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창가에서> 아이들은 깃발나무다

2014.11.04 10:03:09

트라우마(trauma)는 전문용어다. 그런데 요즘은 일상어가 돼 버렸다. 별 좋은 현상은 아니지 싶다.

트라우마란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으로서 외상(外傷)과 관계없이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와 함께 요즘 잘 쓰이는 용어가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이다. 여기에도 트라우마란 단어가 사용된다. 그런데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외상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도 있다.

살을 에는 강풍이 휘몰아치는 해발 2000m 수목한계선(樹木限界線)에 자생하는 나무가 있다. 이른 바 ‘깃발나무’다. 고지대에 부는 거센 바람 때문에 나뭇가지가 한쪽으로 쏠려 있어 깃발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깃발나무는 그 어떤 나무보다 재질이 좋아 멋진 소리를 내는 현악기의 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무척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깃발나무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극복하고서 외상후 성장을 택한 경우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큰 재해와 장애를 입은 후에 좌절해 쓰러져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그 시련을 통해 더 크게 성장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누구는 시련 때문에 주저앉고, 누구는 시련을 활주로로 삼아 오히려 비상할까. 그것은 개인의 ‘회복 탄력성’에 따라 달라진다. 회복 탄력성이란 물리학에서는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탄성을 뜻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시련을 이겨내고 더 단단해지는 긍정적 힘을 의미한다.

전북대 강혜정 교수는 ‘비행청소년의 비행 촉발요인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청소년이 비행을 저지르는 위험 요인 중 가족 요인으로는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 혹은 가출’이 41.2%로 압도적인 반면, ‘친부나 친모의 사망’(8%)이나 ‘생계를 책임지는 보호자가 없는 경우’(2.9%)는 매우 낮다고 발표했다. 다시 말하면, 부모가 없어서 문제가 되기보다는 부모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뜻이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부모의 부재는 깃발을 힘차게 나부끼게 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회복 탄력성만 있다면 오히려 고난이 유익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부모의 이혼이나 별거는 그 깃발나무를 말라죽게 해버린다는 뜻이다.

저 유명한 성 프란시스는 이렇게 충고했습다. "길을 가다 거지가 당신에게 돈을 달라 하면 아무 소리 말고 그냥 주십시오. 그는 지금 당신의 것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달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을 그 거지가 갖지 못했으니 그가 소유해야 할 몫의 일부를 우리가 움켜쥐고 있다는 자각을 갖자는 뜻인 듯하다.

마찬가지 원리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문제 가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학생이 선생님께 불손하게 대하면, 너그럽게 받아주십시오.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자신의 충동적이고 모순된 감정을 품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에 이 세상을 살 가치가 있다고 느껴서 뿌리를 더 튼튼히 내리지 않을까. 그래야 그 아이들이 회복 탄력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래야 그 아이들이 해발 2000m 고지에서 부는 칼바람을 이겨내고 힘차게 펄럭이는 나무처럼 자라나지 않겠는가.
김동훈 강원 동해중 수석교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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