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오솔길-25> 영재교육과 선행학습

2004.02.25 13:01:00


요즈음 우리 교육은 이른바 '선행학습'이란 묘한 현상 때문에 상당한 몸살을 앓고 있다. 방학이 되면 한 학기는 약과이고 한 학년 심지어 두 학년까지도 앞서나가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전에는 '예습'이란 말이 있었지만 이제는 선행학습 때문에 실질적인 의의를 잃고 말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행학습이 과연 소기의 성과를 가져다 줄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지만 교육이란 제도는 그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따라서 개혁을 자꾸 부르짖기는 해도 지금까지의 교육이 송두리째 바뀌어야 할 만큼 잘못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으로 정립되어온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지적 발달 수준에 최대한 잘 부합되도록 편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점진적 교육을 무시하고 너무 앞서 달리려고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누구나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선행학습 열풍은 영재교육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재 또는 영재성이란 개념은 언뜻 쉬운 듯 하지만 막상 정확한 정의를 내리려면 아주 모호해진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만 오갈 뿐 일치된 견해는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열거되는 영재의 특성으로는 지능 집중력 탐구력 창의력이 높고, 자기 동기부여 성향이 강하며, 적극적이고도 진취적인 성격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영재라고 해서 이런 특성들이 반드시 일찍 꽃피우라는 법은 없다. 사례들을 살펴보면 일찍부터 싹을 내미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더디게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또 종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신체적 성장도 그렇다. 너무 빨리 성장을 시작하기보다 오히려 조금 늦된 편이 결국에는 더 큰 키를 갖는 게 통례다.

이에 비춰볼 때 파스칼의 생애는 되새겨볼 만하다. 파스칼은 '팡세'라는 명상록을 쓴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어렸을 때는 수학적 재능이 크게 돋보였다. 그의 천재성을 본 아버지는 너무나 빠른 진도에 놀라 오히려 수학을 당분간 금지시켰다. 그러나 파스칼은 결국 그의 능력을 활짝 꽃피워 10대에 이미 데카르트를 감탄시킨 원추곡선론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서서히 방황의 길로 접어든다. 물론 30대 초반에 확률론을 세우기도 했지만 다른 천재들이 한창 절정의 노력을 기울일 때 그는 이해하기 힘든 명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짐작컨대 파스칼의 천재성은 이미 피로의 단계에 접어들었던 것 같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파스칼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능성'으로 그치고 말았다는 평가를 했다. 영재교육이든 선행학습이든 궁극적으로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현시키고자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에 이르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좀더 깊이 생각해봐야 하겠다.
고중숙 순천대 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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