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작천정 계곡을 찾았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아이들이 이제는 제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돌아왔다. 세월은 아이를 부모로 만들었지만, 계곡을 이루는 너른 바위는 옛 모습 그대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가뭄으로 계곡에 물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시원한 물속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기대했던 터라 처음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속에 잠겨 있던 거대한 바위가 온몸을 드러냈다. 계곡 전체가 하나의 큰 바위 놀이터가 되었다. 물이 없어 비어 보였던 계곡은 오히려 더 넓은 놀이터와 살아 있는 자연 교실을 내어 주었다.
작천정은 ‘작(酌)’에는 술을 따른다는 뜻이 담겨 있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계곡 바닥에는 크고 작은 홈과 굽이진 물길이 새겨져 있다. 흐르는 물이 헤아릴 수 없는 세월 동안 바위를 다듬어 만든 자연의 작품이다. 넓고 반반한 바위가 마치 옥판을 펼쳐 놓은 듯하고, 오랜 세월 물살에 깎인 바위 구멍은 술잔과 술을 따르는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 전해진다.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1337~1392)가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닦았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경치가 아름다운 유원지를 넘어 자연과 학문, 선비의 절개와 배움의 공간이다.
어린 자녀들과 이곳을 찾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작은 손을 잡아 주며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하라고 일러 주었는데 이제는 손자들의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다. 그때의 아이들이 오늘은 부모가 되어 제 아이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사람은 자라고 늙어 가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바위는 한 가족의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오늘의 손자들도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도 이 거대한 바위는 그때도 말없이 그들을 맞아 줄 것이다.
물은 계절에 따라 차오르기도 하고 마르기도 한다. 그러나 바위는 그 자리를 지키며 물의 흐름을 받아들인다. 모진 물살에 맞서기보다 긴 세월 동안 물길을 품고, 깎이고 다듬어지며 더 깊은 무늬를 만든다. 자연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법을 가르쳐 준다.
교육은 아이를 한순간에 바꾸려 하기보다 바위처럼 기다려 주고, 물처럼 흐를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눈앞의 결과보다 아이 안에 새겨질 긴 시간의 흔적을 믿어야 한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천년의 거대한 돌은 우리 가족의 시간과 기억을 말없이 품어주고 있었다. 저 어린 아이들도 '여기는 내가 어릴 때 놀던 곳이란다'라는 말로 세대와 세대로 이어 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