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연히 달력을 넘기다 순간 동작을 멈추고 말았다. 내 나이 어느덧 우리 나이로 예순일곱, 주민등록상 정년이 만 62세였으니, 벌써 몇 해가 흐른 것이다. 교단을 떠난 뒤의 시간은 교단에 있을 때보다 이상하게도 훨씬 빠르게 흐른 것 같다. 그래서 삶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해 달려간다고 하는가 보다. 속도 계기판에 찍힌 속도가 시속 67km였으니 말이다. 학교에 있을 때는 시속 40~50km로 하루가 그렇게 천천히 지난다 싶더니, 학교를 떠나고 나니 이젠 “세월이 유수(流水)처럼” 한 해가 한 계절처럼 지나가고 있다.
40년. 참 긴 세월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생의 가장 싱싱한 시절을 학교에서 보내며 정열과 사도(師道) 실천의 거룩한 임무를 다했다. 아직은 앳된 청년의 얼굴로 교단에 들어가 어느덧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어 순백의 머리칼로 치장하고 학교를 떠났다. 그 사이 대한민국 교육은 몇 번이나 얼굴을 바꾸었다. 교과서가 바뀌고, 입시제도가 바뀌고, 교육과정이 바뀌고, 컴퓨터가 교실에 들어오더니 스마트폰과 인공지능까지 학생들의 손에 들어왔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순수한 꿈을 꾸었고, 나는 교사로서 여전히 그 꿈을 지켜보며 함께 이루고자 했다. 특히 고3 진학지도는 내 교직 인생의 한복판이었다. 담임교사와 학년 부장으로 무려 20년을 학생들과 동고동락했다. 공휴일이어도 마음 놓고 쉬지도 못했다. 아침이면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 나왔고, 심야 시간까지 자율학습을 감독했다. 과거 어느 날은 일요일에도 학생들과 자율학습을 함께 하며 오후 무렵에 빨리 귀가하고 싶은 심정에 신호등을 지나쳐 거리 근무의 의무경찰에 제지당했으나 그 학교 출신의 졸업생이어서 즉시 알아보고 경례를 하며 “이이고, 선생님, 휴일도 학교에 나오셔 고생하셨군요!”하며 오히려 위로와 함께 티켓 발부 없이 경고만으로 통과시켜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수능이 가까워질수록 교무실의 불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학생들은 때로는 책상에 엎드려 졸았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힘내자. 너의 인생이 걸린 일이잖아.” 지금 생각하면 참 고단한 세월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었던 날들이 지금은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이 하나둘 아직도 떠오른다. 성적 때문에 울던 아이, 대학에 떨어져 고개를 들지 못하던 아이, 뜻밖의 합격 소식에 교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선생님!”하고 울면서 격하게 외치던 아이, 그 순간만큼은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를 넘어 서로의 인생에 작지만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자랑스러운 궤적을 남긴 인연들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아이들의 대학 합격증을 대신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었다. 다만 흔들리는 아이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고, 포기하려는 아이에게 “조금 더 해보자”고 위로하며 격려해 주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교사의 일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학생의 인생을 대신 밝혀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을 때까지 잠시 손전등을 비춰주는 사람으로 그렇게 40년을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교문 밖으로 나왔다. 처음 1년은 자유가 그렇게 좋았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되었고, 출근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었다. 회의도, 결재도, 생활지도도, 학부모 상담도 없었다.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학교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학교라는 공간보다 그곳에서 필요했던 나 자신이 그리워졌다. 아침마다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며, 누군가에게는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정년퇴직은 직업을 내려놓는 일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만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다시 답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순을 넘기고 6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생의 가을이 깊어만 가는 지금, 가끔은 허무하고 공허함을 느낀다. 몸까지 예전 같지 않고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를 보내니 더욱 그렇다. 먹는 약 종류만 몇 종류, 이제는 약에 내성이 생긴 것인지 먹어도 크게 효과를 느끼지 못하겠다. 젊을 때는 몸이 아파도 하루 이틀 쉬면 괜찮았다. 이제는 작은 통증과 감기에도 쉽게 낫지 않으니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거울 속 얼굴에는 세월의 궤적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계절이 깊어질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쓸쓸함이 찾아온다.
최근 나는 새로운 버릇이 하나 생겼다. 요즘 스스로를 거리낌 없이 ‘추남(秋男)’이라 부른다. ‘가을 남자!’ 인생의 봄과 여름을 지나 어느새 낙엽 지는 계절에 들어선 남자가 되었다. 이 지구상에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는 조금씩 내 주변의 일들에 진중하게 흔적을 남기고 가족들에게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이런 가을이라도 꼭 쓸쓸한 계절로 지나기를 원치 않는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봄에 꽃을 피우고 여름에 잎을 키우지만, 가을이 되어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열매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의 가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40년 교단에서 얻은 경험도, 수많은 학생들과 나눈 이야기들도, 교육에 대한 진지한 생각도, 실패와 성공의 기억도 아직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퇴직은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문장의 교체인지도 모른다. 교장이라는 직함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교육자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학교를 떠났을 뿐, 교육을 떠난 것은 아니다. 이제는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대신 글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겪은 교육의 현장과 그 속에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젊은 교사들에게는 먼저 걸어간 사람의 경험을 공유하고, 학부모들에게는 아이를 조금 더 믿어주고 교사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지혜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새로운 숙제를 내는 것이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는 거창한 답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먼저 건강을 챙길 것이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도 그러하지만 금쪽같이 귀한 남은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서다.
욕심도 조금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이미 지나간 박수와 명예를 다시 세어보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후반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기억하느냐보다 내가 오늘 얼마나 충실하게 하루를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걷고, 읽고, 쓰고, 만나고, 웃을 것이다. 때로는 아무 목적 없이 길을 걸으며 나무를 바라보고, 오래된 제자의 소식을 들으면 반갑게 안부를 묻고, 마음에 떠오른 생각은 한 줄이라도 기록할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돌아보니 나는 참 많은 것을 얻었다. 40년 동안 월급을 받았고 직책도 얻었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을 얻었다. 수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그들의 성장에 작은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그 아이들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일일이 알 수 없다. 하지만 SNS상에 친구로 그들이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 언젠가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문득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한다면 좋겠다. “그때 나를 믿어준 선생님이 한 분 계셨지.” 그 한 문장이 남는다면 내 40년의 교직은 결코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결국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보다 무엇을 남기며 살았느냐로 기억되고 평가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제 깊어만 가는 인생의 가을에 서 있다. 낙엽이 떨어진다고 나무가 죽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잎을 내려놓으며 겨울을 준비하고, 다시 봄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추남’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쓰기로 했다. 추남은 쓸쓸한 가을 남자가 아니라, 봄과 여름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이제 깊어진 계절을 맞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어느 유명 가수는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젊음은 떠났지만 경험은 남아 있다. 직함은 사라졌지만 이야기가 남았다. 교실은 떠났지만 제자들이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살아갈 내일이 남아 있다.
그러니 오늘도 스스로에게 출석을 부른다. “전재학!” “네.” 아직 대답할 힘이 있다. 그렇다면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교단에 서지는 않겠지만, 남은 생의 교단에는 계속 서고 싶다. 이번에는 학생들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수업을 하면서 말이다. 그 수업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법’, ‘늙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가진 것을 내려놓고도 행복할 수 있는 법’, 그리고 ‘마지막까지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가르치고 배울 것이다.
인생의 가을, 바람이 조금은 차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을의 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잎이 무성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40년의 교단생활을 내려놓은 지금, 나는 비로소 내 인생의 진짜 가을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을 쓸 시간이 남아 있음에 오늘도 정자세를 잡아 보면서 ‘교육 이야기’를 널리 공유하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