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작품, 다른 장르

2021.05.04 09:34:08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에는 힘이 있다. 어떤 장르의 문법을 통하더라도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는 힘이. <레 미제라블>이 원작 소설에 이어 영화, 연극, 뮤지컬처럼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어도 여전한 감동을 주는 것처럼. 이번 달에는 이처럼 두 가지 이상의 장르로 변주된 작품을 소개한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 나은지를 고르는 ‘대결’이 아니라는 것. 두 작품을 함께 감상하면 상대 장르에서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장으로 향하기 전 드라마와 영화를 보며 예습하거나, 영상을 보며 뮤지컬 관람 후 여운을 즐기거나,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영화 vs 뮤지컬 <검은 사제들>

 

뺑소니 교통사고 이후 이상 증세에 시달리는 영신. 영신이 마귀에 빙의된 것을 확신한 김신부는 교단에 구마 예식을 허가해 줄 것을 요청하고, 모두의 반대와 의심 속에 비공식적 허가를 기어이 받아낸다. 이는 배우 김윤석·강동원 주연의 영화 <검은 사제들(2015)>의 줄거리다. 주요 캐릭터가 ‘구마사제’라는 신선한 설정으로 개봉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은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엑소시즘을 다룬 작품이었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540여 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한국 영화계에 오컬트 바람을 불러오며 이후 드라마 <손 the Guest> 등을 비롯해 미스터리 장르물이 제작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해냈다.  
 

뮤지컬은 뱀파이어, 사후세계, 불멸의 존재 등 초현실적인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르인만큼, <검은 사제들>의 무대화 역시 많은 관객들이 기다렸던 일이다. 마침내 작품의 뮤지컬화가 확정되자 가장 많은 기대감을 모은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특수효과다. 영화 속에서 마귀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때마다 등장하는 판타지적 장면을 어떻게 무대 위에서 구현할 것인지였다. 
 

<검은 사제들> 창작진은 뮤지컬 <호프>로 2020년 한국뮤지컬어워즈 8관왕이라는 기록을 만든 강남 작가, 김효은 작곡가, 오루피나 연출가, 오훈식 프로듀서. 이들의 주요한 고민 역시 영화의 비주얼을 어떻게 무대의 문법에 맞게 구현할 것인가였다. 창작진은 정답을 ‘공연의 상상력’에서 찾았다. 오훈식 프로듀서의 “영화의 특수효과는 뮤지컬 무대에서만 가능한 장르적 특색으로 살려 기존의 예상과는 다른 장면들로 만들었다”는 말이 그 반증. 
 

성스러움과 악마의 테마를 한 공간 안에 담아낸 무대는 그 상상력의 핵심이다. 언뜻 보면 웅장한 성당 내부처럼 보이지만 기둥 사이에 조명이 들어와 전체적인 실루엣이 드러나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사악한 괴물의 입안처럼 보이기 때문. 이은경 무대 디자이너는 “고결한 인간이라도 그 안에 무엇이 깃들었나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고달픈 한 영혼의 모습을 여러 장치들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무대 콘셉트를 설명한다. 여기에 뮤지컬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 음악은 인물들의 심리와 상황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구마 예식과 같은 장면에서도 음악과 효과음이 분위기를 완성하는데 한몫을 한다.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 2.25-5.30 | 1577-3363 

 

 

드라마 vs 뮤지컬 <나빌레라>
 

배우 송강과 박인환의 열연, 감동적인 스토리로 최근 많은 시청자들에게서 ‘인생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으며 막을 내린 드라마 <나빌레라>. 작품이 ‘일흔여섯 노인의 발레 도전기’라는 설명만 들으면 고개를 갸웃하기 마련. 그러나 이 반응이야말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시작이다. 
 

퇴직 후 적적한 삶을 보내던 일흔 줄의 노인 덕출은 전부터 꿈꿔왔던 발레를 배우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격렬한 반대. 우여곡절 끝에 한 발레단을 찾아간 덕출은 한때 유망주였던 발레리노 채록을 만나고 그의 제자가 된다. 편견에 맞서서 자신의 꿈을 우직하게 이뤄나가는 덕출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열정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던 채록은 발레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나이 차를 넘어선 우정을 쌓아간다.
 

<나빌레라>는 영상 매체보다 뮤지컬화가 한발 빨랐던 작품. 2019년 서울예술단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모래시계>를 탄생시킨 박해림 작가의 각색을 통해 원작인 웹툰을 무대화했다. 국립발레단 발레리노 출신의 유회웅이 작품의 안무를 맡아 발레를 뮤지컬 안무로 탄생시키기도 했다. 
 

2년 만에 재공연을 앞둔 <나빌레라>에는 이들과 함께 내로라하는 창작진이 합류해 기대를 더한다. <헤드윅> <더 데빌>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로 호평받는 이지나 연출가와 압도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는 김성수 음악감독이 힘을 보탤 예정. 또 <시라노> <록키호러쇼> 등 작품마다 연기 변신을 거듭하는 배우 조형균이 새롭게 ‘덕출’ 역을 맡아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5.14~5.30 |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 1577-3363

김예람 기자 yrkim@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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