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 주민의 지극한 연꽃 사랑
자연보호헌장의 첫머리에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혜택 속에서 살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이 속의 온갖 것들이 우리 삶의 자원이다’라고 적혀 있다. 지구의 맨 처음 생물체는 바다라는 물속에서 태어났고, 생물의 몸 대부분은 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도 생물체의 한 종류로서 몸의 약 70%가 물로 되어 있다. 4대 문명의 발상지는 물 주변이고, 대부분의 선사 유적지도 물 주변에서 발견되고 있다. 인류는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을 주변에 인위적으로 습지를 만들어 물을 이용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인공 습지는 밀양의 수산제, 제천의 의림지, 김제의 벽골제 등이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는 자연을 정복해 이용하면서 공존을 추구하는 삶이었고, 지금도 예전과 다름없다.
연꽃 밭으로 유명한 복룡저수지도 인공적으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영산강 유역 간척사업으로 무안군 일로읍에 300만평의 농장을 만들면서 농업용수를 제공하기 위해 둘레 3㎞의 복룡저수지(일명 회산지)가 탄생했다. 복룡저수지가 한창 젊음을 꽃 피우던 1955년 여름 어느 날, 마을 주민 정수동 씨는 연뿌리 12주를 저수지의 가장자리에 심게 된다. 연꽃을 심은 날 저녁에 하늘에서 12마리의 학이 저수지에 내려와 앉는 꿈을 꾸게 된 그는 더욱더 열과 성을 다해 연꽃을 자식처럼 보호하고 가꾸었다고 한다. 저수지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연꽃은 점차 세력을 넓히면서 매년 여름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그러던 중 농작물에 생명수를 제공하던 복룡의 단물은 1980년대 영산강 하구둑이 만들어지면서 저수지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때부터 복룡지의 수심은 낮아지고, 퇴적물이 쌓이면서 인위적으로 자연늪의 형태로 변했고, 수심이 낮아진 저수지의 전역에 연꽃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서 복룡늪은 연꽃 밭으로 변했다. 이처럼 한 사람의 노력이 복룡늪이라는 인공늪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수생생태공원을 만들었고, 해마다 약 2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삶의 의미를 주고 있다.
진흙에서 순결 피우는 군자의 꽃
호수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안개 낀 아침이 아닌가 생각한다. 멀리서 새들의 울음소리와 물고기들의 헤엄치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면서 안개가 서서히 밀려가는 모습은 무아지경에 들게 한다. 아련한 안개 속에 홀로 핀 연꽃 한 송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자태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복룡늪의 여름 새벽은 언제나 우리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잘 가꾸어지고 보존된 복룡늪의 연꽃 밭은 아시아 최대로 2001년에 기네스북에 올랐다. 부처님으로 상징되는 연꽃! 예전부터 사람들은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고 했다. 이는 끈적끈적하고 혼탕한 진흙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고고한 꽃을 하늘로 피워 청결하고 고귀하게 살다 지는 꽃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연꽃의 꽃말은 순결, 청순한 마음이다. 진흙탕 속이 인간 세상이라면 그곳에서 고고하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이 바로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결한 모습이 아닐까? 중국 송나라의 주돈이(1017~1073)는 연꽃을 ‘진흙 속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속이 비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으며, 향기는 멀리 갈수록 더욱 맑고, 우뚝 서 있는 모습은 군자의 모습이다’라고 예찬했다.
원산지가 인도와 이집트인 연꽃은 우리나라 전역에 살고 있는 수련과 식물로서 여러해살이 풀이고, 원주모양의 줄기가 옆으로 길게 뻗으며, 마디가 많고 가을철에 끝 부분이 특히 굵어진다. 잎은 뿌리줄기에서 나와 물위에 높이 솟고, 잎맥이 사방으로 퍼져 우산처럼 생겼다. 잎의 지름은 40㎝정도로서 물에 잘 젖지 않고 머리에 쓰면 비를 피할 정도의 크기이다. 꽃은 7~8월에 연한 홍색 또는 백색으로 피고, 크기는 지름 15~20㎝ 정도이다. 이때 연한 홍색의 꽃을 홍련이라 하고, 백색의 꽃을 백련이라고 한다. 복룡늪에 있는 대부분의 연꽃은 백련인데, 그래서 늪의 이름도 복룡백련지(회산백련지) 또는 복룡연꽃방죽(회산연꽃방죽)으로 불리고 있다.
우산처럼 생긴 커다란 연잎 사이로 꽃대가 올라와 꽃봉오리가 맺혀 꽃이 피기 까지는 20여일이 소요되지만,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3일 만에 만개하고, 헤어짐에 눈물 짖는 꽃잎들은 하나둘 꽃봉오리를 떠나간다.
민간 약재로도 유용하게 사용
홍련과는 달리 복룡늪의 백련은 일시에 꽃을 피우지 않고, 7월부터 9월까지 피고 지고를 거듭하면서 제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대부분은 8월에 꽃을 피운다. 백련은 꽃봉오리 때에는 연분홍색을 띠지만 꽃잎이 벌어지면서 점차 흰색으로 변한다. 하얀 꽃잎 속에 샛노란 수술과 연두색 연밥은 더욱 싱그러움을 풍긴다.
꽃잎이 떨어지고 옷을 벗은 연두색의 연밥은 부끄러워 바쁘게 햇살을 받아 검은색의 열매로 익어간다. 연실이 익으면 꽃대에서 떠나가고, 겨울이 되면 연실이 있었던 자리에 빈 구멍만 남긴 꽃대만 외롭게 호수에 서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연꽃은 몸 전체를 식용이나 약제로 사용하고 있다. 잎은 지혈제나 야뇨증 및 칼국수 제조에 사용하고, 뿌리와 열매는 부인병이나 강장제 및 식용으로 사용하며, 꽃은 연차를 만드는데 사용한다. 고고한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에 유용하게 이용되는 식물이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인도, 스리랑카, 베트남의 나라꽃이 백련이고, 이집트, 카메룬, 태국, 캄보디아의 나라꽃은 수련이다.
수련과의 식물은 온대와 열대지방이 원산지로 8속으로 이뤄져 있고, 가시연꽃만이 일년생이고 나머지는 모두 다년생식물이다. 우리나라에는 5속 7종의 수련과 식물이 자연에서 자라고 있는데, 수련, 애기수련, 순채, 가시연꽃, 개연꽃, 왜개연꽃, 연꽃 등이다. 그렇지만 요즈음에는 온실이나 개인적으로 많은 외래 수련과 식물을 재배하고 있어 정확하게 몇 종류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수련과 식물들은 대체로 잎이 큰데, 아마존수련과 파라과이수련은 잎의 지름이 60~180㎝ 정도이고, 잎의 가장자리가 위로 향한 모습이 얕은 냄비를 연상하게 해 ‘물쟁반(water platter)’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잎을 가지는 종류는 가시연꽃으로서 잎의 지름이 60~140㎝ 정도다.
수련의 줄기는 굵고 짧으며 밑 부분에 많은 뿌리가 나고 뿌리에서 나온 긴 잎자루에 달리는 두꺼운 잎으로 물위에 뜨고 화살촉과 같이 중앙을 향해 뻗어 있다. 꽃은 6~7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밤에 꽃잎이 접혀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인다고 수련이라고 한다. 꽃은 3일 동안 피었다 닫혔다 한다. 열매는 꽃받침에 싸여 있으며 물속에 썩어 씨를 방출하는데, 씨는 육질의 씨껍질에 싸여 있다. 시든 꽃은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열매는 물속에서 맺어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연못의 관상식물로 적합하다. 민간에서는 지혈제로 이용하고 번식은 뿌리를 나눠 심거나 씨를 파종하는데, 수련의 속명 ‘님파이아’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물의 여신 님프에서 유래되었다.
수련은 열대지방과 온대지방에 40여 종이 있는데, 중국·소련·일본에도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수련과 애기수련이 서식하고, 이중 애기수련은 황해도 장산곶과 몽산포의 바다 근처 늪에서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요즈음에는 많은 품종들이 만들어져 수련의 다양한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자생식물과 외래식물 공존해
마을 주변에 위치한 복룡늪은 그 자체가 삶의 장소이다. 저수지의 둑에는 경작지와 도로변에 살고 있는 식물들이 자라고, 늪에는 연꽃, 부들, 자라풀, 물수세미, 붕어마름, 마름, 수련, 개구리밥, 생이가래, 검정말, 가시연꽃, 올방개, 개연꽃, 노랑어리연꽃, 어리연꽃, 순채, 물옥잠, 사마귀풀 등이 살고 있다. 그리고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수생식물 사이를 헤엄치는 가물치, 잉어, 붕어, 메기 등도 만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들여와 아직은 우리 자연에 적응되지 못한 여러 종류의 식물들도 살고 있다. 외래식물에는 물신경초라 불리는 물아카시아, 물배추, 워터레터스로 불리는 물상추, 애기파피루스(시페루스), 양귀비의 꽃과 유사한 물양귀비, 물에 사는 칸나라는 의미를 지닌 물칸나(워터칸나), 앵무새 깃을 닮은 물채송화, 살대만 남은 우산처럼 펼쳐 보이는 종려방동사니(우산풀), 자라의 모습을 한 자라밥, 택사 비슷하면서 흰 꽃을 피우는 물수선, 생이가래보다 잎이 두텁고 큰 물생이가래, 물고기의 부레처럼 생긴 잎자루를 물 위에 띄우고 보라색 꽃을 피우는 부레옥잠, 보라색 꽃을 피우는 폰테리아 그리고 여러 종류의 수련류를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복룡늪은 식물도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골라 심어져 있다. 보통의 자연늪이 신의 능력으로 빚어진 것이라면, 복룡늪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다. 즉, 이곳은 자생의 수생식물과 외래의 수생식물이 어울려 공존하는 곳이다.

순수한 깨달음 만나는 늪 탐방
복룡늪은 서해안고속도로 일로IC에서 일로읍을 거쳐 820번 군도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다. 복룡늪은 일로읍 용산리, 복룡리, 산정리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데, 반달 모양의 늪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 회산이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매표소를 지나면, 늪을 가로지르는 약 800m의 탐방로를 만나게 된다. 탐방로의 어디에서나 손끝만 내밀면 청아한 백련의 꽃봉오리를 만질 수 있다. 탐방로의 시작점부터 군데군데에 늪의 주인인 자라풀, 개연꽃, 붕어마름, 마름, 올방개가 연꽃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탐방로 주변에 만들어진 돌로 만든 징검다리를 건너면 어린 동심의 세계로 빠져 들게 된다.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징검다리를 건너는 연인을 보면 그들의 얼굴이 큰 백련이 된다. 순수한 얼굴은 백련의 얼굴인 것이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얼굴이 되면 그것이 부처의 얼굴이고, 깨달은 자의 얼굴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
탐방로는 무대로 연결이 되고, 그 주변에 심겨진 여러 식물들을 보면서 달콤하고 시원한 그늘의 향기를 느껴본다. 깨끗한 물이 흘려가는 곳에 심겨진 여러 식물들을 보면서 전망대로 가게 된다. 전망대는 늪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특히 전망대 주변에는 물양귀비, 물아카시아, 부레옥잠, 물상추, 가시연꽃이 꽃을 피우고 있다.
전망대에서는 늪의 전부를 굽어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열대식물과 여러 수생식물들이 심겨져 있는데, 자연에 심을 수 없는 물칸나, 종려방동사니, 물수선, 폰테리아 등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연꽃을 이용한 아이스크림과 국수를 팔고 있고, 백련차도 팔고 있어 탐방로에서 향기로 취한 몸에 이제는 맛으로 연꽃을 느끼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전망대에서 연꽃 밭 사이로 운행되는 4인승 보트를 타고 연꽃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
겸허함 뜻하는 품바의 발생지
일로읍 일대에는 복룡늪 이외에도 많은 연꽃 밭을 만날 수 있다. 주민들이 논에 심은 연꽃은 약 150만평 정도로 복룡늪의 10배 정도이므로 눈만 돌리면 연꽃을 볼 수 있다. 주민들은 연꽃을 이용하여 관상용과 식용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어, 일로읍 주민들에게 있어 연꽃은 근접하기 어려운 깨달음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일부인 것이다.
이렇게 연꽃이 지천에 널린 무안군은 8월 중순에 무안백련 대축제를 해마다 열고 있다. 행사 기간 동안 품바 공연, 연문양 부채 만들기, 백련 천연 염색, 도자기 빚기, 연비누 만들기 등 백련을 주제로 한 다채로운 체험 행사가 열린다.
또 복룡늪을 품고 있는 무안군 일로읍은 우리나라 품바의 발상지다. 품바는 품바타령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민초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쌓였던 울분과 억울함을 노래로 표현한 것으로 일명 각설이타령이라고도 한다. 피지배계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걸인행세를 하면서 기회주의자, 매국노, 부정부패자들에게 ‘방귀나 처먹어라! 이 더러운 놈들아!’라면서 입방귀를 뀌어 현실에 대한 한을 소리로 나타내었다.
품바란 도를 깨달은 상태에서의 겸허함을 의미하여 구걸할 때 ‘품바’라는 소리를 내는데, 이는 ‘예, 왔습니다. 한 푼 보태주시오’의 쑥스러운 말 대신 썼다고 한다. 그 외에도 한자의 품(稟)자에서 연유되어 ‘주다와 받다’의 의미도 있다. 즉, 품바에 함축된 의미는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는 것으로 타령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에는 반드시 품바라는 소리를 내고 있다. 깨달음을 생각하게 하는 복룡늪 주변에서 품바타령이 시작된 것을 보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로읍과 나주시를 연결하는 다리가 몽탄대교다. 몽탄대교에서 바라보는 영산강은 그 자체가 장엄한 모습이다. 몽탄대교 가까이 위치한 회산(回山)은 온 세상의 기운이 다시 모인다는 의미로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 이름을 지은 옛 선인의 안목과 슬기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우리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조금만 가지면 많은 수생식물들의 보금자리인 인공늪을 만들고 가꿀 수 있음을 복룡늪은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