의 건설에는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사막에 모래가 이렇게 많은데 정작 건축용 모래는 수입하는 경우도 있다. 바람에 깎인 사막 모래는 입자가 둥글고 매끈해 콘크리트용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바이는 평범하게 건물을 지을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 할리파부터 가운데가 뻥 뚫린 액자 모양의 두바이 프레임, 아랍어 글자가 새겨진 미래박물관까지 ‘누가 건물을 이런 모양으로 지을 생각을 했을까?’ 싶은 건물들이 곳곳에 있다. 부르즈 할리파 건설에는 우리나라의 삼성물산도 참여했다. 해외에서,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만드는 데 우리나라 기업이 참여했다니 괜히 반가웠다. 구도심과 신도심 사이에 위치한 전망대인 두바이 프레임을 보면서는 한국인으로서 용적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물 한가운데를 저렇게 통째로 비워 놓다니! ‘지갑에 아주 많은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건축인가?’ 싶었다.

이곳에서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채우는 것보다 ‘두바이에 가면 꼭 봐야 하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두바이는 건설보다 도시 브랜딩에 더 진심인 도시인지도 모르겠다. 건설의 무대는 바다로도 이어진다.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팜 주메이라가 대표적이다.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지만, 누가 간척지를 야자수 모양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여러 개의 가지를 뻗어 해안선을 늘리면서 훨씬 많은 주택이 바다를 바로 앞에 둘 수 있게 했다. 땅을 넓히기 위한 간척이라기보다 바닷가를 늘리기 위한 간척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저 야자수 이파리 끝에 사는 사람은 안 불편한가?’ 싶었다. 교통과 접근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 눈에는 꽤 비효율적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집 앞의 바다와 사생활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없는 게 없는’ 두바이를 벗어나 이번에는 진짜 사막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달리자 고층 건물 대신 끝없는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사막에 들어가기 전 투어 차량은 타이어의 공기압을 낮춰 모래와 닿는 면적을 넓혀 모래에 빠지지 않게 대비했다(넓고 폭신한 낙타의 발바닥도 모래에 쉽게 빠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니 원리는 비슷하다). 그렇게 신나는 음악을 틀고 모래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막투어(듄배싱)가 시작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막에서 자유 시간을 보내던 중 유목 낙타들이 다가온 순간이다. 관광객을 태우려고 기다리던 낙타가 아니라 실제 사막을 이동하는 낙타였다. 아라비아 사막을 직접 밟은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유목하는 낙타까지 보다니! 학생들에게 건조 기후의 전형적인 경관으로 사막과 낙타를 얼마나 많이 보여줬던가. 교과서와 다큐멘터리에서 수없이 보던 풍경 속에 내가 직접 서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고운 모래언덕 사이로 낙타가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은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아라비아 사막’ 그대로였다.
사막의 일상은 조금 다릅니다
두바이 분수쇼를 보기 위해 저녁에 두바이몰을 두 번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내가 방문한 1월은 비교적 선선했지만, 한여름에는 낮 기온이 40℃를 넘나드는 두바이에서 거대한 쇼핑몰은 더위를 피해 여가를 즐기는 중요한 실내 공간이 된다. 두바이에서 거대한 쇼핑몰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두바이몰에는 수족관과 아이스링크가 있고, 몰 오브 디 에미리트에는 심지어 실내 스키장도 있다.
바깥은 사막인데 건물 안에서는 두꺼운 옷을 입고 스키를 탄다. 아예 실내에 겨울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두바이몰 앞의 거대한 분수를 보면서는 문득 ‘잠깐, 여기는 사막인데 이 많은 물은 어디서 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수량이 적고 안정적인 담수원이 부족한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바닷물을 담수화해 생활용수를 확보한다. 물이 중요한 자원인 두바이에서 분수쇼를 위한 물은 주변 상가들이 사용하는 에어컨의 냉각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나는 해외에 가면 유명 관광지만큼이나 마트 구경을 좋아한다. 식재료와 진열대에서 현지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발견한 낙타 우유가 신기해서 사봤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내 입맛에는 정말 안 맞았다. 평소 소의 젖으로 만든 우유와 유제품에 익숙해서인지 특유의 맛과 향이 꽤 낯설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Non-Muslim’이라고 적힌 별도의 공간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바로 스팸! 스팸을 비롯해 돼지고기가 들어간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이슬람 문화권에 와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이슬람의 생활 규범을 더 직접적으로 느낀 곳은 모스크였다. 관광객에게 개방된 곳이지만 종교적 의미를 가진 공간인 만큼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실제로 한 커플이 가까이 붙어 사진을 찍자, 관리자가 휴대전화를 확인해 사진을 삭제하도록 했고, 제대로 삭제했는지까지 확인했다. 여행객에게는 평범한 기념사진 한 장이지만, 이곳에서는 공간의 의미에 따라 허용되는 행동도 달랐다.
두바이만 있는 건 아닙니다
국제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도시는 두바이지만 아랍에미리트의 수도는 아부다비다. 7개 토후국 가운데 가장 넓고 석유 자원이 풍부하며, 대통령도 아부다비의 통치자가 맡고 있다. 아부다비를 이동하던 중 길가에 거대한 석유 시추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ADNOC의 국영 시추회사가 1973년 처음 도입한 시추 장비 ‘AD-1’으로, 지금은 본사 앞에 기념물처럼 세워져 있다고 한다. 두바이에서 화려한 건축물을 봤다면, 아부다비에서는 이 나라의 성장을 뒷받침한 석유의 흔적을 도심 한가운데서 만난 셈이다.
아부다비의 카스르 알 와탄은 수도의 위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대통령궁의 일부를 개방한 곳으로 거대한 돔과 샹들리에, 금빛 장식으로 가득했다. 두바이의 화려한 랜드마크와는 또 다른 수도의 권위가 느껴지는 화려함이었다. 화려함으로는 에미리트 팰리스도 빠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유명한 금커피도 마셔봤다. 말 그대로 커피 위에 실제 금가루를 올려준다. 맛이 특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커피에 금을 올려 마신다는 경험 자체가 참 아랍에미리트다웠다.
그리고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루브르 아부다비였다. ‘그런데 왜 아부다비에 루브르가 있을까?’ 프랑스와 아랍에미리트 정부 간 협약을 통해 만들어진 이곳은 루브르의 이름을 사용하고 프랑스 측으로부터 작품 대여와 박물관 운영에 관한 전문 지식 등을 제공받는다. 루브르 아부다비의 지붕인 거대한 돔은 여러 겹의 기하학적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틈으로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빛의 비(Rain of Light)’라고 부른다고 한다. 돔 아래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관람객들을 보니 건물의 아름다움이 더욱 느껴졌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박물관이 자리한 사디야트섬 일대가 여러 문화시설이 모이는 문화지구로 개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석유의 도시가 이제는 세계적인 문화도시라는 이미지까지 만들고 있는 셈이다. 두바이가 독특한 건축물로 도시를 알렸다면, 아부다비에서는 ‘루브르’라는 세계적인 이름을 활용한 또 다른 도시 브랜딩을 보는 것 같았다.

에필로그 _ 물음표를 안고 돌아오다
여행 전 아랍에미리트를 떠올리면 사막, 석유, 화려한 두바이가 전부였다. 직접 가보니 틀린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훨씬 다채로운 곳이었다. 여행 내내 ‘이걸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은 순간이 많았고, 여러모로 스케일이 좀 다른 나라였다. 여행을 다녀오면 어떤 장소는 사진으로 남고, 어떤 장소는 질문으로 남는다. 아랍에미리트는 내게 유난히 많은 물음표를 남긴 곳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뒤 들려오는 중동의 소식들을 접할 때면, 내가 걸었던 거리와 만났던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곳의 평범한 일상이 오래도록 평화롭게 이어지기를 바라며, 그 물음표까지 챙겨 돌아온 여행을 마친다. 슈크란!(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