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치유 지상상담소⑥] 반복된 일상에 갇힌 나, 삶의 방향을 잃었어요

2025.08.07 16:06:47

 

올해 교직 18년 차인 40대 중반의 교사입니다. 두 자녀도 잘 자라주고 있고 교사 일을 해오며 나름 교직 생활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제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근을 하면서도 기계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막상 학생들을 만나면 웃어주기도 하고 맡은 수업도, 학교에서 맡은 보직들도 다 잘 수행은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쉴 틈이 나면 머리 속이 멍하고 활기를 잃은 것 같아요. 그나마 며칠 전에 방학을 해서 잠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주변 동료들을 보면 적극적으로 연수도 찾아 듣고, 노후 설계도 하고, 외부 활동들도 열심히 하는데 저는 애매하게 나이만 들고 반복적으로 교사 업무만 하고 있을 뿐 아무 발전도 없이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뒤로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이렇게 매일 반복적으로 살다가 때가 되면 자식들 독립시키고 은퇴하는 삶을 살게되는 건지…저희 부부는 재테크를 잘 하지도 못했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습니다.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덜컥 들어버린 것 같은 생각에 무서운 마음도 듭니다. 한때는 교사라는 직업이 나를 설명해주는 말 같았는데, 지금은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감정이 단순한 피로인지, 아니면 무언가 더 깊은 문제인 건지 모르겠습니다.

(사연자: 이성민(가명) 교사)

 

긴 시간 교직에 몸 담아 오시며 묵묵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사로서 또 부모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오신 선생님의 지난 시간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교사로서 책임감과 부모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잘 해내오셨기에 지금 느끼는 막막함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랜 시간 성실하게 살아온 분들이 중년이 돼 흔히 느끼는 아주 당연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내 삶을 돌아보는 시기

실제로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중년기 교사분들이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업무나 역할에 충실히 임해오셨지만 어느 순간 "이것 말고 내 삶에 더 중요한 게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특히 교사라는 직업은 늘 타인을 돌보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거나 돌볼 여유가 적은 편입니다.

 

레빈슨(Levinson)이라는 학자는 우리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며 계절이 변화하듯 우리 삶의 각 단계도 변화한다고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현재 경험하고 계신 단계는 “중년 전환기(mid-life trasition)”에 해당됩니다. 이 시기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구축해 온 삶의 구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재구성할지 스스로 질문하게 되는 매우 중요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한 가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주기로 자신의 삶을 재검토하고 재구성하려는 시기를 맞이한다는 것이죠. 특히 40대 중반 무렵은 그 전환이 두드러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은 “내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은 대체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자기 내면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시기인거죠.

 

다만 이 시기 우리가 감지하게 되는 변화의 신호는 희망적이고 마냥 기쁘고 활력이 넘치기 보다는, 혼란, 무기력, 불안함으로 먼저 찾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뇌는 그 상태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자신에게 익숙한 상황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때문에 낯선 자극은 때로 위협처럼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좋았건 내가 원했건 혹은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느꼈건 선생님께 가장 익숙한 형태였고 안전한 느낌을 주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신호를 본능적으로 느끼셨고 그 신호가 불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침체감은 ‘성장의 시작점’

선생님들께서 많이 접하시는 에릭슨(Erikson)은 이 시기를 '생산성 vs 침체감'의 갈등으로 설명했습니다. 이때 '생산성'이란 단지 직장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으로 다음 세대 혹은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침체감'은 내가 어떤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을 때, 나이만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찾아오는 감정입니다. 선생님께서 느끼고 계신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든 것 같다"는 감정은 바로 이 침체감의 정서적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감정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과 성장의 '시작점'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의 사연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비록 매너리즘이라고 표현하셨지만 매일 반복되는 교사의 업무도 잘 수행하고 계시고, 두 자녀 역시 잘 자라주고 있다는 부분에서 자녀들에게도 많은 애정을 쏟으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다만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방향성을 잃은 배 마냥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계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전까지는 누군가의 딸, 교사, 엄마, 아내라는 역할이 선생님을 설명해주는 단어였다면, 이제는 그 역할과 별개로 ‘나’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 질문할 때가 된 것이지요.

 

혼자 고민 말고 주변과 나눠야

제가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조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부정하거나 억누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 선생님께 불안함을 주는 무기력, 혼란함,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은 오히려 한 단계 성장시키기 위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둘째, 비교를 멈추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다른 동료들이 연수를 듣고, 외부 활동을 하고, 재테크를 한다는 정보는 새로운 영감을 줄 수도 있지만, 때로는 나의 불안과 박탈감을 자극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동료들 역시 각자 자기 삶의 전환을 위해 애쓰고 있고 자기 삶의 목표를 향해 살아가는 것일 뿐 그 방향이 나와 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셋째,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아주 작고 구체적인 수준에서 탐색해보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도 아이디어도 없다’고 하셨지만, 실제로는 이미 내면에서는 작은 변화의 단서들을 느끼고 계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테면, 방학이 되자마자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으신 점은, 현재 자신의 삶에서 여유와 휴식을 좀 더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또 동료들의 여러 활동을 보며 동경이나 부러움을 느꼈다면 선생님 내면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숨어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넷째, ‘나만의 의미’를 되찾는 일이 필요합니다. 많은 교사가 20~30대에는 학생을 위해, 가정을 위해 헌신하다가 중년기에 이르러 문득 자신만의 정체성과 꿈이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이는 드문 일이 아니라, 매우 흔한 심리적 반응입니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보고 싶은 일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꼭 성장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혼자서 감당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고민을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중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기이고,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오신 분들은 오히려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려워하시기도 합니다. 오늘 고민을 나누고 또 제가 답해드린 이 시간이 작은 시작이 돼 선생님의 삶이 새로운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고 응원하겠습니다.

조아라 이온심리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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