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대신 나와 세상을 배우는 1년, 여러분을 새로운 배움과 도전의 길로 초대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공립형 대안학교 오디세이학교(이하 오디세이)의 소개 책자에 나오는 말이다. 지난 2015년 문을 연 뒤 올해로 11년째를 맞는다. 전환기 교육프로그램으로 덴마크의 ‘애프터스콜레’를 모방해 만들었다.
중3 졸업생들이 1년간 공부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과정이다. 가치관 혼돈과 불안 등을 느낄 시기에 스스로 치유하고 자신을 발견해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오디세이에서 1학년 과정을 마치면 원래 배정받은 일반고 2학년으로 복교하거나 다시 1학년으로 재입학이 가능하다.
서울 시내 5개 캠퍼스에서 운영되는 오디세이학교는 입시 위주의 일반 학교와는 확연히 다른 교육철학과 학습방식으로 주목받는다. “단순히 노는 학교 아니냐”라는 편견과 달리, 오히려 학생과 교사 모두가 치열하게 소통하고 성장하는 공간이다.
‘소통하고’, ‘교류하고’, ‘토론하는’ 수업방식
먼저 교육과정은 보통교과와 대안교과로 나눠지는 데 보통교과는 고1 공통과목으로 구성되며, 대안교과는 학생들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교육과정이다. 예컨대 여행, 예술활동, 책 만들기 등이 있다. 오디세이 수업은 모두 토론과 발표 중심으로 진행된다. 칠판 앞에서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대신, 학생들이 서로 마주 보며 의견을 주고받는 ‘소통형 토론수업’이 주된 방식이다. 수업공간도 독특하다. 디귿(ㄷ)이나 미음(ㅁ) 모양의 자리 배치로 모두가 서로 얼굴을 마주한다.
수업은 매일 아침 30분간 ‘하루 열기’로 시작된다. 이 시간엔 나의 몸 상태와 감정, 주변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생들의 정신적 스트레칭과 집중을 돕는다. “오늘 기분은 어떤가요?”와 같은 ‘아침 소감’ 등 소소한 주제 발표를 통해 경청과 표현능력을 키운다. 모든 수업이 끝난 후에도 30분간 오늘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수업도 마찬가지, 학생들이 서로의 생각이나 의견을 물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중학교 때까지 거의 경험해 보지 못했던 ‘소통하고’, ‘교류하고’, ‘토론하는’ 수업방식에 처음엔 어색하고 힘겨워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한 학생은 “처음엔 발표가 무섭고 어려웠지만, 여기선 내 얘기를 들어주는 친구들이 있어 점점 자신감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교사들 역시 쭈뼛대던 아이가 어느 순간 또래 앞에서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오디세이 1년은 자신의 삶을 위한 답을 찾는 기간
오디세이에서는 기존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재구성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예를 들어 국어수업에서는 문법을 별도로 강의하지 않고, 문학작품과 토론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또 인문학·역사 등은 대안교과로 운영하며 현장체험과 연계한 심화학습이 이뤄진다. 종전에는 수업 시수가 부족해 수학 등에서 진도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1년 단위로 수업 시간을 조정하면서 이를 개선했다.
신지영 교감은 “수업량은 일반 학교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주입식이 아니라 자기주도적·탐구 중심 학습이라 학생들의 학습 준비량이 오히려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오디세이 1년 과정을 마치고 2학년으로 원적교에 복귀해도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모든 교과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국어·영어·수학이나 사회와 같은 과목들에서 특히 강점을 보인다는 게 학교 측의 귀띔이다.
무엇보다 생활기록부의 독창성과 자기표현능력이 수시전형에서 큰 강점으로 작용,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오디세이 3기 출신으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한 홍은지 씨는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배운 내용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라며 “오디세이 1년은 자신의 삶을 위한 답을 찾는 기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경인교대에서 교사를 꿈꾸는 이시원 씨는 “오디세이 같은 교육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교대를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교사건 학생이건 서로가 학교에서 별칭을 부른다
오디세이는 서울 시내 다섯 개 캠퍼스에서 운영된다. 각 캠퍼스는 거주지 인근 중심으로 배정해 학생들의 편의를 도모한다. 민들레 캠퍼스는 정독도서관 내에 위치해 문학과 독서 중심 프로그램이 활발하다. 하자센터 캠퍼스는 청소년 직업훈련과 창의활동을 중심으로 목공·책방 운영 등 특화된 실무 경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외에 지하철 동묘앞역 앞에는 오디세이 꿈틀 캠퍼스가, 옛 덕수고 자리에는 오디세이 혁신파크, 서울교육연수원에는 오디세이 이룸 캠퍼스가 운영되고 있다.
모든 캠퍼스는 교육청과 민간 기관 간 협력으로 운영되며, 교사들은 여러 캠퍼스를 오가며 수업과 행정을 병행한다. 서울을 동서남북으로 순회하며 수업해야 하는 교사들로서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루에도 여러 캠퍼스를 이동해야 하는 탓에 점심을 거르기 일쑤다.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는 날도 많다고 한다. 수업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 행정업무는 엄두도 못 내는 실정. 그럴 때면 고스란히 교감 몫이다. 신 교감은 “교무생활을 많이 해 행정업무는 거뜬하다”라고 웃어 보였다.
이처럼 힘들어도 오디세이에 몸담은 교사들은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승진 혜택이 있는 것도,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고생을 자초한다. 국어를 담당하는 이고운 교사는 올해 오디세이 5년째다. 하지만 근무 상한선인 3년을 더 있을 생각이다. 학생들과 문학작품을 토론하고, 여행하고 소설을 쓰는, 꿈에 그리던 수업을 해볼 수 있어서라고 한다. 이 교사는 “교사로서의 성장과 학생들의 성장을 같이 본다는 게 오디세이에 계속 머물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오디세이에는 일반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가 또 있다. 교사건 학생이건 서로가 학교에서 별칭을 부른다는 점이다. 국어를 담당하는 이 교사의 별칭은 ‘라온’이다. 기쁨과 즐거움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신지영 교감은 ‘신지’로 불린다. 학생들 역시 되고 싶은 사람이나 꿈을 상징하는 별칭을 사용한다. 별칭 뒤에 선생님이란 호칭도 붙이지 않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라온, 이게 무슨 뜻이에요”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낯선 문화에 어색해하던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진다. 교사와 교사 간, 학생과 교사 간 수평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도입한 방식인데 호응이 너무 좋단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란 말 대신 ‘길잡이’로 부르는 것도 오디세이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교육의 틀을 넘어 ‘삶 중심 교육’의 가능성
오디세이의 또 다른 강점은 체험활동이 무척 활발하다. 지난해 춘천에서 발생한 사고 이후 학교마다 수학여행 등 체험학습을 기피하는 분위기지만, 오디세이에서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소모임을 만들어 일주일씩 체험학습을 떠난다. 특히 연 3회 실시되는 ‘여행형 체험학습’은 학생들이 스스로 기획부터 예산, 멘토 섭외까지 전면 참여하는 프로젝트형 학습이다. 단순히 노는 여행이 아니다.
조벽 교수 등 유명인을 학생들이 직접 섭외해 멘토링 프로그램을 갖는가 하면 일본의 서머힐로 불리는 키노쿠니 학교를 방문한다. 교육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오사카 대학을 찾아 교수와 대담을 갖기도 했다. 덴마크와 교육교류는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오디세이 학생과 덴마크 애프터스쿨콜레 학생이 12월과 1월에 열흘씩 상호 방문해 홈스테이·공동수업 등에 참여하며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얻는다. 학비는 무료이지만, 체험활동 등에 들어가는 경비는 수익자 부담이다.
일반학교와는 확연히 다른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에 장단점이 뚜렷하다. 오디세이 취지를 정확하게 알고 입학한 학생들은 적응을 잘한다. 만족도가 높다. 학부모 민원이나 학교폭력도 거의 없다. 형제가 나란히 오디세이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다. 자녀를 오디세이에 보낸 한 학부모는 “권위가 아닌 길잡이이자 동료로 함께 해주는 선생님들을 만났고, 미숙함과 모자람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을 만났다”라며 “그 과정에서 실수와 좌절이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오디세이학교를 통해, 입시 중심 교육의 틀을 넘어 ‘삶 중심 교육’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자신한다. 1년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인생을 설계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