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다음 수업을 준비하면서 공강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차 한 잔을 하려할 때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무심코 화면을 보니, 낯선 번호였다. ‘선생님, 저 민규입니다. 9년 전 중학교 2학년 때 선생님 반이었던 민규요.’ 순간 머릿속에 앳된 얼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조용하고 차분했지만, 늘 학급활동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열심히 참여하고 도와주었던 그 아이였다.
옛 기억 떠오른 반가운 전화
민규는 씩씩한 목소리로 자신이 우수한 성적으로 해병대 장교로 임관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는 가장 먼저 이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며,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목소리에서는 벅찬 감격과 함께 단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우리 민규가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구나!’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9년 전 함께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한창 장난기 넘치고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가졌던 민규는 늘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던 아이였다. 때로는 잘못해서 야단도 쳤고, 사춘기로 부모님을 힘들게 해 어머님과 한참 상담을 나누고 이끌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설악산으로 함께 떠났던 사제동행의 야영과 봉사활동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함께 산을 오르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뒤에서 조용히 챙겨주며 또래 상담 멘토를 자청했던 모습이 선명하다. 또 반기마다 함께 찾아가던 봉사활동에서는 지체 장애인들의 말벗이 되고, 손발이 되며 누구보다 진심으로 봉사에 임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원생들도 민규의 진심에 마음을 열고 환하게 웃어주곤 했다.
그땐 늠름한 해병대 장교가 될 거라고는 상상 못했다. 그 아이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강인함과 따뜻함은 그때부터 빛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일은 때로는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그 어떤 보상보다 값진 보람을 느낀다.
이 전화는 교사로서의 소명감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들이 스스로 빛날 수 있도록 옆에서 묵묵히 지지하고 응원하는 존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길을 가는 아이들이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 이 직업이 주는 보람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그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교사로서 걸어야 할 숙명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성장한 제자 모습에 감동해
민규의 전화는 오래도록 따뜻한 여운을 남겼다. 나와의 인연으로 이어지는 아이들이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를 생각하니, 교단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욱 힘차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아이들의 빛나는 성장을 위해, 교사로서의 소명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